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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은 왜 점점 슬퍼지는가

 

30년 전 한 사내가 뉴기니의 해변을 걷다가 얄리라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이 사내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백인들은 짐이 많은데 우리 뉴기니인들은 짐이 적은 걸까요?” 뉴기니에서 짐이라는 단어는 재산이라는 뜻이다. 이 뉴기니인 얄리의 질문은 지극히 단순해 보였고 쉽게 답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이 사내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사실 같은 지구에 살면서도 왜 누구는 부자로 살게 됐고 또 누구는 가난하게 살게 됐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내는 그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고 그 해답은 <총,균,쇠>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쓰여졌다. 이 사내의 이름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였다. 그는 이 책으로 1998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사진출처:KBS)

얄리의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제시한 것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총, 균, 쇠이다. 즉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지금처럼 삶의 분균형이 생길 수 있었던 원인이 그들이 발명한 총과 그들이 보유한 균(그들에게는 내성이 생겼지만 원시부족에겐 치명적인 이를테면 천연두 같은),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벼려진 칼을 생산하게 해준 강철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로 생겨난 현재의 빈부가 거기 사는 부족들의 열등함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유럽인들이 이 모든 것들을 미리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유럽인은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그렇다면 거꾸로 이들이 ‘운이 좋아’ 갖게 된 총, 균, 쇠에 무참히 쓰러져간 원주민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요구된다.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다시 읽히고 다시 주목되는 건 바로 이런 자각 때문일 게다. 중세를 넘어 근대로 오면서 서구인들의 사실상의 정복 전쟁을 마치 신대륙 발견 같은 문명의 전파로 보는 그들 중심적인 시각에 대한 반성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계속 되고 있다. 힘의 논리가 아니라, 다수와 소수의 논리가 아니라, 다양성의 논리로서 경쟁보다는 공존의 의미를 찾는 건 결국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이 초래한 전 지구적인 위기상황을 우리가 이미 목도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최근 들어 <아마존의 눈물>, <아프리카의 눈물>, <남극의 눈물> 같은 눈물 시리즈 다큐멘터리가 오지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21세기적인 새로운 시각으로 이 공간을 다시 바라보기 위함이다. 아마존에 들어간 이들은 도시인들에게는 말 그대로 오지일 수밖에 없는 그 곳에서 벌거벗고 살아가는 원시 부족들의 삶이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행복한 삶일 수 있다고 증언한다. 그렇기에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도시의 침탈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그들의 삶을 아프게 포착해낸다. 그들의 눈물이 우리들의 풍요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삶을 다시 자각시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정글의 법칙> 같은 예능 프로그램 또한 이 슬픈 정글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고 있다. 최근 이 프로그램은 일부 장면들이 과장되게 연출되고 때로는 섭외된 원주민들을 출연시켜 조작방송을 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으로 홍역을 겪기도 했다. 물론 <정글의 법칙>은 그 기획의도가 서구의 대표적인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베어 그릴스의 <인간과 자연의 대결>과는 확연히 다르다. 베어 그릴스의 프로그램이 제목처럼 인간과 자연을 여전히 대결구도로 그리고 있다면, <정글의 법칙>은 그 혹독한 환경 속에서 다시 찾아내는 가족개념이라든가 원주민들이나 자연과 도시인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느껴지는 비애감은 이러한 좋은 의도로 찾아간 카메라조차 거기 살아가는 원주민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일 게다. 이미 도시의 바람을 쐰 원주민들은 과거 그들의 전통적인 삶의 공간에 머물지 못하고 도시로 떠나기 일쑤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아프리카에 가서 목격한 것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살아왔던 공간에서 벗어나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과거에는 백인 침략자들을 위협하곤 했던 말라리아가 이제는 도시에 모여든(전염이 강해졌다) 원주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현실이다. 아마도 수많은 방송사들이 이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 재조명하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어도 그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그들의 삶을 도시로 끌고 와 결국은 파괴하는 행위가 된 것은 아니었을지. 그들의 삶에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혹여나 방송 프로그램으로서 도시인들의 시각과 욕망을 더 투영한 것은 아니었을지.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정글의 법칙>이 정글 속에서 발견한 미덕은 뭐든 문명의 이기를 덕지덕지 붙인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서 그것들을 떼어내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진짜 삶의 의미일 게다. 그들은 문명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자연 뿐인 그 깊은 정글 속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네온사인 불빛대신 별을 보기 시작했고 자동차 소리 대신 새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이 소비되는 통에 그 가치를 알 수 없었던 한 끼 식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고, 따뜻한 집에 안락한 침대에 널브러져 진짜 안락의 의미를 모르던 우리들에게 그저 비 피하고 등 펼 수 있는 곳에서의 하룻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정글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도시의 시선으로 정글을 바라본 것일 지도 모른다. 진짜 정글은 그대로 내버려두었을 때 그 자체로 보존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존의 눈물>에 이어 <남극의 눈물>을 찍고 돌아온 김진만 PD는 이 ‘조심스러움’에 대해 필자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저희가 황제 펭귄을 찍을 때도 짝짓기부터 산란과 부화 과정을 쭉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으로부터 애정이 우러나더라고요. 어제 아팠던 펭귄들이 오늘 가보면 얼어 죽어가고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정말 마음이 아프죠. 규정 때문에 펭귄들이 알을 품을 때는 70m 안쪽으로는 접근 자체를 못해요. 그러니 만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죠. 만약 규정을 어겼다가는 바로 쫓겨납니다. 촬영하는 동안 호주기지 대원들이 내내 감시를 하고 있어요. 새끼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걸 보면 옷 안으로 넣어주고 싶고 대피소로 데려가 따뜻한 미역국이라도 먹이고 싶었어요. 그러면 바로 원기를 찾을 것 같았거든요. 그러나 가슴이 미어져도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이 얘기는 지금 현재 원주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일방적인 시선과 그 조심스러움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정글의 법칙>의 논란 속에서 불쑥 불거져 나온 몇몇 이야기들은 또 다른 비극이 정글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을 만든다. 실제로 원주민들은 이제 살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위협적인 동작을 연출하고, 때로는 춤을 추고, 때로는 사냥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조금 심한 농담 속에는 감독이 “액션!”을 외치면 옷을 하나 둘 벗고는 원주민 차림(사실은 거의 벌거벗은)으로 카메라 앞에 나선다는 얘기까지 돌고 돈다. 물론 이것이 모두 사실일 리는 없을 테지만 어쨌든 카메라는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원주민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과거 정복의 시대에 원주민들을 정글에서 몰아낸 것이 총, 균, 쇠였다면 이제 정보의 시대에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은 다름 아닌 카메라가 아닐까. 카메라는 심지어 그 카메라의 목적이 그들의 삶을 지켜내려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자체로 그들의 삶 속에 도시의 이야기들을 물어 나르고 도시에 그들의 삶조차 상품화하고 대상화시켜버린다. 따라서 카메라의 세례(?)를 받은 원주민들은 더 이상 과거의 원주민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워진다. 카메라는 그래서 자본주의의 첨병인지도 모른다. 정글이나 오지마저도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그 어느 것이든 상품화해버리는 자본의 속성이 미치지 않는 곳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암울한 징후처럼 보인다. 이제 카메라는 어디든 들어가고 그래서 그 내밀한 정글을 파헤쳐 그들의 삶을 하룻밤의 오지 체험으로 바꾸고 있다. 또 그렇게 카메라를 따라 들어간 자본은 그 원주민들의 삶 또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고 보면 많은 원주민들이 카메라가 영혼을 뺏어간다고 믿었던 것은 그만한 선견지명이 있었던 셈이 아닌가. (이 글은 교보문고에서 발행하는 <사람과 책>에 연재되는 글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남극'의 딜레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남극의 눈물'(사진출처:MBC)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는 이 '눈물' 다큐멘터리를 찍어 오면서 늘 갖게 되는 딜레마가 있다고 했다. 이 지구의 눈물을 포착하고 증언하기 위해 문명 저 편의 세계로 카메라를 갖고 들어가지만, 어쩌면 그것 자체가 파괴적인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남극의 눈물' 세 번째 이야기의 말미에 내레이션을 통해 들어간 질문, 즉 "우리는 친구인가 아니면 침입자인가"라는 그 물음은 바로 이 김진만 PD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남극의 눈물' 3편 '펭귄행성과 침입자들'은 먼저 이 남극을 자신들의 행성으로 장악할 수 있었던 다양한 펭귄들의 생태를 보여주었다. 그 펭귄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키워드는 두 가지. 즉 '협동과 배려'다. 자이언트 패트롤 같은 육식성 천적들이 새끼 펭귄을 공격하면 그것이 제 새끼가 아니라도 어른 펭귄들이 나서서 방어하고 보호해주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지혜로운 생존능력을 보면서, 잠깐 우리 사회의 가족 이기주의가 떠올랐다면 과장일까. 이들의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가족의 테두리를 뛰어넘는 모성애와 부성애는 '내 일 아니면 지나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사회 속에서의 우리들이 그러할진대 타 생물들에 대한 인간의 이기주의가 오죽할까. 2편에서 나왔던 고래잡이와 물개 잡이로 학살당한 수백만 남극의 종족들은 그래서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혹등고래의 그 아름다운 노래가 처절한 절규로 들리는 건 그 때문일 게다. 물론 포경이 국제협약으로 금지되는 등 환경에 대한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이 침탈이 끝난 것은 아니다. 펭귄행성에 들어온 침입자들, 즉 인간의 파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한쪽은 얼어가고 다른 한쪽은 녹아가는 남극의 상황은 먹이를 찾아 바다로 떠나야 하는 펭귄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의 확산은 펭귄들의 알 수 없는 죽음을 초래하고, 오지의 땅이 갖는 그 신비로움을 관광하기 위해, 혹은 그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 들어온 사람들은 때 아닌 남극에 쥐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쥐는 생태계를 교란할뿐더러 그 자체로 세균을 전파한다는 데서 치명적이다.

김진만 PD는 2003년에 29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전재규 대원을 얘기하면서 그 고민스러운 딜레마를 꺼내놓았다. 세종기지에서 세상을 떠난 전재규 대원 때문에 이슈가 많이 됐고, 그 덕에 '아라온'이라는 쇄빙선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국익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목숨 걸고 일을 하고 있는 그 대원들을 보면서 환경 파괴 운운하기도 어렵다는 얘기였다. 알다시피 특정 국가의 땅이 아닌 남극은 각국의 영토권 확보를 위한 전진기지가 되어 있다.

'남극의 눈물'은 물론 이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고, 또 그럴 수도 없었다. 이것은 결국 국가의 차원을 넘어서서 지구별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다큐멘터리가 굳이 카메라를 들고 남극까지 들어가 그 눈물을 포착해내는 것은 답을 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다. 우리는 친구인가, 아니면 침입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

Posted by 더키앙


'정글'의 정순영 PD, '남극'의 김진만 PD

'정글의 법칙'(사진출처:SBS)

"같이 한 번 가실래요? 의향 있으시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마도 다른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이렇게 물었다면 두 말 않고 같이 가자고 했을 게다. 하지만 이 팀의 제안은 어딘지 농담처럼 여겨졌다. '정글의 법칙'이 아닌가. 말 그대로 야생의 정글 한 복판에 툭 던져놓고는 숙식을 알아서 해결하며 며칠을 버텨내야 하는 프로그램. 때론 생존을 위해 말도 안되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독충들과 뱀,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곳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그런 프로그램. 화면으로 보는 것만 해도 살풍경한데, 그 곳에 직접 가자고? 화면 이 편에서 편안하게 TV나 보면서 감 놔라 대추 놔라 글줄이나 써내는 인간이 무슨!

'정글의 법칙' 제작팀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정순영 국장을 처음 봤다. 거무튀튀한 피부에 예사롭지 않은 포스가 남다른 정 국장은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오는 욕쟁이 PD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처음 본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은 그다지 기분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 욕에는 어딘지 인간적인 냄새가 풍겨 나왔다. 50줄을 넘긴 나이에 정글 같은 야생에서의 촬영, 적어도 의기만은 팽팽해야 버티지 않을까. 정국장의 정감 가는 욕에는 그런 힘이 느껴졌다. 편안히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자리였지만 제작진들의 고생담은 마치 일상처럼 툭툭 던져졌다. 한 PD는 소매를 걷어 벌레에 잔뜩 물어뜯긴 정글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글 같은 오지나 히말라야의 산을 배경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볼 때마다 늘 궁금한 건 거기 정글이나 산에서 버티는 출연자보다 그들을 찍는 카메라맨들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데 그저 출연자가 오르기도 힘든 경사의 절벽을 오르면서도 그 출연자를 촬영하는 것일까. '정글의 법칙' 마지막 회에서 정글을 빠져나오다 낙오되어 실종된 정순영 국장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을 때, 이 프로그램의 진짜 고생담은 카메라 뒤편에 서 있는 제작진들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하룻밤을 정글에서 혼자 남겨진 채 독충들과의 끔찍한 밤을 보내고 나온 정순영 국장은 걱정할 다른 스텝들을 위해 애써 웃음을 지었다. 미안해서 오열하는 후배 PD에게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정순영 국장의 허허로운 웃음은 가슴 한 켠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남극의 눈물' 때문에 무려 300일 간을 남극에서 지내고 돌아온 김진만 PD는 마치 록커처럼 긴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채 환하게 웃었다. 까맣게 탄 얼굴, 1년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체구, 그 겉모습만으로도 그가 겪은 1년의 고생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존하고 남극하고 어디가 더 힘들었나요?"하고 묻자, "아마존이 훨씬 힘들었죠. 하지만 남극은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이 더 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하 50도를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 꽁꽁 얼어버린 카메라를 들고 조금이라도 더 생생한 장면을 찍기 위해 얼굴에생긴 동상을 방치하면서까지 촬영에 임한 송인혁 촬영감독의 이야기는 제작진의 고충과 함께 그 남다른 프로정신을 깨닫게 해주었다.

'정글의 법칙'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상 출연진들의 고생담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정글의 야생성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남극의 눈물'은 남극의 자연을 찍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제작진은 늘 카메라 뒤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진이 카메라에 노출되는 이유는 그 극지의 힘겨운 환경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다. "아마존에서도 원주민들만 나오면 전혀 그 아마존의 야생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오지에 적응못한 일반인으로서 제작진의 고생담이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전해주는 것이다.

사실 오지 촬영을 하면서 촬영된 피사체만큼 그 촬영을 하기 위한 고생담이 더 흥미롭다. 카메라에 안전하게 잡힌 영상보다 그것을 찍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이들의 이야기가 훨씬 대중들의 눈을 사로잡는 건, 그 리얼리티에 담겨진 진정성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방송의 한 경향은 이런 생고생을 체험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디스커버리 채널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 오지에서의 생존이나 그런 곳에 사는 괴물 같은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식의 체험형 다큐멘터리로 대중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정순영 PD나 김진만 PD가 겪은 오지 체험의 영상은 그래서 때론 더 큰 감동을 준다. 출연자나 오지의 압도적인 자연경관보다 더 눈물 나는 그들의 고생담. 때로는 작은 편집 실수로 때로는 안전불감증이라는 오해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그 진심이 왜곡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지를 다녀온 그들의 아무렇지도 않은 웃음, 그 짠한 진심.

Posted by 더키앙
'아마존의 눈물', 김진만PD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예전에 'MBC스페셜'에서 '최민수, 죄민수... 그리고 소문'이라는 다큐를 찍을 때,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죠. 그 때 김PD는 죄없는 최민수가 죄인이 되어버린 이 곡해된 사실을 무척이나 안타까워 하면서 저와 한참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의 얼굴에서 저는 어떤 열정과 진지함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진심이 읽혀졌던지 최민수는 이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서 오해를 풀 수가 있었죠.

그 후 다시 김진만PD를 만난 건, '휴먼 다큐 사랑'을 통해서였습니다. MBC스페셜의 윤미현CP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익숙한 얼굴이 인사를 했습니다. 검게 탄 전형적인 야전형 얼굴에 서글서글하게 웃는 미소. 그는 이 코너에서 '로봇다리 세진이'를 맡아 연출했었죠. 그 때 처음 김PD가 아마존에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윤미현CP는 너무 김PD를 오지로 굴리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하더군요. 정작 김PD는 어떤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흥분되어 보였지만 말입니다.

저는 농담 삼아, "아마존에 가서도 휴먼 다큐 찍으려는 건 아니죠?"하고 물었죠. 그러자 왠걸, 김PD가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거기서도 휴먼 다큐 찍을 건데..."

그 때 사실 저는 그 의미를 정확히 잘 몰랐습니다. 아마존에서 휴먼 다큐라니... 그리고 다시 김PD를 만난 건, 아마존에서 돌아와 후반 편집을 할 때였습니다. MBC에 갔다가 거기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거대한 플래카드를 보고는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죠. 잠깐 MBC사옥 휴게실에서 본 김PD는 사실 사람 몰골이 아니었습니다. 그잖아도 야전으로 늘 검게 탄 얼굴이 더 검어 보였고, 그럴 수록 그의 사람 좋은 웃음은 더 시려 보였습니다.

그에게 이런 저런 아마존에서의 촬영 상황을 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사실 김PD는 고생한 만큼의 성과가 있을 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마존에서의 촬영 기간이 한정되어 있어서 더 정교하게 촬영하기가 어려웠고, 또 그렇게 촬영한 분량 중에서 많은 양을 사고로 잃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 이 진심이 분명 영상에도 녹아나겠구나 생각했죠. 그걸 그 사람 좋은 웃음에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사실 시청률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이유로 프라임 타임 밖으로 밀려나는 게 요즘 현실이었죠. 하지만 저는 언젠가 다큐멘터리가 일을 낼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이런 현장에서의 진심을 담은 카메라들이 준 확신이었죠. 점점 진정성을 요구하는 대중들에게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을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역시..! 였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에는 그 아마존이 파괴되어가는 실상이 담겨져 있지만 그것보다 제가 본 것은 그걸 찍는 사람들의 진심이었습니다. 분명 그 진심은 통하고 있었습니다. '아마존에서 휴먼 다큐를 찍는다'는 말을 그제서야 이해했습니다. 그 원주민들 가까이로 다가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과 호흡하며 생활하며 사실을 그대로 찍어낸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원주민들과 도시인들 사이의 벽을 무너뜨리고 한 똑같은 인간으로서 똑같은 마음을 담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가 이제는 남극으로 또 간답니다. 거기서 '눈물 3부작'의 마지막, '남극의 눈물'을 찍기 위해서죠. 이제 알것도 같습니다. 그 '눈물 3부작'은 우리 지구가 흘리는 눈물을 기록하기 위해 떠나간, 그 진심을 담은 사람들의 눈물 3부작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검게 탄 얼굴에 시린 하얀 웃음을 짓고 다시 남극을 담아올 김진만PD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는군요.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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