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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정 작가가 ‘붉은 달 푸른 해’의 미로에 시청자들을 가둔 까닭

역대급 문제작이라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사실 쉽게 다가오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도현정 작가가 아동학대라는 이 특수한 범죄를 그리 쉬운 방식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게다. 가장 흔한 스릴러의 문법으로 아동학대를 당하는 피해자가 등장하고, 그 가해자에 대한 처절한 응징이 이어지는 그 고전적인 방식을 도현정 작가는 쉽게 취하지 않았다. 

대신 작가가 선택한 건 미로였다. 의문의 사건들이 터지고, 각각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동일한 패턴이 담긴다. 그것은 살해된 자가 있는 곳에 시가 있고 아이가 있다는 공통점이다. 보통 스릴러는 병렬적인 사건을 다루는 형사에 집중하거나, 범인과 형사 간의 끝없이 쫓고 쫓기는 과정을 담는 방식을 취하곤 한다. 하지만 <붉은 달 푸른 해>는 각각의 사건들이 관련 없는 듯 터지고, 작가도 쉽게 그 전말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볼수록 미로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여기에 어린 시절의 충격적 경험으로 그 때의 기억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는 차우경(김선아)과 이 사건을 추적하는 강지헌(이이경) 형사의 시점이 더해지면서 이 미로는 더 복잡해진다. 차우경은 녹색 옷을 입은 소녀를 계속해서 환영으로 보게 되고, 그 소녀가 이끄는 곳에서 연쇄적으로 터지는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흔한 고구마와 사이다를 반복하는 시청자들로서는 이 드라마에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복잡한 미로 방식의 전개다. 

하지만 이 미로는 기묘하게도 시청자들을 잡아 끌어당긴다. 그것은 일련의 사건들이 아동학대와 관련이 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나고, 그 뒤에 붉은 울음이라는 조종자에 의해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살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여기서도 복잡한 감정에 휘말린다. 그것은 범인이라고 하면 응당 잡혀야할 악역이어야 하지만, 이 드라마 속에서 악역은 범인이 아니라 범인에게 살해당하는 어른들이다. 그들은 끔찍한 아동학대를 해왔고, 결국 붉은 울음에 의해 응징되는 것. 

한울센터에서 일하던 이은호(차학연)가 범인이라는 게 밝혀지고 차우경에게 총을 겨눠 결국 강지헌의 총에 맞아 죽게 되면서 그 감정은 복잡해진다. 범인을 잡아 통쾌하기는커녕 차우경과 강지헌이 그러하듯이 그에 대한 연민과 슬픔의 감정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윤태주(주석태)가 이은호의 형이었고 그가 당한 지옥 같은 학대를 듣고는 붉은 울음이 되어 저 비정한 어른들을 응징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도 마찬가지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형사 강지헌이 윤태주가 “당신이라면 용서할 수 있었겠냐”는 질문에 “용서 못했을 것”이라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시청자들 또한 공감하는 대목이다. 

어느새 시청자들은 이 미로를 헤매며 여러 사건들을 겪고, 그 과정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벅찬 책임감’이라는 걸 실감한 강지헌의 변화를 그대로 느끼게 된다. “용서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응징하지는 않는다”는 강지헌의 이야기는 또한, 차우경이 기억을 되찾고 새엄마인 허진옥(나영희)이 죽게 한 친동생이 바로 녹색 옷을 입은 소녀라는 걸 알고도 응징하지 않는 이야기와 연결된다. 차우경이 격분하여 허진옥을 향해 망치를 들었을 때,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끌어안아 이를 막은 건 바로 그 ‘녹색 옷을 입은 소녀’의 환영이었다. 

사이다도 없고 그렇다고 고구마도 아니다. 다만 미로 속에서 헤매다 그 미로의 구조를 다 알게 된 마지막에 이르러 그걸 설계한 도현정 작가의 진심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이 작가가 얼마나 아동학대 문제가 야기하는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들의 지옥을 깊이 들여다보려 했고, 한 마디로 표현해낼 수 없는 그 복잡한 감정을 미로를 통해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껴보게 하려 애썼는가가 느껴지는 데서 오는 뭉클함이다. 작가는 미로에 시청자들을 가뒀고,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 미로에 빠져들었다. 도현정 작가에 입덕했다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허튼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껴지게 하는 드라마였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붉은 달 푸른 해’, 아동학대자들에 대한 응징 그 양가감정

누가 봐도 아동학대를 해온 부모라는 게 뻔해 보이지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아이가 그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그 광경을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아동학대를 당해온 하나를 친딸이라며 개장수 고성환(백현진)이 굳이 데려가는 그 모습을 보는 차우경(김선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사 강지헌(이이경)은 위험할 때 누르면 자신이 찾아가겠다며 아이의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채워주며, 고성환에게 자신들이 항상 주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장면은 <붉은 달 푸른 해>라는 문제작이 제기하고 있는 질문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동학대는 그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는 가해사실을 부인하기도 하고, 그걸 은폐하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은 다시 그 부모에게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과연 이런 부모들을 부모라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를 차에 태우고 가는 길에 고성환은 “그걸 말했냐”고 물었고, 아이는 얘기하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하면 어떻게 될 거라고 했냐고 되묻는 고성환에게 아이는 “목을 비틀어 죽여 버린다”는 끔찍한 말을 했다. 아이가 당한 학대와 그걸 숨기려던 이유가 이 대화 속에는 들어 있었다. 

하나가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놀이터에서 놀다 아이들이 발견한 죽은 새를 하나가 묻어주는 장면은 그 학대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예감하게 해준다. 하나는 죽은 무언가를 묻어주었거나 묻는 장면을 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죽은 새를 그렇게 묻어줬던 게 아닐까. 

결국 개장수 아빠와 집으로 가게 된 하나는 그 날 밤 끔찍한 소리를 듣고는 차우경에게 전화를 건다. 차우경은 아이가 또 학대를 당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그 밤에 차를 몰아 하나의 집까지 달려오지만, 아이가 들은 소리는 개장수 아빠가 끔찍한 응징을 당하는 소리였다. 그걸 보게 된 차우경 또한 그 응징자에 의해 납치됐다. 강지헌은 과연 차우경과 하나를 구해낼 수 있을까. 

아동학대를 하는 부모와 그 부모를 응징하는 누군가를 보는 감정은 그래서 복합적이다. 그런 부모도 부모냐며 공분을 일으키지만 그가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에서는 시원하다기보다는 끔찍함을 느끼게 된다. 이건 어쩌면 우리가 뉴스 등을 통해 아동학대 사건을 들여다볼 때 느끼게 되는 양가감정이다. 심지어 죽이고픈 살의까지 느껴지는 분노가 피어오르지만, 그런 살의가 갖는 불편함 또한 느껴지기 마련이다. 

‘부모 같지 않은 부모’들을 응징하는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보면 <붉은 달 푸른 해>라는 제목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다. 붉어서 해인 줄 알았는데 달이었다는 것이고, 푸르러서 달인 줄 알았는데 해였다는 의미. 부모인 줄 알았는데 끔찍한 아동학대범이었고, 반대로 잔혹한 연쇄살인범인 줄 알았는데 끔찍한 아동학대범들을 처단하고 아이를 구해내려는 이였다는 것. 차우경은 과연 어느 쪽일까. 또 미스터리한 인물인 이은호(차학연)는?(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붉은 달 푸른 해’가 되돌아보게 만든 교육문제와 아동학대

“난 달라. 당연히 다르지. 난 우리 빛나가 잘되라고 한 거잖아. 조금만 참으면 미래가 달라지는 데. 애가 자꾸 다른 짓을 하니까.”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 민하정은 자신이 딸 이빛나(유은미)를 학대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이 ‘사랑’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이가 더 잘되라고 한 행동이라는 것. 

모든 것들에 이유를 달고 있었지만 그 행동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명백한 아동학대였다.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이유를 내세워 아이를 감금하고, CCTV까지 달아서 아이의 행동을 감시했다.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지 않는 아이에게는 ‘사랑의 매’라며 체벌을 가했다. 그 사실을 차우경(김선아)에게 고백한 빛나는 온 몸에 난 상처들을 드디어 보여줬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느냐는 차우경의 질문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니깐. 엄마가 하는 일은 다 옳고, 다 날 사랑해서 하는 거니까요. 회초리로 맞는 것도 상처가 나는 것도 대학만 가면 다 끝나는 일이니깐. 근데 그 전에 내가 죽을 것 같아요.” 아이는 그 모든 학대조차 엄마이기 때문에 감내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아동학대가 가진 특별한 지점을 드러낸다. 

아동학대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지만, 그 관계가 부모 자식 간이라면 안타깝게도 피해자 스스로 이를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제 학대가 벌어져도 사건화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특히 ‘교육과 미래를 위해서’ 같은 명분이 붙을 때는 그것이 학대인지조차 가해자도 피해자도 인지하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민하정이 자신의 행동을 아동학대라 여기지 못했다는 건, 그가 “짐승”이라고 했던 해찬이 아빠가 한 짓과 자신이 한 짓이 다르지 않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아동학대를 하는 누군가에 분노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그 짐승이라 부르던 아동학대자였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결국 뒤늦게 자신이 해왔던 짓이 아이를 학대해온 거라는 걸 깨달은 민하정이 그래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논리적이다. 그는 아동학대자에게 분노한 바 있고, 그게 바로 자신이라는 걸 확인하게 되고는 이제 자기 자신이 그 분노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처단하는 선택을 하게 된 것.

<붉은 달 푸른 해>는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지만, 뚜렷한 일관된 메시지를 제시해왔다. 그건 바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민하정과 이빛나의 이야기에는 <붉은 달 푸른 해>가 바라보는 아동학대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다. 아동학대라고 하면 그저 특별한 범죄자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저 평범해 보이는 집안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것. 특히 치열한 경쟁체제에 내몰리고 있는 잘못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어쩌면 아이들은 저마다 학대당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다 너 잘되라고 한 일이라거나 사랑해서 그랬다거나 하는 그럴 듯한 합리화를 들이대지만 잘 들여다보면 우리네 교육이 ‘미래를 위해서’라며 감내하라 말하는 그 보이지 않는 체벌이 지금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 돌이켜봐야 하지 않을까. 아이는 호랑이를 그래도 가면을 쓴 엄마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실상 이런 비뚤어진 경쟁시스템 속에서 어른들은 엄마 가면을 쓴 호랑이가 되어가는 건 아닌지.(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문제작 '붉은 달 푸른 해'의 미로에서 느끼는 끔찍한 현실

보면 볼수록 미궁에 빠져드는 것만 같다. 하지만 이 미궁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 안을 더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이고, 또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MBC 수목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는 오랜만에 보는 문제작이다. 이를 문제작이라고 말하는 건,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따라가기보다는 오히려 색다른 길을 찾아감으로써 시청자들을 혼돈에 빠뜨리고, 그 미궁의 늪에서 허우적대게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미궁 속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드라마의 독특한 힘 때문이다.

드라마는 서로 연관이 없는 듯한 여러 개의 살인사건들을 시작부터 툭툭 던져놓는다.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형을 살고 나온 박지혜(하주희)가 폐놀이공원에 세워진 자동차 안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고, 그를 죽인 범인은 그의 범죄를 혐오하던 의사로 역시 자해 끝에 자살하고 만다. 두 번째 사건은 평소 아내와 아이를 학대해오던 김동숙(김여진)의 남편이 차 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남편을 죽인 걸로 의심받던 김동숙은 ‘붉은 울음’이라는 인물이 남편 살해 방법을 알려줬다고 증언한다. 세 번째 사건은 주인공인 차우경(김선아)이 일하는 한울 아동센터 창고에서 미라가 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그 미라가 된 여자에게는 호적 신고가 되지 않은 딸이 있다는 게 밝혀진다.

사건들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드라마는 이 사건들이 동일한 키워드들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그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건 죽음과 아이 그리고 시다. 첫 번째 사건의 희생자인 박지혜의 집에서는 서정주의 시 ‘문둥이’의 한 구절인 ‘보리밭에 달 뜨면’이라는 글귀가 발견되었고, 자동차 변사사건에서 죽은 남자가 갖고 있었던 300만원이 말려진 신문에는 ‘짐승스런 울음은 울음같이 달더라’라는 싯구가 발견되며, 또 미라가 된 여인의 뒷벽에는 천상병 시인의 시 ‘썩어서 허물어진 살, 그 죄의 무게’라는 문구가 발견된다.

그래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강지헌(이이경)은 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차우경의 믿지 못할 이야기를 점점 믿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이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어찌 보면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차우경이라는 점이다. 차우경은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아마도 어린 시절 비슷한 학대를 경험했을 것이라 여겨지는 이 인물은 어느 날 한 낮에 몰고 가던 차에 치어 아이가 죽는 사고를 겪은 후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과거의 트라우마가 눈앞에 환시처럼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실 죽은 건 사내아이였지만 그 아이가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라고 생각하는 차우경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이 소녀를 보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소녀가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살인사건들의 실마리 속으로 그를 인도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학대받는 아이들을 구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 제각각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어째서 연결되어 있고, 그 배후에 있는 ‘붉은 울음’이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동시에 이 사건을 추적하고 있는 차우경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는 누구일까. 그리고 차우경이 이 소녀의 환시를 계속 볼 정도로 겪게 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드라마는 그래서 이 살인사건들의 연결고리가 되는 배후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차우경의 읽어버린 기억 속 초록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누구인가를 추적한다. 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그 역학구조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즉 차우경은 어린 시절 겪은 어떤 일 때문에 학대받는 아이들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고 있고, 바로 그런 집착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에서 주인공이 움직이게 되는 동력으로 자신의 트라우마가 작용한다는 건 흥미로운 발상이다.

사건은 아직 제대로 드러난 게 없기 때문에 분명한 전말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차우경이 갖고 있고 그래서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똑같이 생겨나게 된다는 점이다. 시청자들도 미치도록 궁금하고 거기 어디선가 학대를 겪고 있을 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차우경처럼 구해내고 싶어진다. 심지어는 그 냉혹한 어른들을 단죄하고 싶어진다. 이건 아마도 작가는 사건의 전말을 쉽게 알려주지 않고 그 끔찍하지만 앞뒤를 구분하기 힘든 미로 속에 시청자들을 헤매게 만든 이유일 게다. 적어도 우리는 그 미로를 헤매는 동안 어딘가 있을 지도 모르는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고 경각심을 갖게 될 테니 말이다.

너무 많은 아동학대에 대한 이야기들이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다보니 이제는 점점 둔감해져버린 현실이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벌어지는 믿기 힘든 사건들이나 부모 같지 않은 이들이 저지르는 학대 사건도 그 때는 끔찍했다가 차츰 잊히기 일쑤다. 그러니 이 비정한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의 미로 속에 잠시간 빠뜨리는 것으로 이 드라마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을 자각하게 만든다.

‘해님달님’으로 알려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고 말하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잔혹동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이 드라마는 그래서 진짜 어른이 잡혀 먹히고 아이들마저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비정한 세상을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통해 보여준다. 한참을 보다보면 차우경이 그러한 것처럼 나라도 나서서 동아줄을 내려주고픈 분노와 죄책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사건들을.(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키스 먼저’, 죽은 자, 죽고 싶은 자, 죽어가는 자

죽은 자와 죽고 싶은 자 그리고 죽어가는 자.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어쩌면 이 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드라마는 ‘본격 어른 멜로’를 표방했지만, 어쩌면 어른들의 사랑이란 ‘죽음’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하는 사랑일 수 있으니. 

안순진(김선아)의 딸은 죽었다. 아폴론 제과에서 만든 과자를 먹고 죽었지만 대기업은 그 죽음을 덮어버렸다. 그래서 안순진은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당시 광고를 만들었던 손무한(감우성)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그 와중에 이혼까지 한 안순진은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눈 오는 날 아무도 오지 않아 자신을 고스란히 닮아버린 쓸쓸한 동물원에서 그는 손을 그었다. 그를 따라온 손무한이 그를 구해주었지만.

손무한은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게 됐다.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왔지만 막상 죽음을 눈 앞에 두게 되면서 삶이 다시 보였다. 그가 무시했고 그래서 쉽게 지워버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죽음이 고스란히 자신 앞에 놓였다. 그는 비로소 사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자신이 무시했던 죽음들에 대해서.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로 시작했지만 그 안에 ‘죽음’이라는 주제를 담게 되면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의식들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우리는 어째서 그토록 죽음을 지워버리려 애쓰며 살아왔던 걸까. 마치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앞만 보고 살아가고 그러다 죽게 되면 마치 없던 사람처럼 쉽게 지워버리는 게 우리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죽음이란 그걸 옆에서 겪은 당사자들에게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경험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의 안순진은 그래서 억울한 딸의 죽음을 잊지 못하고 계속 끄집어내 법정에 세운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을 아폴론 제과의 회장 같은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일을 왜 들추려고 하느냐며 오히려 과거의 그 문제가 다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덮으려 한다. 또 다른 죽음을 만들어서라도.

우리의 상처 많은 현대사들이 그랬다.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붕괴되고 가스 폭발이 일어나고 지하철 화재로 참사가 벌어져도 금세 그 죽음의 기억들은 지워졌다. 아니 죽음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죽음이 없는 것처럼 부인하며 살아가다 보면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더 빨리 잊고픈 마음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죽음들이 과연 사라졌던가. 

<적당한 거리의 죽음>이라는 책을 쓴 건축학을 전공한 기세호라는 작가는, 우리 도시에서 이상하게도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며 ‘현재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죽음을 상기시키는 어떠한 사건, 사물과 마주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파리에서 묘지는 도시인들의 공원이지만 우리 도시에서 ‘죽음의 흔적들은 어딘가로 치워져 버렸다’고 한다. 툭하면 밀어버리고 새로운 걸 세우는 도시는 마치 사람의 흔적을, 누군가의 죽음을 지워내려는 강박에 걸린 도시처럼 보인다.

이 관점으로 보면 <키스 먼저 할까요?>는 딸의 죽음을 결코 잊지 못하고 죽고 싶은 한 여인이, 그 죽음을 무시하며 살다 이제 죽음을 맞게 된 한 남자의 사랑 혹은 사죄를 받는 드라마처럼 읽을 수 있다. 죽음을 지워버리려는 자들과 맞서 죽고 싶은 여인과 죽어가는 남자가 서로를 지지하며 싸워나가는 이야기. 죽음을 옆구리에 끼고 하는 진짜 사랑의 이야기.

물론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싫어하고 들여다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다만 삶의 달달함만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멜로로 달려가던 이야기가 죽음을 마주했을 때 자못 당혹스러워 한다. 하지만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 삶의 아름다운 빛을 그려낼 수 있는 건, 저 뒤에 암묵적으로 놓여진 죽음의 그림자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죽은 자가 누울 자리는 산 자들이 결정하지만, 산 자들의 삶의 방향은 죽은 자가 제시할 수 있다.’ <적당한 거리의 죽음>을 쓴 저자가 말하듯 이제 죽음을 멀리 하기보다는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 16일은 세월호 참사 4주기였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예쁜 누나' 손예진과 '키스' 감우성이 다시 깨운 연애시대

12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멜로는 여전히 설렌다. 2006년 SBS 드라마 <연애시대>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손예진과 감우성 이야기다. 12년 만에 멜로 드라마 주연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지금,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SBS <키스 먼저 할까요?>로 다시 한 번 설레는 멜로를 선사하는 중이다.

한 작품에서 멜로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이지만, 지금 두 사람이 하는 작품의 멜로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손예진이 열연하고 있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물론 나이가 좀 있는 누나와 젊은 동생 사이의 사랑을 담고 있지만, 풋풋한 청춘 멜로의 색깔을 갖고 있다. 손 한 번 잡는 일이나 키스 한 번 하는 것이 이토록 떨리는 순간으로 다가올 수가 없다.

반면 감우성이 출연하고 있는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다. 제목에 이미 담겨 있듯이 스킨십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어른들의 멜로. 그래서 손을 잡고 키스를 하는 것보다 더 마음을 움직이는 건 상대방을 이해하고 아픔을 공감하는 말 한 마디다. 그래서 이 작품은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손무한(감우성)이라는 인물이 전하는 휴머니즘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멜로다.

두 작품에서 각각 손예진과 감우성의 상대역할을 하는 배우들도 반짝반짝 빛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을 더 젊고 풋풋하게 만들어주는 장본인은 바로 상대역인 정해인이다. 소년 같은 얼굴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이 배우 앞에서 손예진이 무장해제되는 모습은 그래서 너무나 쉽게 공감이 간다. 사회적 통념 따위는 이 사랑 앞에 별 소용도 없어지는 것이다.

한편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감우성의 상대역할인 김선아는 드라마가 가진 무거움을 때론 비극적으로 때론 코미디로 풀어낼 줄 아는 배우다. 그래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드라마의 무게를 때때로 웃음으로 풀어내주며 힘겨워도 웃으며 살아가는 그런 희비극적인 것들이 우리네 삶의 진면목이라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두 멜로드라마의 긴장감은 그들의 멜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에서 생겨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장애물은 ‘사회적 통념’이다. 누나의 친구, 친구의 동생이라는 그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결실로 이어질 수 있을까. 게다가 정해인이 연기하는 서준희라는 인물은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아빠마저 재혼을 해 사실상 윤진아(손예진)의 집안에서는 ‘가족’처럼 여겨지는 인물. 그러니 가족처럼 여겨지던 인물을 윤진아의 집안에서 그의 배우자로 받아들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안순진(김선아)의 딸의 죽음이 손무한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제 곧 죽음을 앞두고 있는 손무한의 상황이 이들 사랑의 커다란 장애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두 장애물은 어떤 면에서는 죽음(손무한의)이 죽음을(안순진의 딸의) 상쇄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어쨌든 따뜻해진 봄 날씨에 이 두 작품은 봄 바람 같은 멜로감각을 다시금 깨워놓고 있다. 좀체 본격 멜로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요즘에 이만한 설렘을 줄 수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연애시대>에서 만났던 손예진과 감우성은 이제 다시 멜로로 돌아와 더 원숙해진 멜로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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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캐릭터에 설득력 부여하는 감우성 진심 담긴 연기

과연 감우성이 아니었다면 이 멜로 가능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초반 ‘어른 멜로’라는 수식어처럼 과감한 표현들과 설정들을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처럼 보였다. 안순진(김선아)이 처한 힘겨운 상황들도 또 무표정의 삶을 살아가는 손무한(감우성)의 상황도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벼움이 있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드라마 마지막에 살짝 들어가는 ‘에필로그’는 무언가 이 멜로드라마가 생각만큼 가벼운 건 아니라는 예감을 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 손무한의 시한부 삶이 등장하고, 안순진의 딸이 죽게 된 상황과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부서졌던 그 일들이 소개되면서 드라마는 꽤 무거워졌다.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는 걸 <키스 먼저 할까요?>는 드러내고 있는 것. 

하지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무한과 안순진의 멜로가 무거움에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때론 웃음과 설렘까지 만들어내는 그 균형점을 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손무한이 과거 안순진이 그토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했던 광고 카피라이터였다는 걸 알게 된 안순진이 그와 결혼까지 하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부부가 됐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안순진은 먹던 걸 토해내듯 자신이 손무한과 함께 한 시간들을 토해내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미 그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다. 

겉으로는 재산이 200억이고 혼인신고도 했으니 그 유산을 받아 그가 죽은 후 혼자 빈둥대며 사는 게 ‘복수’라고 말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손무한의 옆에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어찌 보면 손무한이 지금껏 안순진에게 해온 ‘아낌없이 주는 숙주의 삶’에서 느껴진 사랑의 감정을 그 역시 느꼈기 때문일 게다.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러면서도 모든 걸 주고 가려는 그의 마음에서 어떤 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이야기 설정만을 두고 보면 굉장한 논쟁점을 갖고 있는 드라마다. 즉 이 드라마는 어느 제과의 과자 때문에 딸을 먼저 저세상에 보내게 된 피해자와, 그 과자의 광고를 내놓고 사고가 난 후에도 피해자를 돕지 않았던 가해자가, 그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접근했던 ‘실수’로 ‘계획에 없던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다. 거기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정서의 장벽이 놓여 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해자가 어떻게 해야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사과와 용서를 빌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드라마에, 그러다 덜컥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2차 가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해지는 건 가해자로서 손무한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 죄책감과 부채감 그리고 어쩌다 피어난 사랑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손무한 역할을 연기하는 감우성은 놀라울 정도로 이런 논쟁을 무화시키는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진심이 가득 담긴 연기가 아니면 이 논점 많은 멜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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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감우성·김선아의 사랑은 묘하게도 병을 닮았다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의 사랑, 어딘가 병을 닮았다. 그 병은 거부하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전염된다. 손무한(감우성)은 안순진(김선아)에게 이끌리면서도 그 마음을 거부하려 했다. 자신이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안순진을 사랑하게 됐다. 마치 원하지 않아도 병이 찾아오는 것처럼.

안순진은 손무한을 ‘숙주’로, 자신을 ‘기생충’으로 불렀다. 그건 물론 농담 섞인 이야기였지만, 자신의 속내 깊은 곳에 사랑보다 더 절실한 게 삶이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내일은 기대하지도 않는 ‘오늘만 사는 삶’. 그래서 그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부정하고 자신은 그저 손무한에 붙어먹는 병 같은 존재라 치부했다. 하지만 손무한이 그 이야기를 듣고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안순진은 그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삶과 사랑에 대한 문학적 상징이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굳이 ‘어른 멜로’라는 수식어를 쓴 건 그저 19금의 성적인 의미가 아니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제목은 그래서 스킨십을 대놓고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스킨십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진짜 삶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도발이다. 

손무한이라는 인물의 시한부 판정도 마찬가지다. 그건 우리가 늘상 봐왔던 멜로의 시한부 설정이 갖는 통속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기 위함이 아니다. 병이 들었을 때 비로소 삶이 보이듯, 언제까지고 이어질 듯한 삶이 문득 끊어질 거라는 걸 감지하는 순간, 진짜 사랑이 보인다. 내일도 필요 없고 당장 지금 눈앞에 있는 그와 즐거운 시간을 갖는 그 순간순간들이 진정한 사랑으로 다가온다. 

시한부 삶을 알게 된 손무한의 사랑은 그래서 아이러니하다. 처음 그가 안순진에게 불쑥 결혼하자고 했던 건, 자신은 안순진을 사랑하지만 안순진은 사랑이 아닌 결혼이 필요한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저 숙주일 뿐이라고. 한 달이면 곧 죽을 몸, 손무한은 그렇게 해서라도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어떤 잘못을 사죄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죄로 시작한 그 마음은 어느새 사랑이 되었고 안순진 역시 단지 ‘손무한에 붙어먹는 병 같은 존재’로 치부했던 마음이 사랑으로 변했다. 그러자 이제 손무한은 빨리 혼인 신고를 하고 안순진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그것이 자신이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한부 삶은 그래서 이들의 사랑도 시한부로 만들어버리지만, 그래서 그 사랑은 더 진실해진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건 단지 육체적인 끌림이나 종족을 이어가고픈 본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길건 짧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유한한 삶을 짊어진 시한부가 우리네 존재의 숙명이라는 걸 공감하기 때문일 게다. 결국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혹자는 삶이 한 평생으로 이어진 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런 생각은 삶이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의 손무한과 안순진의 삶과 사랑은 그래서 더 진실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숙주’의 모든 걸 내주는 사랑이란 ‘무한’일 수도 있으니.(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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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먼저’가 만일 멜로 그 이상을 숨기고 있었다면

도대체 손무한(감우성)이 안순진(김선아)에게 갖는 죄책감은 무엇 때문일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이 안순진의 아픔을 끌어안고 결국 결혼까지 한 것이 그저 사랑 때문 만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드라마 초반부터 에필로그를 통해 이 두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건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었고, 이제 그 사건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어서다.

10년 전 안순진은 무슨 일인지 아이를 잃었고, 그 잃은 아이 앞에서 순진의 어머니는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죄인 같은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묘소에서 아이를 보내는 순진의 모습을 바라보는 손무한이 있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건 마치 우연적인 일처럼 보였지만 어찌 보면 자신과 연루된 일로 아이가 죽게 됐다는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는 심증이 생겨난다. 

그런데 손무한의 직업은 광고 카피라이터다. 그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게 했다기보다는 그가 쓴 카피가 그걸 방조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오인시켜 결과적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8년 전 안순진이 손무한을 찾아왔던 회상 장면은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아폴론 제과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한다. 애가 잘못됐는데.”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안순진의 아이는 제과에서 나온 제품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손무한은 그 제품 광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아폴론 제과와 안순진은 법정싸움을 하며 사채 빚까지 쓰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8년 전의 손무한은 냉정한 광고 카피라이터였다. “내가 법원 오갈 시간이 어디 있냐. 그게 내 탓이냐. 차 광고 하고 사고 나면 광고 탓이냐. 아파트 광고하고 붕괴되면 우리 탓이냐. 우리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거다.”라며 안순진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 번뜩 떠오르는 사건은 국내에서 벌어졌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잘못된 제품이지만 그 피해가 일파만파 커졌던 건 안전성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상품성만을 강조했던 광고가 일조한 면을 부정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직접 이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가 작동하는 광고의 한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광고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은 안심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장면이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지지만.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년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혹시 이 드라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사안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적 의제 또한 숨겨놓고 있는 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갖게 되는 죄책감과 그 죄책감을 위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 과정들까지를 담는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제목이 스킨십 따위는 이들의 사랑에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드러내듯, 인간애의 차원에서 보면 남녀의 사랑이나 결혼 그 이상의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걸 혹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사진: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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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놀아요”, ‘키스 먼저’가 말하는 일상의 가치

“원치 않는 일이면 좀 쉬는 게 어때요. 나도 시간을 내 볼 테니까 나랑 놀아요. 우리 못 놀고 살았잖아요.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영화도 보고 남들 하는 거 우리도 해봐요. 그만 열심히 삽시다 우리.”

“자러 올래요?”에 이은 “나랑 놀아요.”인가.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감우성)이 툭 던진 그 말에 안순진(김선아)의 마음이 촉촉해진다. ‘놀자’는 아무 것도 아닌 일상적인 그 말에 담겨진 마음의 무게가 느껴져서다. 

베테랑 스튜어디스로 일하다 퇴직한 안순진이 굳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건 “열심히 일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의 친구인 미라(예지원)가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면 소개받았다는 것 때문에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그게 싫다고 그는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손무한이 툭 던지는 “그만 열심히 삽시다 우리”라는 그 말이 얼마나 가슴에 콕콕 박혔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런 일상적인 말들이 남다른 느낌으로 전해지는 건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지점이다. “자러 올래요?”라고 묻고 거기에 어떤 의도를 파악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네”라고 말하는 그런 지점에서 느껴지는 특별함. 일반적으로는 육체적 욕망이 먼저 떠오르는 그 말이 몸이 아닌 마음을 반응시키는 특별함이 이 드라마 속에는 있다. 

이런 특별함이 더해지게 된 건, 손무한과 안순진이라는 조금은 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치가 얹어져서다. 10년 전 아이를 잃고 이혼까지 하는 그 아픈 상처를 겪고 수면제 없이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는 삶을 살아온 안순진에게 “나랑 놀아요”라는 말은 그 어떤 청혼 프러포즈보다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손무한의 청혼이 진심이 아니라 가여워서라는 강석영(한고은)의 말에 안순진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요. 나도 그 사람이 가여우니까. 가여워서, 혼자인 게 두려워서 시작되는 사랑도 있더라고요.” 보통 사랑이 아닌 동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실망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워낙 많은 상처를 겪고 나이든 안순진에게 그런 ‘가여운 마음’은 어쩌면 ‘사랑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랑이 아닌 죄책감 때문이라는 모호한 강석영의 말에 안순진 역시 손무한을 10년 전 동물원이 아닌 그 이전에 만난 적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하게 되지만 그런 불안감 또한 결혼을 막지는 못했다. 또 손무한이 말기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려 하는 백지민(박시연)에게도 안순진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그 사람과 “더 놀고 싶어서”였다. “지금 돌이키면 나 그 사람이랑 못 놀아. 그 사람이랑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책 읽어주는 그 사람 목소리 더 듣고 싶어. 나를 바라보는 그 사람 시선 속에 조금 더 살고 싶어.”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일에 치여 살아가는 삶. 그런 삶들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일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 죽어라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게 우리 보통의 사는 모습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들을 잃어버린 후에야 그 중요한 것이 일상 속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 하다못해 잠을 자는 일이나 노는 일 같은 너무나 쉬워 보이는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더더욱.

“일생이 후회인데, 내일 후회하더라도 오늘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일이 아니라 오늘. 거창한 행복이 아니라 일상의 행복. 그런 것들을 <키스 먼저 할까요>는 툭툭 건드리며 꺼내놓는다. 하지만 ‘세상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두 사람이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던지는 그 이야기들은 남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누구나 도달하지만 흔히들 부정하며 살아가는 삶의 끝을 상정했을 때에만 나오는 일상의 가치들이 거기에는 반짝반짝 빛난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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