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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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스토리스토리

먹기, 따로 또 같이

D.H.Jung 2011. 10. 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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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같은 신도시에 거주하는 나 같은 프리랜서라면 점심 챙겨먹기가 얼마나 고역인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신도시는 아침이면 한바탕 대이동이 시작된다. 물론 여성 직장인들도 많지만 특히 남자들은 거의 아침에 신도시를 떠나 서울로 일을 하러 간다. 그러면 남아있는 여성들의 세상이 펼쳐진다. 극장에 가도 거의 90%가 여성이고,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도 남자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나마 도서관은 나은 편이지만 거기엔 주로 은퇴한 어르신들이 더 많다. 그러니 이건 길거리를 다녀도 남자가 눈에 띌 판이다.

이런 상황이니 점심시간이 고역일 수밖에 없다. 혼자 식당을 찾는 것도 어색한데, 온통 여성들이 가득한 곳에 남자 혼자 앉아있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아예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 30분 정도 일찍 식당에 가거나 아예 지나서 가기도 한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사람이 너무 북적대면 들어가기가 꺼려져서 사람 없는 한적한 음식점을 찾아 뱅뱅 돌기도 하고, 아예 푸드 코트처럼 대충 한 끼 때우는(?) 곳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나야 저녁이면 다시 가족들과 함께 밥상머리에 둘러앉지만 솔로들은 과연 매번 끼니를 어떻게 때울까.

하지만 이제 40줄을 넘어선 솔로 친구를 만나서 물어보면 뭐가 걱정이냐는 얼굴이다. 요즘은 싱글족들을 위해 혼자 먹을 수 있는 음식점도 많아졌고, 먹고 싶으면 혼자 가서 고기도 구워먹는다는 그 친구는 '혼자 먹는 고기 맛'도 제법이라고 한다. 뜨악한 표정으로 그 친구를 쳐다보면 그 친구는 거꾸로 내게 묻는다. "넌 그럼 매번 누구랑 같이 먹는 게 좋으냐?" 역공이다. 그래서 찬찬히 생각해본다. 대부분은 즐기는 것 같다. 하지만 늘 즐기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혼자 마음껏 내가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다면 어떨까.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흡사 전쟁터(?) 같았던 밥상머리. 아이들이 크기 시작하니 먹성도 좋아져서 요즘은 우리 식탁도 비슷해졌다. 애들 챙겨주다 보면 의도치 않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애들 입에 음식 넘어가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고들 하지만, 그래도 꼬르륵대는 배를 잡고 애들 입에 음식 넣어주는 건 그래도 고역이다.

언젠가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에는 어딘지 혼자의 세계에 빠져있어 바로 그 점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남자를 그리는 드라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차츰 보다보니 이 남자는 그 혼자 생활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 어렵다는 고깃집에 혼자 가는 것을 즐기고, 저녁을 위해 스테이크를 굽고 와인을 곁들인 자신만의 정찬을 즐겁게 준비한다. 그는 '못하는'게 아니라 '안하는 남자'였다. 모든 관계의 피곤이 사라진 세계에서 이 남자는 혼자만의 식탁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바라보니 한편으로는 이 남자의 식탁이 부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같이 있으면 혼자 있고 싶어지고 혼자 있다 보면 같이 있고 싶어지는 게 인간이라 먹는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점심시간만 되면 한없이 가족들이 그리워지다가, 막상 저녁시간이 되면 그 고적한 점심시간이 그리워지는 이 대책 없는 간사함은 도대체 뭘까.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요즘, 그들의 밥상의 소회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따로 또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