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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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다’, 정상가족 신화를 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D.H.Jung 2021. 8. 7.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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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다’, 기꺼이 김나영의 엄마가 되어준 양희은이 감동적인 건

내가 키운다

“조금 있으면 어린이날이다. 네 안에 있는 상처받은 어린이를 위해서 준비했어.” 양희은이 써준 카드 속 글귀를 읽는 순간 김나영은 토닥토닥 해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양희은은 김나영의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연예계에서 어른 없이 혼자 버티고 살아남는다는 게 너무나 힘들 수밖에 없다는 걸. 

 

“나는 아이가 없으니까 나영이한테 어른이 필요할 때는 내가 그 노릇을 해주마. 누구한테 마음이 간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거든요. 그냥 마음이 가는 거죠. 내 딸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죠.” 양희은의 그 말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마치 모녀지간을 보는 듯한 김나영과 양희은. 이들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JTBC <용감한 솔로육아-내가 키운다(이하 내가 키운다)>가 보여준 김나영과 양희은의 특별한 관계는 과거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연이 되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김나영의 어머니는 그가 초등학교 입학식 전에 돌아가셨다. 어려서부터 홀로된 김나영은 그래서 학급 선생님을 ‘선생님 엄마’리고 하면서 지냈다고 했다. 그 사실을 양희은은 김나영이 쓴 책을 통해 읽었고 그래서 그 속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나 가깝게 느낀 것 같아요. 쟤 엄마가 돼주고 싶다. 이렇게.”

 

김나영의 집을 방문한 양희은과 그를 따르는 김나영의 아이들은 마치 할머니와 손자들 같은 친근함이 묻어났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 모습이나, 스스럼없이 양희은의 품에 안기는 아이들. 그리고 양희은 역시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평범한 가족의 풍경이었다. 그런 양희은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챙겨주는 김나영에게서도 딸 같은 모습이 느껴졌다. 

 

잠시 아이들끼리 놀고 있는 동안 양희은과 김나영이 나누는 대화도 모녀지간의 정이 느껴졌다. 양희은은 함께 밥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을 때 너무 웃겼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동생 이준에게 꿈이 뭐냐 물어보니 형 신우라고 답했는데, 형 신우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동생 이준이라고 답했던 것. 김나영은 힘들 때 의외로 신우가 의지가 되어준다고 말하고, 양희은은 그게 기특하면서도 “철 들어가는 게 속상하다”는 할머니의 마음을 꺼내놓는다. 

 

<내가 키운다>가 보여주는 김나영과 양희은의 특별한 관계는 훈훈한 감동을 주면서도 그 자체로 이른바 ‘정상가족’ 신화를 깨준다. 이른바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들이라는 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세워둠으로써 그 바깥의 다양한 가족들을 소외시키고 차별하곤 했던 그 사고방식을 이들의 관계는 그 어떤 모녀보다 끈끈한 모습으로 깨주고 있는 것. 

 

프로그램 제목에 굳이 ‘용감한 솔로 육아’라는 부제를 담아놓은 <내가 키운다>는 최근 삶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다양해지고 있는 가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담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 많은 육아예능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졌지만, 잠시 ‘육아를 체험해주는’ 것으로서 일상적인 육아와의 괴리감을 드러냈던 일들이 적지 않았다. 또 관찰카메라가 연예인 가족들을 등장시켜 보여주는 것들 역시 심지어 이혼한 이들조차 다시 엮어내려는 ‘정상가족’ 신화를 재현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들 사이에서 <내가 키운다>가 단연 주목되는 건, 이혼 후 솔로 육아를 선택한 연예인들이 용감하게 방송에 출연한다는 그 사실만이 아니라, 거기 담겨진 ‘대안 가족’이 정상 가족 신화를 깨주는 점 때문이다. 솔로 육아를 엄마와 재혼한 새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주는 김현숙네 가족이나, 언니의 도움을 받는 조윤희네 가족을 보면 ‘솔로 육아’라고는 해도 그들을 돕는 가족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이런 혈연과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 아니더라도 진짜 모녀 같은 관계를 보여준 김나영과 양희은의 특별한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가족이 얼마나 다른 의미일 수 있는가를 말해준다. 가까이서 “엄마가 돼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이들과, “엄마 같이 의지돼요”라고 말하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가족의 범주가 그것이다. 

 

혼자 아이 둘을 기르면서 제일 힘겨웠던 기억이 무어냐는 양희은의 질문에 김나영은 “맨 처음”이 가장 겁나고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양희은을 찾아갔는데 따뜻한 국수를 해주시면서 너무 겁난다는 자신에게 양희은은 이 말을 했다고 한다. “고요하게 너의 마음속의 말을 듣고 있어. 그러면 하나도 무서울 게 없어.” 김나영은 그 말을 듣고 정말 무서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육체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더 힘든 건 어쩌면 세상의 왜곡되고 편견 가득한 시선이었을 지도 모른다. 양희은의 그 말은 바깥의 시선 따위는 내버려두고 내 마음에 더 집중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저들이 뭐라 떠들 건 “그러라 그래”라고 말하곤 하던 양희은의 말처럼. 

 

<내가 키운다>는 이러한 솔로 육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그들이 구성해가는 다양한 가족과 관계의 양태를 꺼내놓은 후, 이를 관찰카메라로 보며 공감해주는 그 구성 자체가 가치가 있다. 김나영과 양희은의 이야기를 스튜디오에서 모니터로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채림은 김나영에 대한 깊은 공감을 전했다. “애기를 낳으니까 엄마의 존재가 너무 커요. 우리가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의 시간이 있잖아요, 응원한다 너의 길을. 그건 가족밖에 없잖아요. 근데 (김나영은) 그 길이 너무 외로웠을 것 같아요. 혼자서 오롯이 꿋꿋이 그걸 이겨냈다는 게 너무 대단해요. 너무 멋진 사람이에요.” 

 

그 누가 결혼할 줄 알았고 또 이혼할 줄 알았으며 그 과정에 아이가 생길 줄 알았을까. 살다보면 마치 사고가 나듯 여러 일들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삶은 늘 어떤 ‘가야만 할 것 같은 길’로만 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게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건 그래서 중요한 일이다. <내가 키운다>는 그들을 “너무 멋진 사람”이라고 응원과 지지의 목소리를 더해준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