'고지전', 원근법이 백미인 전쟁영화

'고지전'

어떻게 보는가 하는 점은 무엇을 보는가 하는 점만큼 중요하다. 멀리서 볼 것인가, 아니면 가까이서 볼 것인가. 또 어느 쪽의 시점으로 볼 것인가. 그것이 전쟁영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전쟁영화를 먼 거리에서 보다보면 스펙터클의 덫에 걸릴 수 있고,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면 지나치게 인물들의 감정 속으로만 매몰될 수 있다. 전쟁영화는 스펙터클이 될 때 비판받을 수밖에 없고, 감정에만 매몰될 때 소소해질 위험성이 있다. 또 실제 겪었던 전쟁을 다루는 경우 어느 한쪽의 시각에 맞추다보면 다른 편의 시각이 소외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지전'만큼 적절한 원근법을 고수하고 있는 전쟁영화는 보기 드물다. 일단 그 '애록고지'라는 영화의 공간이 그렇다. 한국전쟁의 끝 무렵 남북분계선을 가름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애록고지. 그 고지를 중심으로 영화는 시선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영화는 이 애록고지를 지도 위에 놓여진 하나의 점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 지도 위의 몇 미리에 불과한 땅을 더 갖기 위해 남과 북의 대표자들은 격렬한 언쟁을 벌인다. 그러나 이 다소 심심해 보이는 협상의 결과는 실제 애록고지로 날아가면 살벌한 결과로 이어진다. 지도에서 현장으로 다가가는 이 시선의 전환은 그래서 이 영화의 반전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애록고지의 전황을 포착하는 시선 역시 이 지도에서 전장으로 가는 시선과 동일하게 이동한다. 방첩대 소속으로 후방에 있던 강은표(신하균)의 시선을 쫓아가기 때문이다. 강은표는 뭔가 적과 내통하는 편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수사하기 위해 애록고지에 주둔한 악어부대로 들어간다. 즉 철저히 객관적이고 냉철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그가 애록고지에서 과거 친구였던 김수혁(고수)을 만나고, 그 하루에도 주인이 몇 번씩 바뀌는 애록고지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차츰 그들과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멀리서 봤던 풍경과 가까이서 보는 현실 사이에 괴리감을 만들어내며 한국전쟁으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만큼의 거리를 갖고 있는 현재의 관객들을 좀 더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만든다.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악어부대의 병사들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알 사이를 달려가는 장면은 원경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그림처럼 보인다. 마치 거대한 흙더미 위에 개미들이 뒤엉켜있는 것처럼 누가 누구편인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그 원경의 그림은 그러나 이미 관객들에게 익숙한 이 영화의 몇몇 주인공들의 사투를 따라가는 근경에 이르면 하나의 지옥도로 다가온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인물들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죽어가는 현실을 그 원근법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뺏고 빼앗기는 끝없는 전투장면의 반복 속에서 변해가는 이 전쟁에 대한 생각이다. 그들은 이제 차츰 이 전쟁이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전쟁 자체와 자신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애록고지를 중심으로 남과 북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몇몇 시퀀스들은 그래서 이 전쟁영화를 휴먼드라마로 만드는 이유다. 고지는 그저 거기 우뚝 솟은 땅일 뿐이고 이쪽에서 노래하면 저쪽에서 들릴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대치하고 있는 병사들은 점점 자신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한다. 그래서 군인으로서는 서로에게 총칼을 들이밀고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는 서로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 영화는 궁극적으로 이 멀고 가까움과 이쪽과 저쪽의 사이에 놓여진 대결구도의 간격을 공감의 시각으로 채워놓는다.

고지 하나를 놓고 이처럼 다채로운 이야기를 포착해내는 원근법이 있을까. 그 원근법은 공간적으로도, 인물과 인물 사이에도, 남과 북이라는 대치 상황 속에서도, 또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다양한 시각들을 포섭해낸다. 그리고 이 원근법은 전쟁영화가 가진 위험성과 한계를 ‘고지전’이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인의 향기’, 이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주는 진지함

'여인의 향기'(사진출처:SBS)

알파치노가 주연한 ‘여인의 향기’는 우리에게 탱고로 기억된다. 장님이 된 퇴역장교 슬레이드(알파치노)가 어느 식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과 추는 탱고. 그 장면이 좀체 잊히지 않는 것은 그 속에 꽤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슬레이드는 절망감 속에 자살여행을 떠난 것이었고, 그래서 죽기 전 해볼 수 없던 것들을 해보며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우는 중이었던 것. 그래서 그 춤은 절망감 속에서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는 삶의 의지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아도 선율을 따라 움직이는 몸처럼.

김선아의 복귀작, ‘여인의 향기’는 여러모로 알파치노의 ‘여인의 향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여행사 말단직원으로 지내다 어느 날 암 선고를 받는 이연재(김선아)는 뭔가 죽기 전에 못해본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1등석 비행기를 타고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우연히 그녀가 일했던 라인투어 본부장인 강지욱(이동욱)을 만난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의 구조를 따르고 있고, 여기에 김선아표 로맨틱 코미디가 덧붙여져 있지만, 흥미로운 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은 이 가볍기 그지없는 로맨틱 코미디에 삶에 대한 어떤 진지한 태도를 부여한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설정은 상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던지는 삶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꽤 진지하다. 연재에게 암 선고를 내리는 종양내과 의사 채은석(엄기준)이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비정한 태도는 의미심장하다. 다가오는 죽음을 알고 현재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보내려는 연재와 달리, 은석은 죽는다는 그 사실에만 집착한다. 즉 어떤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항암제가 필요 없는 환자에게 ‘죽음을 준비시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환자는 그날 밤 죽음을 맞는다. 은석의 말 한 마디에 희망의 끈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거창할 것 없이 이 드라마는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시한부 인생은 사실 짧게 본 우리 삶이 아닌가. 그러니 어차피 죽음으로 돌아가게 될 우리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이 드라마의 주제다. 흥미로운 것은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연재의 삶이 달라지고, 그녀로 인해 주변인물들 즉 지욱이나 은석의 삶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라인투어의 본부장인 지욱은 재벌2세로 삶 자체를 권태롭게 여기는 인물. 그에게 5백만 원짜리 요트투어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이 요트에 연재가 함께 타자 이야기는 달라진다. 연재는 말한다. “직접 겪어보고 체험해봐야 좋고 나쁜 것을 알 수 있다”고.

은석은 연재를 만나 어딘지 자신의 의사로서의 생활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겼던 환자들이 연재라는 인물에 의해 차츰 그들 모두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연재의 죽어가는 삶이 은석과 지욱에게 삶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신데렐라 스토리 구조는 역전된다. 은석과 지욱이 연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재가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여인의 향기’는 저 알파치노의 작품이 말하는 것처럼 삶에 대한 의지를 표상한다.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또 곧 죽음이 임박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도, 그 강렬한 향기는 삶의 향기처럼 여전히 유혹적이다. 그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향기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대중적인 장르로 유쾌하게 포장한 이 드라마는 그래서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쉘 위 댄스?


진지함과 엄격함을 무너뜨리는 통쾌함, '라디오스타'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라디오스타'는 게스트를 소개하는 방식부터 남다르다. 거기에는 약간의 깐족거림이 들어있다. '나는 가수다' 출신 가수들을 소개하면서 '나가수의 변방'이라고 부르고, "떨어진 자 김연우, 제 발로 나간 자 백지영, 매니저란 이름으로 날로 먹는 도대체 역할이 모호한 지상렬"로 지칭하는 식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어딘지 상대방을 예우해주고 띄워주는 그런 토크쇼들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라디오스타'가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토크쇼는 '황금어장'이 그러하듯이 게스트를 배려한다기보다는 시청자를 더 배려한다. 그래서 재미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게스트와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때론 공격적으로 물어뜯기도 한다.

하지만 '라디오스타'의 이런 도발적인 자세는 절대로 게스트를 무시하거나 방송분량만을 쪽쪽 뽑아먹으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전혀 다른 접근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스타들의 다른 이면을 끄집어내는 게 목적이다. 그래서 그 다른 면모를 통해 거기서 우리는 그 스타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김연우의 노래 부르는 모습만을 봐왔던 시청자들이라면 '라디오스타'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친근하고 예능감이 넘치는 또 다른 김연우를 발견했을 것이다. 이미 김연우가 '나는 가수다'를 통해 말 그대로 잘 나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얘기. 그렇다고 겸양을 떠는 건 '라디오 스타'의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마구 자랑하고 드러내면서 그것을 경거망동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게 '라디오 스타'의 방식이다.

몇 주 동안 '나는 가수다'를 기다리다 겨우 두 곡 부르고 하차한 김연우에게 윤종신은 "스케치북에 가도 두 곡 부르고 나온다"고 깐족대고, 김구라는 "보컬 트레이너로 유명한데 손님이 뚝 끊겼다"는 얘기를 꺼내고는 "저라도 등록할까요?"하고 장난을 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윤종신이 '타깃을 주부로 돌려 보세요"라고 말하면서 웃음이 빵 터지는 식이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김연우를 두고 김구라가 '유남규 닮은 가수'라고 끄집어내면 그 옆에서 김희철이 탁구치는 모습을 흉내 내는 방식. '라디오스타'는 그 악동 같은 MC들의 면면이 빛날 때 웃음이 터지고, 그럴 때마다 게스트의 새로운 면면이 슬쩍슬쩍 드러난다.

이러면서도 이런 지나친 듯 보이는 장난이 허용되는 것은 게스트들의 준비된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김연우는 아예 내놓고 경거망동 캐릭터로 자화자찬을 일삼는데, 이것은 MC들의 공격(?)과 잘 합이 어우러진다. 본인 스스로 '발라드신, 연우신'이라고 말하는 김연우는 MC들의 공격을 허용하는 셈이다.

물론 MC들이 공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스스로 자신을 무너뜨려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정석원과 두 달 만났다는 백지영의 얘기에 김희철이 자신은 "세 달이면 이별"이라며 "오래 만났다"고 말한다거나, 백지영이 정석원을 '어버'로 부른다고 하자 윤종신이 자신이 그렇게 아내를 부르면 "진짜 업을 것"이라며 "와이프가 절 업어도 충분히 어울린다"고 말하는 식으로 자신을 무너뜨린다.

흥미로운 건 이 '라디오스타'의 한 없이 엉뚱하고 가벼운 이야기 주제들이다. '무릎팍 도사'가 어딘지 진지한 주제들을 갖고 인생을 이야기한다면 '라디오스타'는 너무 소소해 저게 과연 토크쇼에 어울릴까 생각되는 것들을 주제로 올린다. 김연우의 '털'이 화제로 오르고, "털 많은 사람이 정도 많다"는 지상렬의 엉뚱한 얘기에 "아 그러면 외국사람들은 다 정 많어?"하고 김구라가 받아치는 식으로 이야기는 한없이 가벼워진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렇게 진지함을 벗어날수록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그 카리스마 넘치는 김연우가 클럽 춤을 추고 합기도 유단자라는 이유로 전방낙법, 측방낙법, 발차기를 하는 대목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에는 '라디오스타'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웃음의 결이 느껴진다. 그것은 엄격함과 진지함을 무너뜨리는 통쾌함을 가진, 마치 서민들의 일상적인 격 없는 대화가 주는 즐거움이다. 여기에 '라디오스타'라는 정체성에 맞게 음악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 이것이 이 특별한 토크쇼가 사는 법이다.


1인 게스트 토크쇼, 왜 대세가 됐을까

'무릎팍도사'(사진출처:MBC)

'놀러와'는 '인물열전' 2탄으로 심수봉을 초대했다. 1탄은 전유성이었다. 본래 게스트에 대한 배려와 집중도가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1인 게스트를 중심에 세워놓은 건 '놀러와'의 새로운 시도다. 물론 심수봉을 받쳐주는 게스트로 임백천과 이상우가 출연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받쳐주는 역할일 뿐 이 '인물열전'의 초점은 심수봉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그 토크쇼의 흐름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보인다. 여러 군데서 '무릎팍 도사'의 그림자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미리 조사한 게스트가 살아온 프로필을 읽어나가는 것이나 그러면서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그리고 중간 중간 이어지는 작은 코너들로 만들어내는 변화 등등. 이것은 '무릎팍 도사'가 1인 게스트를 고집하며 지금껏 뚝심 있게 해온 방식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물론 이것은 '놀러와'의 한 특집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무릎팍 도사'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은 '놀러와'뿐만이 아니다. '승승장구' 역시 1인 게스트를 모셔놓고 네 명의 MC가 얘기하기보다는 귀를 열어놓는 프로그램으로 그 방식도 '무릎팍 도사'와 유사하다. '당신의 사전'은 키워드를 통해 게스트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코너로, '무릎팍 도사'가 '건방진 프로필' 등으로 게스트의 프로필을 흥미롭게 전하는 방식의 변화된 형태다. 여기에 '승승장구'만의 특별한 형식인 '몰래온 손님' 같은 코너는 이 토크쇼를 좀 더 차별화된 방식으로 만들어준다.

초반 집단 게스트를 통해 좀 더 버라이어티한 맛을 보여주었던 '강심장'에게 한참 밀리던 '승승장구'는 최근 들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물론 여전히 1인 게스트 토크쇼가 갖는 한계인 게스트 의존도가 높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평균적인 흐름을 보면 '강심장'이 과거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반면, '승승장구'는 어느 정도 고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젊은 층들의 유동률이 많은 '강심장'과 비교해 '승승장구'가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요일 밤에 SBS가 '밤이면 밤마다' 대신 '힐링 캠프'를 런칭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다. 어딘지 시끌벅적하던 '밤이면 밤마다'와는 완전히 다른 '힐링 캠프'는 1인 게스트를 모셔놓고 말 그대로 '힐링'의 느낌을 주는 편안함을 선사하는 토크쇼다. '승승장구'의 캠프 버전처럼 읽히기도 하는 이 토크쇼는 역시 그 연원을 찾아가보면 '무릎팍 도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웃고 울면서 총정리하는 듯한 그 토크쇼의 흐름은 분명 '무릎팍 도사'가 만들어낸 것이다.

토크쇼는 당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한 때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했던 이른바 '집단 토크쇼'는 여러모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영향이 짙다. 1대1로 주고받는 전화 같은 과거의 소통방식은 인터넷으로 오면서 여러 개의 창이 화면 위에 열려진 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낯설지 않게 했다. 물론 집단 토크쇼는 또한 뭔가 1대1로 주고받는 방식이 갖는 홍보적인 성향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상쇄시키기도 했다. 어느 한 사람에게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그만큼 과도한 집중이라 여겨졌던 것.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시간을 할애 받아 각자의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집단 토크쇼는 그래서 심지어 민주적(?)인 방식이라고까지 여겨지게 됐다.

하지만 이 집단 토크쇼의 트렌드는 이제 조금씩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제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고 해도 TV는 여전히 TV인 셈이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오히려 배틀로 변질되고, 민주적인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한 사람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하는 예의 없는 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정신없음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피곤함을 재현한다. 디지털이 고도화될수록 거꾸로 아날로그를 찾듯 사람들은 다시 좀 더 편안한 토크쇼를 찾게 됐다.

모두가 집단화되고 배틀화되던 토크쇼의 경향 속에서도 꿋꿋이 1인 토크쇼를 고집한 '무릎팍 도사'가 새삼 주목되는 건 최근의 이런 새로운 경향이 그 뒤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인 토크쇼는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무릎팍 도사'는 과거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진화를 보여준 게 사실이다. 1인 토크쇼가 갖는 홍보적인 성향을 넘어서기 위해 적절한 긴장과 대결구도를 무릎팍 도사라는 캐릭터를 통해 장착해내고, 그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낱낱이 그려내는 토크쇼. '무릎팍 도사'는 그래서 지금 점점 트렌드가 되고 있는 1인 게스트 토크쇼 시대를 새롭게 열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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