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회사란 도대체 뭘까.

한때는 평생을 책임져줄 것처럼 여겨지던 그 곳이

이제는 단물 다 빠지면 어떻게든 뱉어내는 그런 곳이 됐다.

 

그 공포감을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은 회사 퇴직 후 변변찮게 살아가는 맏형의 대사 한 마디로 표현한 바 있다.

"회사에서 잘리는 순간 너 바로 나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이야기>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제 손으로 스무 명을 잘라내라는 회사의 요구에

끝내 사표를 던지고 나온 김부장이 집에 온 장면은 너무 리얼해서 가슴을 후벼판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멍하니 정신이 나간 듯한 표정의 김부장에게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아내는 번뜩 남편이 드디어 회사를 그만뒀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처음에는 설거지 하던 손을 떨더니 이내 표정을 바꿔 짐짓 남편을 향해 다가가 물을 튕기며 장난을 친다.

“어이. 어이 백수. 김백수씨? 와이프는 주말에 면접인데 일할 건데, 너는 놀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짓궂게 놀리며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찔러가며 묻는다. 

"퇴직금 얼마 나왔어, 어? 내놔. 내놔, 내놔. 어? 나 가방도 사고 옷도 사고 해외여행도 가고, 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그러자 김부장은 들킨 게 멋쩍은 듯 배가 고프다며 먹을 거라도 달라고 한다. 

하지만 아내의 다소 과장된 장난은 멈추지 않는다.

"어? 돈 줘, 돈 줘, 돈 줘, 돈, 어? 내가 100만원 주면 내가 아주 라면을 기똥차게 하나 끓여준다.”

그리고 당혹스러워 하는 남편을 지긋이 바라보던 아내는

양팔을 벌리고 말한다.

"고생했다. 김부장."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그 말은 수십 년을 일해온 김부장의 시간들을 다독이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김부장이 하는 말이 끝내 나를 울린다. 

"미안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아마도 그건 더 버텨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겠지만

수십 년을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돌아온 사람이 해야할 말은 아닐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건, 김부장의 삶이 얼마나 그 지독한 일터에서 버티는 일로 점철되었던가를 말해준다,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려 버티지 못한 것이 오히려 미안할 정도로.

짐짓 장난까지 치며 남편을 위로하려 했던 아내지만

남편의 그 한 마디에 아내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아휴..."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두 사람은 꼭 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회사 혹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럼에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다행이 아닐까.

이 노부부의 장난과 위로와 눈물이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는 직장인들의  한 생애를 압축하는 것만 같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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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보다 더 큰 가치를 말하는 '백번의 추억'

백번의 추억

 

영례(김다미)의 엄마가 리어커를 혼자 끌고 오르막을 오르다 크게 다치고, 리어커는 망가져 버린다.

가난한 삶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리어커가 망가져 막막해지자, 버스 안내양으로 일하는 영례는 어떻게든 돈을 구해 리어커를 다시 사주려고 한다. 하지만 버스 회사도 심지어 갚을 빚이 있는 작은아버지조차 선뜻 영례의 사정을 들어주지 않는다.

백번의 추억

그 때 종희(신예은)가 선뜻 인형을 선물로 건네며 "이래뵈도 배가 꽤 두둑한 선물"이라고 한다. 그 뱃속에는 어디서 난 것인지 꽤 많은 돈이 들어 있다. 

이걸 어떻게 받냐고 거절하던 영례에게 끝끝내 인

백번의 추억

형을 선물하자 영례는 눈물을 보인다. 그러자 종희가 말한다. "너 쉽다. 돈이면 되네?" 

백번의 추억

그러자 영례가 말한다. 

"그래 나 돈이면 다 된다. 뭐 어쩔래. 근데 이번에 겪어보니까 돈은 무조건 있어야겠더라. 정신이 번쩍 들었어. 만약에 엄마가 진짜로 크게 다치기라도 했으면." 

백번의 추억

하지만 종희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말한다.

"돈 무섭지. 그걸 이제 알았냐? 나.. 나 요새 일기 쓴다. 니가 선물해준 만년필로. 근데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영례랑 뭘 했다' '재밌었다' '너무 웃었다, 행복했다' 난 그런 단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었거든. 근데 너 덕분에 사는 게 좀 재밌어졌어. 그러니까... 그건 쨉도 안돼. 넌 나한테 더 큰 걸 주고 있는 걸."

 

양희승 작가는 '일타스캔들'에서도 돈보다 우선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뭐 하나만 질문 드려도 돼요? 쌤 말씀대로 쌤이 저 30분만 봐주셔도 5천만 원인 셈인데,

그런데 저 왜 봐주시는 거예요? 저희 엄마 도시락은 만원도 채 안되는데.” 

“계산 빠르네. 금방 늘겠어. 아, 가격과 가치는 다른 거잖아. 나는 그 도시락에 그만큼의 가치를 부여한 거고.

너도 내 시간을 그렇게 만들어 주길 바라. 나는 무조건 최선 다할 테니까 너는 5천만 원 이상의 결과를 끌어내 보라고.” 

- 일타스캔들 중에서

 

돈이 우선인 세상에서 종희가 말하는 "그건 쨉도 안돼"라는 한 마디의 울림이 너무나 크다. 

죽어라 노력해 의대생이 됐지만

뇌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딸.

그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남의 집 짓는 건설 현장 소장으로 거칠게 살았지만

정작 자신은 집 하나 갖지 못한 채 허덕이며 살아가는 엄마.

첫, 사랑을 위하여

이들에게 사랑은, 사람은 혹은 삶은

과연 진짜였을까. 

혹시 모두가 가는 길 바깥으로 나가면 죽을 것 같은

불안과 강박 때문은 아니었을까. 

첫, 사랑을 위하여

눈 앞의 파도가 무서워 바다를 가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되는 것처럼

당장의 불안감에 '나중에'만 언급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진짜 사랑, 사람, 삶이 아닐까

첫, 사랑을 위하여

.

아직까지 진짜를 해보지 않아

모든 것이 '첫' 일 수밖에 없는

사랑, 사람, 삶.

첫, 사랑을 위하여

트라이

왜 럭비는 점수를 낼 때 '골'이라 부르지 않고 '트라이'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그건 점수를 낸 골 자체가 아니라

무수히 여러 변수들을 뚫고 지나간 과정 자체를

이 스포츠는 더 중요한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트라이

무언가를 얼마나 얻었는가가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에

각각에게 매겨진 점수들이 오롯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었다고 착각하는 시대에

<트라이 : 우리는 기적이 된다>는 그것이 그저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트라이

물론 그 운도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삶의 과정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지만

설사 점수를 내지 못한 삶이라도 

매번 노력하고 도전한(트라이한) 삶이라면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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