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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한 장의 사진 통해 본 '미션' 김은숙 작가의 놀라운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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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이 담아낸 의병, 개화기, 여성, 멜로, 글로벌 콘텐츠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추석특집으로 드라마를 감독판으로 재구성해 방송하면서 ‘Gun, Glory, Sad ending’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 부제들은 어찌 보면 김은숙 작가가 그간 멜로 장인으로 불리며 그려왔던 작품들과 비교해 이 작품이 얼마나 도전적이었는가를 잘 드러내준다. ‘총과 영광 그리고 새드엔딩’은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확장시킨 자신의 세계를 압축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성과라면 먼저 역사교과서에 박제된 사진 정도로 남아있던 ‘의병’이란 존재들을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로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역사교과서에서 한번쯤 봤던 의병의 사진을 기억한다. 1907년 경기도 양평에서 영국기자의 요청에 의해 찍었다는 그 사진 속의 의병들은 모두 총을 들고는 있었지만, 너무 어린 아이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이 농사 짓다 온 농부들의 모습이었다. 중간에 유일하게 정복을 한 군인이 있지만, 그는 군대가 해산돼서 의병이 됐다고 전한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저마다 아픈 상처 하나씩을 가진 채 산으로 모여 의병활동을 시작하는 이들의 장면은 여러 모로 이 사진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전당포를 꾸려오며 음으로 의병을 돕던 일식이(김병철)와 춘식이(배정남)의 모습은 막 그 사진에서 나온 듯한 느낌마저 준다. 

그 사진 속 모습은 저들이 저런 모습으로 얼마나 일제에 항거할 수 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 어리고 전투경험이 없어 보였지만, <미스터 션샤인>이 이들을 다르게 느끼게 해준 건 그들이 의병이 되는 과정을 이야기로 담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문물로 변화해가는 저자거리에서 인력거를 끌거나 빵을 만들거나 양장점에서 옷을 만들고 전당포에서 사연어린 물건들을 받아 돈을 대주며, 병원에서 아픈 이들을 돌보던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군화발로 들어와 무고한 조선인들을 총칼로 쓰러뜨리는 걸 차마 참지 못하고 맞서 총칼을 들게 된 이들이었다. 

고애신(김태리)과 쿠도 히나라 불린 본명 이양화(김민정)가,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들어와 자축연을 여는 일본군인들이 있는 글로리 호텔을 폭파시키는 장면은 그저 그런 액션 장면이 아니라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와 당대의 시대적 코드를 상징하는 장면이 된다. 한 사람은 모든 이들의 추앙을 받던 집안의 애기씨로 불렸고, 다른 한 사람은 일찍이 아버지에 의해 일본인에게 팔려갔다 빨리 개화하여 돌아와 호텔을 운영하는 사장으로 불렸지만 모두 숨겨진 의병이었다. 글로리 호텔이 폭파하며 튀어 오르는 ‘불꽃’은 저 고애신이 말했듯 의병들의 삶과 죽음을 압축해 보여준다. 그것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불꽃이지만 또한 영광(글로리)의 불꽃이기도 하니까. 

김은숙 작가는 이처럼 의병이란 존재가, 우리네 역사가 어려움에 겪을 때마다 들불처럼 번져 일어났던 사실상 역사의 주인이라는 걸 그려내면서, 거기에 개화기와 여성의 문제를 담는 시도를 한다.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들이 고애신과 쿠도 히나라는 사실이, 그들로 인해 이 의병의 삶에 동참하게 되는 유진 초이(이병헌), 구동매(유연석) 그리고 김희성(변요한)이란 캐릭터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여성들의 불꽃이 너무나 활활 타올랐기 때문에 이들은 그 뜨거움에도 불구하고 그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어간다. 

이 부분에서 드라마가 절묘해지는 건 의병의 이야기와 개화기라는 시기 그리고 여성의 문제가 ‘낭만’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멜로 코드와 엮어진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개화기는 일제의 침탈과 항거라는 축으로만 이야기된 점이 있었다면, 김은숙 작가는 그 시기가 조선의 신분사회와 유교적 전통이 서구의 신문물과 만나면서 허물어지던 시기라는 걸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여성의 탄생에 주목한다. 고애신도 쿠도 히나가 드라마의 중심에 서게 되는 건 그래서다. 

의병이라는 존재의 재조명과 개화기가 가진 특수성은 ‘확장된 멜로 코드’를 통해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려진다. 거기에는 유진초이가 가져온 미국도 있고 구동매나 쿠도 히나가 가져온 일본과 프랑스도 있다. 그 안에는 개화기에 일어난 의병이라는 특수한 이야기가 있는 동시에, 그들이 의병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적인 관계의 이야기들이 확장된 멜로 코드를 통해 담겨진다. “당신은 당신의 조선을 구하시오. 나는 당신을 구할 거니까. 이건 내 역사고 난 그리 선택했오.” 유진초이의 이 절묘한 대사는 의병과 개화기와 멜로 코드가 시공간적 특수성을 넘어 보편적인 이야기로 담겨지는 마법을 구사해낸다.

아마도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그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다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이러한 특수성과 보편성의 조화는 아마도 향후 우리네 드라마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닌 세계 시장을 향해 나가기 위해서는 꾸준히 추구되어야할 도전이 될 것이다. 이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조선의 개화기라는 시공간은 그래서 향후에도 다양한 해석들로 드라마들이 풀어내야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우리는 ‘콘텐츠의 개화기’를 맞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의병, 개화기, 여성, 멜로, 글로벌 콘텐츠...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작품 하나를 통해 거둔 성과들은 꽤 크다. 그리고 이 시도들은 향후 우리네 드라마가 나가야할 한 방향을 지목하고 있다는 데서 의미가 깊다. 이미 시장은 열렸고, 우리네 대중들의 눈높이도 그 열린 시장만큼 높아졌다. 이미 시작된 글로벌 콘텐츠 전쟁 속에서 때론 새드엔딩이 될지도 모르지만 불꽃처럼 타오르는 의병들 같은 새로운 콘텐츠들의 영광스런 행보들이 이어지길 바란다. <미스터 션샤인>이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사진:의병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