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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막장 시대, 웃음 주는 완소드라마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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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

이른바 막장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극적인 설정의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웃음을 주는 완소드라마가 있어 눈길을 끈다. 그 주인공은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과 SBS 주말드라마 '그대 웃어요'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짜증과 경악의 연속인 자극적인 드라마들과는 상반되게, 이들 드라마들은 보는 내내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게 하는 마력을 발휘하는 것이 특징. 도대체 어떤 점들이 이들 완소드라마들만이 갖는 매력을 만드는 것일까.

'지붕 뚫고 하이킥'은 독특한 시트콤이다. 시트콤이라면 시추에이션 코미디로서 웃음이 전면에 내세워지게 되지만 이 작품은 그저 물리적인 웃음에만 머물지 않는다. 웃음 뒤에 진한 페이소스를 남기는 것이 특징. 산골에서 상경해 부모 없이 서울 하늘에서 생존해가는 세경과 신애가 보여주는 진한 자매애가 그렇고, 그런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은연 중에 내미는 줄리엔이나 준혁, 지훈의 이야기가 그렇다.

동생 신애에게 학용품을 마련해주기 위해 샌드위치 많이 먹기 대회에 참가하는 세경의 에피소드는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떤 훈훈한 감동을 준다. 해리가 가진 인형을 갖고 싶어 신애가 훔치려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정보석의 한 박자 늦는 탐정 놀이에서 웃음이 터지지만, 결국 그 사실을 알게된 지훈이 신애에게 인형을 새로 사서 전해주는 장면에서는 훈훈한 미소가 피어난다. 준혁이 버린 학교 체육복을 입고 학교를 찾아온 세경이 번번이 체육선생에서 당하는 에피소드는 큰 웃음을 주지만, 학교 공부가 그리운 세경에게 준혁이 마치 버리는 것처럼 참고서를 건네는 장면에서는 흐뭇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이처럼 웃음에 어떤 마음을 담아내는 것으로 '지붕 뚫고 하이킥'이 주는 웃음은 여타의 시트콤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게 된다. 폭소는 즉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지만 쉬 잊혀지기 쉽다. 하지만 상황이 주는 흐뭇함에 짓게 되는 미소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지붕 뚫고 하이킥'이 완소 드라마이게 하는 이유다.

한편 주말드라마로 점차 주목받기 시작한 '그대 웃어요' 역시 풍자적인 웃음 속에 페이소스를 담아냈다. 허풍에 겉멋만 잔뜩 든 서정길(강석우)이 사업에 실패하고 길바닥에 나앉게 되자 그의 운전기사였던 강만복(최불암)이 그 가족을 거두어 함께 살아가는 독특한 설정의 이 드라마는 예의 없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스며들어 있다. 운전기사였었다는 것만으로 여전히 하대하는 서정길은 돈이면 다된다는 식의 무례한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 그를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강만복의 결심은 이 시대에 대한 통쾌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이 심각해질 수 있는 계층의 부딪침을 이 드라마는 가벼운 웃음으로 전화시키는 풍자정신을 발휘한다. 게다가 강만복의 일갈은 당한 것에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마치 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는 것 같은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서정길의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은 강만복이 엇나가는 서정길을 자식처럼 계도하는 이야기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유쾌하고 훈훈해진다.

우연의 일치인지 이 '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는 모두 계층적인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 메인 줄기로서 가진 것 없고 부모마저 없이 산골에서 상경한 세경, 신애와,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어딘지 빈 구석이 많은 서울의 해리네 가족이 대비된다. '그대 웃어요' 역시 돈 걱정 없이 살아온 정인(이민정)네 가족과 늘 절약만을 외치며 살아온 현수(정경호)네 가족의 그 다른 삶의 방식이 갈등의 메인줄기다.

이러한 계층적 갈등이 갖는 빈부격차의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로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이 '지붕 뚫고 하이킥'과 '그대 웃어요' 가 이 갈등을 봉합해가는 과정이다. 대결구도가 파탄과 복수로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들과는 달리, 이 작품들은 긍정의 힘으로 어떤 소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이 이 작품들이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주면서도 화해가 갖는 훈훈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