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참 다양하게도 비유된다.

삶을 인생의 여정으로 비유하기도 하고

글을 쓰는 일도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가는 여행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물론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역시 잠시 이 쪽의 불을 끄고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말하기도 한다. 

여행과 나날

여행에는 낯설음과 익숙함 혹은 새로움과 진부함 나아가 차이와 반복의 이중주가 담겨 있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낯설고 새롭고 어딘가 지금과는 차이가 있는 경험을 하게 해준다.

하지만 제아무리 낯설고 새롭고 차이가 나는 경험으로서의 여행이라도

같은 곳에 오래 머무르거나, 혹은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그 경험은 익숙해지고 진부해지기 마련이다.

삶은 그래서 이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 새로움과 진부함 사이 그리고 차이와 반복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행위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그것 역시 삶과 여행을 빼닮았다는 걸 알고 있다.

처음에는 새로운 단어들이나 말들이 갈수록 익숙해지면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그 단어나 말들이 지긋지긋해지고 더이상 쓰고 싶어지지 않게 된다. 

여행과 나날

“나는 말(言)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 여행이란, 말에서 도망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여행과 나날'에서 각본가인 '이(심은경)'는 그렇게 말한다. 

이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각본가로 일하고 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쓰는데, 아마도 그녀에게 처음부터 일본어가 쉬웠을 리는 없다. 

이건 심은경이라는 배우가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소회하고도 일치한다.

그 일본어를 쓰며 하는 연기는 그래서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한국어로 하던 연기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연기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본어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이는 그마저 '말의 틀'에 갇히고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슬럼프에 빠지기 전 그녀가 쓴 작품으로 된 영화는 여름 날 어느 낯선 바닷가에서 만난 소년 소녀의 이야기다.

대단한 사건도 대단한 대사도 없지만 묘하게도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그 영화는

그 무료한 바닷가에서 함께 바다 속으로 뛰어들고 수영하는 광경을 관능적으로 담아낸다. 

작가의 이의 무료함은 그렇게 영화라는 세계 속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여행의 낯설음을 꿈꾸게 한다. 

여행과 나날

그 작가의 권태로움이 극에 달해 말의 틀에 갇혀버린 이는

이제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말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한다. 여행을 떠난다. 

영화 속 세계가 어느 여름날의 바닷가 소년 소녀의 판타지에 가까운 상상이었다면

현실 속 이가 떠난 세계는 한겨울 폭설이 내린 산 속 지도에도 없는 허름한 여관에서 만난 

괴팍해 보이는 아저씨 주인과 만난 지극히 현실적인 경험이다.

여행과 나날

하지만 이는 온천도 스키장도 아닌 이 지도 바깥에 있는 이 낯선 여관에서

주인 아저씨 벤조와 일상을 보내며, 그가 하는 엉뚱한 짓에 가담해 의외의 작은 모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벤조가 왜 혼자 그런 외진 곳에서 여관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사연도 알게 된다.

그 엉뚱한 모험을 한 후 이가 한껏 웃는 얼굴로 벤조에게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라고 말할 때

벤조가 툴툴 대며 옆자리로 눕는 장면은 이 영화의 깨알같이 빛나는 대목이다. 

여행과 나날

벤조의 사연은 자못 비극적이고 아련한 면이 있고,

그건 그의 하루하루를 온통 채우는 일상 그 자체다. 새로울 리도 없고 그러니 즐거울 리도 없다.

하지만 벤조의 그 일상 속으로 여행해 들어온 이는 다르다.

그녀는 자신의 일상 바깥으로 나와 오랜만에 즐거움을 느낀다. 

 

영화는 잔잔하기 이를 데 없고 대사도 많지 않다. 

특히 전반부에 등장하는 이가 쓴 작품 속 바닷가 소년 소녀의 이야기는

익숙한 영화 문법과는 사뭇 동떨어진 광경들이 등장하며

낯선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여행과 나날

하지만 그것이 영화였고, 그 영화의 각본을 쓴 이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익숙함에 갇혀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새로움의 즐거움을 얻는 것이 또 하나의 영화다. 

극중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것은 영화라는 예술이

익숙함의 틀에 갇혀 즐거움을 잃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시 즐거운 여행으로 인도하는가를 담아낸다. 

 

이 영화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삶은 둘 중 하나가 된다.

여행을 하고 있거나 혹은 나날(일상)을 살아가고 있거나.

그 반복 속에서 끊임없이 즐거움을 추구하며.

여행과 나날

신인감독 김연경

“얘네가 미들 공격이 없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빨리 한 쪽으로 와서 투 블로킹 해야지.”

김연경 감독은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와의 경기를 준비하며

선수들에게 상대팀이 중앙 공격이 없으니

우리쪽 중앙 수비수가 양 사이드로 들어가

두 명이 블로킹을 하면 승산이 있다는 걸 강조했다.

그리고 10대2로 지고 있는 상황에 이 전략은 그대로 먹혀들었다.

투 블로킹으로 점수를 따내며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

이 한 포인트가 기점이 되어 점수는 11대11까지 바짝 따라붙었다.

신인감독 김연경

MBC 배구 예능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의 이 한 장면은

이 스포츠예능에 최근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아마도 중계방송이었다면 이 블로킹 장면은 흔하디 흔한 1점 포인트를 얻는 장면으로 지나갔을 게다.

하지만 <신인감독 김연경>은 그 포인트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김연경 감독의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이 한 수로 인해 팀 분위기가 상승세를 가져왔다는 걸 보다 디테일한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그건 마치 <슬램덩크 더 퍼스트>나 <하이큐>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애니메이션의 편집 방식과 유사하다.

경기를 보여주지만, 중간 중간 어떤 한 포인트를 내는 순간에

그 점수가 나기까지의 준비 과정들을 플래시백으로 편집해 보여준다.

그러니 그 한 점의 타격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김연경의 작전이 바로 바로 선수들의 경기를 통해 들어맞는 순간을 접하며 열광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여자배구가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였나.

신인감독 김연경

올해 은퇴한 김연경은 선수 시절 ‘언더독의 해결사’로 불렸던 인물이다.

일본 최하위팀 JT마블러스에 입단해 창단 사상 첫 우승을 안겼고,

배구 최강국 튀르키예의 만년 하위팀 페네르체바에 들어가 창단 최초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6위 성적의 중국 상하이 유베스트, 튀르키예 엑자시바시에서도 모두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바로 그 김연경이 여러 이유로 은퇴하게 된 여자배구 선수들로 팀을 꾸려

신인감독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스포츠예능이다.

예능이라고 하면 대충 은퇴 선수들의 방송 도전 정도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이 프로그램은 목표 자체가 다르다.

2부리그가 없어 팀에서 밀려나면 기량이 있어도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선수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목표는 다시 프로팀이나 실업팀에 복귀해 선수로 뛰는 것이다.

프로 제8구단을 목표로 ‘언더’에서 ‘원더’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아 팀명을 ‘원더독스’라 정했다.

신인감독 김연경

결과는 놀라웠다.

김연경의 지도 하에 성장을 거듭한 원더독스는

2024-2025 시즌 프로통합 준우승팀인 레드스파크스까지 꺾으며

팀의 목표였던 50% 승률을 달성했다.

또한 선수들의 목표였던 프로팀과 실업팀에 실제 복귀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은퇴했던 이나연 선수가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고,

김현정 선수 또한 지난 9월 수원시청 배구단에서 실업 배구선수로 뛰게 됐다.

리얼 성장담이 갖는 남다른 몰입감 때문일까.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놀라운 무려 4.9%(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특히 광고의 지표가 되는 2049 시청률은 4주 연속 주간 방송 프로그램을 통틀어 1위를 기록했다.

신인감독 김연경

<신인감독 김연경>이 보여주고 있는 건 실제 스포츠 중계보다 더 재밌는 스포츠예능의 강력한 영향력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자배구에 관심을 갖게 된 팬층이 급증했다.

실제 이번 시즌의 마지막 경기로

V리그 최다 우승팀이자 2024-2025 시즌 프로통합 우승팀인 핑크 스파이더스와 치러진 직관 경기에는

3일 만에 약 1만 명이 신청해 전석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원더독스의 팬들은 시즌2 제작은 물론이고

나아가 MBC가 프로배구팀을 창단해 제8구단이 되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무엇이 스포츠 자체에도 변화를 만드는 스포츠예능의 시대를 열게 한 것일까.

신인감독 김연경

과거 스포츠예능은 스포츠 자체보다 예능에 초점이 더 맞춰진 가벼운 경향이 있었다.

KBS <천하무적 야구단>이나 <우리동네 예체능> 같은 프로그램이 그 사례다.

하지만 KBS <씨름의 희열>이 방영되면서 스포츠예능은 실제 스포츠까지 변화시키는 묵직한 힘을 발휘했다.

점점 저변이 사라지고 있는 씨름을 마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연출하고,

다각도의 카메라로 연출된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팬층이 생겨났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마지막 직관 경기가 실제로 치러지진 못했지만,

순식간에 전석이 매진되는 놀라운 결과도 만들어졌다.

스포츠예능의 변화는 방송에 진출하는 스포츠스타들에게도 변화를 일으켰다.

강호동이나 서장훈처럼 방송인으로서 출연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자신이 뛰었던 스포츠를 중흥시키기 위한 진정성을 갖고 출연하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이 출연해 프로야구의 막강한 저변을 만든 JTBC <최강야구>는 단적인 사례다.

또 축구 스타 최용수가 감독이 되어 꾸린 팀으로 K3, K4 리그 팀과의 실전을 벌이는 <슈팅스타>도 마찬가지다. 

신인감독 김연경

스포츠예능이 스포츠중계보다 재밌는 이유는 촬영과 편집에 있어서 보다 자유도가 넓기 때문이다.

<신인감독 김연경>에서 선수들은 저마다 마이크를 달고 경기에 들어간다.

경기를 찍는 카메라도 선수 한 명 한 명을 따라다닐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다.

그러니 스포츠중계가 포착해내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동작들 하나하나를 이 마이크와 카메라는 잡아낸다.

<슈팅스타>에서는 축구경기에 레이싱 드론이 띄워지고,

선수들 유니폼에 소형 카메라가 부착되어 박진감 넘치는 영상과 음향이 담겨진다.

게다가 생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편집이 가능하다.

마치 경기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디테일한 장면들이 가능해지는데,

이건 지금의 팬들이 원하는 것들이다.

이제 스포츠중계는 스포츠예능에 배워야 할 상황이 됐다.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중계를 팬들이 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MBC)

국보

솔직히 일본에서 1천만 관객을 넘겼다는 사실이 주는 기대감만큼

3시간이 넘는 영화라는 문턱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일 감독의 '국보'는 그 문턱을 간단히 넘겨 버리고 

오롯이 기대감을 꽉 채워주는 것으로 3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예술의 세계를 보여줬다. 

 

가부키라는 일본의 전통문화가 낯설지 않다면 거짓말일 게다. 

아마도 한국의 관객들, 어쩌면 일본 관객들조차 이 영화를 통해 가부키를 좀더 가까이서 봤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낯설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지루할 틈 없이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그 이유는 가부키 자체보다 하나의 예술을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경쟁하면서 서로를 돕기도 하는 두 예인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다루고 있어서다. 

국보

흥미로운 건 두 예인을 통해 이 작품이 보여주는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의 경계다.

가부키는 가문의 후계자가 선대의 이름을 물려 받는 보수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즉 핏줄을 이어받는 '내부인'들에 의해 그 예술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인 기쿠오는 그 핏줄을 이어받은 후계자가 아니다.

아버지는 야쿠자였고 어린 나이에 자신의 눈앞에서 살해됐다. 

가부키의 재능을 갖고 있던 기쿠오는 그 후, 가부키 명문가인 하나이 한지로 가문에 들어와 

후계자인 슌스케와 함께 최고의 온나가타(여성의 역할을 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 경쟁한다. 

재능이 남달라 스승조차 자식인 슌스케가 아닌 기쿠오에게 이름을 물려주려 할 정도지만

끝내 그 내부인의 장벽은 외부인인 기쿠오에게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 한다.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어. 할 수만 있자면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가문의 혈통인 슌스케 대신 스승의 선택을 받아 무대에 서게 되지만, 

긴장감에 손을 덜덜 떨며 분장을 하지 못하는 그는 슌스케에게 그렇게 토로한다. 

 

'국보'가 가부키라는 일본 전통문화를 소재로 가져오면서도

굳이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의 장벽을 이 예술의 세계 안에 그려넣은 건

재일교포로 살아온 이상일 감독의 정체성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한국인의 피를 갖고 있지만 일본인으로서 살아온 그가 

내부인과 외부인 사이 경계인으로서 느꼈을 정서가 이 설정에서 진정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일본에서 1천만 관객을 넘기며

역대급의 흥행에 성공했다. 

이 흥행에는 가부키라는 전통 요소가 끌고온 기성세대들의 관심만큼

그 예인들을 통해 보여주는 달라진 시대에 대한 젊은세대들의 호응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내부인과 외부인의 경계에 선 이상일 감독이 오히려 그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에

과거를 가져왔지만 현재적 가치를 잇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보

영화는 내부인과 외부인의 대결 그리고 승패로 끝을 내지 않는다. 

물론 그들은 평생에 걸쳐 경쟁하지만

끝끝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예술의 최고 경지를 향해 나아간다. 

핏줄은 예술의 완성이라는 하나의 경지 아래에 별 의미도 없는 어떤 것이 되어간다.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그 위에 빨간 선을 긋는 가부키 특유의 분장은

그래서 이 핏줄을 넘어서는 예술의 관점을 통해 바라보면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내겐 나를 지켜줄 피가 없다"며 절규하는 기쿠오에게 다가가

슌스케가 대신 그 얼굴에 빨간 선으로 분장을 해주는 장면은

마치 그 피를 예술로서 채워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국보

기쿠오는 어린 시절 눈앞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본 충격을 평생을 갖고 살아간다. 

눈내리는 창 밖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아버지의 모습은

색감으로 보면 흰 바탕에 붉은 색으로 남겨진 '피의 이미지'다. 

하지만 그 충격적인 트라우마를 기쿠오는 예술적 승화를 넘어선다.

무대에서 절정의 순간에 보는 꽃잎 같은 하얀 빛들 속에서

아버지가 남긴 피의 이미지는 예술의 완성으로 치환된다. 

 

"예술은 검이나 총보다 강하거든..."

 

하나이 한지로가 기쿠오에게 던지는 그 말은 

내부인과 외부인을 나누고 때론 전쟁까지 비화하던

민족주의, 국가주의 같은 구시대의 대결을 뛰어넘는

예술의 힘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 

(사진: 영화 '국보')

공개 직후 글로벌 1위 찍은 ‘이쿠사가미’, 사무라이 버전 ‘오징어 게임’?

이쿠사가미

이건 <오징어 게임>과 <바람의 검심>을 합쳐 놓은 거 아닌가.

넷플릭스 새 시리즈 <이쿠사가미:전쟁의 신>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다.

시작은 사무라이 액션으로 문을 연다.

원테이크로 찍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 치열한 전쟁터에서 사무라이들이 맞붙는 장면이다.

사가 슈지로(오카다 준이치)는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지만 곧 어디선가 날아온 무차별 포격에 함께 싸운 동료들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며 사무라이들이 이제는 설 자리가 없어진 상황을 이 전쟁 상황은 압축해서 보여준다. 

 

칼 쓰는 일 이외에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폐도령이 내려져 가난해진 데다,

마침 호열자(콜레라)까지 번져 죽어가는 가족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슈지로는

어느 날 교토의 텐류지에서 10만 엔 상금을 걸고 벌어지는 대회에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슈지로는 집을 떠나 그 대회에 참가하는데, 수백 명의 사무라이들이 모인 그 곳에서는 생존게임이 벌어진다.

살아남는 단 한 사람만이 10만 엔을 가져갈 수 있는. 

이쿠사가미

시작은 메이지 유신을 배경으로 칼잡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바람의 검심>을 떠올리게 하지만,

생존게임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오징어 게임>의 사무라이 버전으로 옮겨진다.

마지막 전쟁의 충격으로 칼을 뽑지 못하는 슈지로는 생계를 위해 참가한 소녀 카츠키와 생존하기 위해 칼을 빼들고,

죽고 죽이는 이 싸움에 뛰어든다.

<오징어 게임>이 그러하듯이 이 게임에도 주최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숨겨진 음모가 존재한다.

슈지로는 과거 한 스승 밑에서 배웠던 사형제나,

필요에 의해 동맹을 맺는 이들과 힙을 합쳐 게임의 배후를 추적하려 한다. 

 

이 정도면 <오징어 게임>의 냄새가 짙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돈과 권력을 가진 게임의 주최자가 있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참가자들의 생존 게임이 펼쳐진다.

주최자들의 음모를 파헤치고 대적하기 위한 참가자들의 연합이 생겨나고, 이들의 전쟁이 그려진다.

<오징어 게임>의 이야기 구조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쿠사가미>는 사무라이 버전 특유의 색깔을 입혀 눈을 뗄 수 없는 액션의 향연을 채워 넣는다.

<바람의 검심>에서 익숙했던 여러 특성을 가진 적들이 등장하고, 그들과 펼치는 다채로운 액션이 그것이다. 

 

<오징어 게임> 같은 데스 서바이벌 장르에 대한 글로벌 기대치가 생긴 것인지,

<이쿠사가미>는 공개와 동시에 OTT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 넷플릭스 TV 시리즈 글로벌 1위를 찍었다.

전 세계 분포를 보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대부분은 물론이고 북미와 남미, 유럽, 남태평양 국가들까지 고른 인기를 보였다.

어딘가 <오징어 게임> 신드롬의 향기가 솔솔 피어오른다. 

이쿠사가미

물론 <오징어 게임>이 갖는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들과는 달리,

<이쿠사가미>는 사무라이 액션 장르 특유의 비장미로 가득 채워져 있다.

생존 게임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같아도 일본 특유의 로컬 색깔을 보다 부각시킨 것이고,

무엇보다 사무라이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의 취향을 극대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시즌1에 해당하는 6회가 공개됐을 뿐이고, 서사도 이제 도입 정도다.

향후 시즌이 계속 공개되며 생겨날 글로벌 시너지가 예견되는 대목이다.

 

<이쿠사가미>의 등장은 넷플릭스 시리즈가 갖는 시즌제 성격의 제작 방식이

이제는 성공 콘텐츠나 장르의 로컬 버전 재해석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알다시피 IP를 소유한 넷플릭스로서는 <오징어 게임> 같은 성공을 또 다른 방식으로 재연하고픈 욕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무라이 버전이 가능하고 또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또 다른 로컬 색깔을 더한 작품들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장르화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이 늘 해왔던 방식이지만,

그 상업적인 성공만큼 반복되는 서사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처럼 게임화된 서사는 디즈니+에서 최근 공개된 <조각도시> 같은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게 됐다.

물론 무고한 이를 범죄자로 만들어내는 빌런과 싸우는 이야기지만,

<조각도시>에는 갑자기 빌런이 판을 벌인 레이싱장에서의 생존 게임이 펼쳐진다.

부유한 관전자들이 내려 보는 가운데. 

이쿠사가미

성공을 바라는 건 모든 작품의 공통된 욕망이지만,

그렇다고 작품이 균일화된 틀에 들어가 상품처럼 찍혀지는 건(물론 외형은 다른 것처럼 보이려 변환되지만)

어딘가 퇴행적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제 사무라이 버전의 <오징어 게임>이 등장해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는 건 어쩌면

이 열풍처럼 번질 데스 서바이벌이라는 장르의 확산을 예감케 한다.

그것은 어쩌면 넷플릭스 같은 관전자가 전 세계를 두고 펼치는

콘텐츠 서바이벌 전쟁의 ‘라스트 맨 스탠딩’ 게임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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