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감독 김연경

“얘네가 미들 공격이 없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빨리 한 쪽으로 와서 투 블로킹 해야지.”

김연경 감독은 정관장 레드스파크스와의 경기를 준비하며

선수들에게 상대팀이 중앙 공격이 없으니

우리쪽 중앙 수비수가 양 사이드로 들어가

두 명이 블로킹을 하면 승산이 있다는 걸 강조했다.

그리고 10대2로 지고 있는 상황에 이 전략은 그대로 먹혀들었다.

투 블로킹으로 점수를 따내며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

이 한 포인트가 기점이 되어 점수는 11대11까지 바짝 따라붙었다.

신인감독 김연경

MBC 배구 예능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의 이 한 장면은

이 스포츠예능에 최근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아마도 중계방송이었다면 이 블로킹 장면은 흔하디 흔한 1점 포인트를 얻는 장면으로 지나갔을 게다.

하지만 <신인감독 김연경>은 그 포인트가 그냥 나온 게 아니라

김연경 감독의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이 한 수로 인해 팀 분위기가 상승세를 가져왔다는 걸 보다 디테일한 편집을 통해 보여준다.

그건 마치 <슬램덩크 더 퍼스트>나 <하이큐>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애니메이션의 편집 방식과 유사하다.

경기를 보여주지만, 중간 중간 어떤 한 포인트를 내는 순간에

그 점수가 나기까지의 준비 과정들을 플래시백으로 편집해 보여준다.

그러니 그 한 점의 타격감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김연경의 작전이 바로 바로 선수들의 경기를 통해 들어맞는 순간을 접하며 열광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여자배구가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였나.

신인감독 김연경

올해 은퇴한 김연경은 선수 시절 ‘언더독의 해결사’로 불렸던 인물이다.

일본 최하위팀 JT마블러스에 입단해 창단 사상 첫 우승을 안겼고,

배구 최강국 튀르키예의 만년 하위팀 페네르체바에 들어가 창단 최초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6위 성적의 중국 상하이 유베스트, 튀르키예 엑자시바시에서도 모두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감독 김연경>은 바로 그 김연경이 여러 이유로 은퇴하게 된 여자배구 선수들로 팀을 꾸려

신인감독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스포츠예능이다.

예능이라고 하면 대충 은퇴 선수들의 방송 도전 정도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이 프로그램은 목표 자체가 다르다.

2부리그가 없어 팀에서 밀려나면 기량이 있어도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선수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목표는 다시 프로팀이나 실업팀에 복귀해 선수로 뛰는 것이다.

프로 제8구단을 목표로 ‘언더’에서 ‘원더’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담아 팀명을 ‘원더독스’라 정했다.

신인감독 김연경

결과는 놀라웠다.

김연경의 지도 하에 성장을 거듭한 원더독스는

2024-2025 시즌 프로통합 준우승팀인 레드스파크스까지 꺾으며

팀의 목표였던 50% 승률을 달성했다.

또한 선수들의 목표였던 프로팀과 실업팀에 실제 복귀하는 사례도 이어졌다.

은퇴했던 이나연 선수가 핑크스파이더스에 입단했고,

김현정 선수 또한 지난 9월 수원시청 배구단에서 실업 배구선수로 뛰게 됐다.

리얼 성장담이 갖는 남다른 몰입감 때문일까.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놀라운 무려 4.9%(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특히 광고의 지표가 되는 2049 시청률은 4주 연속 주간 방송 프로그램을 통틀어 1위를 기록했다.

신인감독 김연경

<신인감독 김연경>이 보여주고 있는 건 실제 스포츠 중계보다 더 재밌는 스포츠예능의 강력한 영향력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여자배구에 관심을 갖게 된 팬층이 급증했다.

실제 이번 시즌의 마지막 경기로

V리그 최다 우승팀이자 2024-2025 시즌 프로통합 우승팀인 핑크 스파이더스와 치러진 직관 경기에는

3일 만에 약 1만 명이 신청해 전석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원더독스의 팬들은 시즌2 제작은 물론이고

나아가 MBC가 프로배구팀을 창단해 제8구단이 되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무엇이 스포츠 자체에도 변화를 만드는 스포츠예능의 시대를 열게 한 것일까.

신인감독 김연경

과거 스포츠예능은 스포츠 자체보다 예능에 초점이 더 맞춰진 가벼운 경향이 있었다.

KBS <천하무적 야구단>이나 <우리동네 예체능> 같은 프로그램이 그 사례다.

하지만 KBS <씨름의 희열>이 방영되면서 스포츠예능은 실제 스포츠까지 변화시키는 묵직한 힘을 발휘했다.

점점 저변이 사라지고 있는 씨름을 마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연출하고,

다각도의 카메라로 연출된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팬층이 생겨났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마지막 직관 경기가 실제로 치러지진 못했지만,

순식간에 전석이 매진되는 놀라운 결과도 만들어졌다.

스포츠예능의 변화는 방송에 진출하는 스포츠스타들에게도 변화를 일으켰다.

강호동이나 서장훈처럼 방송인으로서 출연하는 게 아니라,

진짜 자신이 뛰었던 스포츠를 중흥시키기 위한 진정성을 갖고 출연하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이 출연해 프로야구의 막강한 저변을 만든 JTBC <최강야구>는 단적인 사례다.

또 축구 스타 최용수가 감독이 되어 꾸린 팀으로 K3, K4 리그 팀과의 실전을 벌이는 <슈팅스타>도 마찬가지다. 

신인감독 김연경

스포츠예능이 스포츠중계보다 재밌는 이유는 촬영과 편집에 있어서 보다 자유도가 넓기 때문이다.

<신인감독 김연경>에서 선수들은 저마다 마이크를 달고 경기에 들어간다.

경기를 찍는 카메라도 선수 한 명 한 명을 따라다닐 정도로 세분화되어 있다.

그러니 스포츠중계가 포착해내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동작들 하나하나를 이 마이크와 카메라는 잡아낸다.

<슈팅스타>에서는 축구경기에 레이싱 드론이 띄워지고,

선수들 유니폼에 소형 카메라가 부착되어 박진감 넘치는 영상과 음향이 담겨진다.

게다가 생방송이 아니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편집이 가능하다.

마치 경기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디테일한 장면들이 가능해지는데,

이건 지금의 팬들이 원하는 것들이다.

이제 스포츠중계는 스포츠예능에 배워야 할 상황이 됐다.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중계를 팬들이 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진:MBC)

‘나는 생존자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우리가 제대로 아는 건 없었다

나는 생존자다

“이런 사고가 나게 되면 늘 보상이 먼저 나와요. 보상이. 생명 앞에 돈을 이야기하고.. ‘돈을, 보상을 잘해 줄게’, ‘돈 때문에 너희들 그러지?’ 이 한마디에 그냥 다 무너져 내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생존자다>에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유족의 이야기는 못내 아프다. 그건 삼풍백화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참사를 대하는 경박하고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를 콕 집어내고 있어서다.

 

사실상 원인이 분명히 있는 인재지만, 마치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천재인 것처럼 취급하고 그래서 그 진상을 규명하기보다 서둘러 보상 이야기를 꺼내며 돈으로 덮어버리려 하는 듯한 천박한 행태들이다. 그건 삼풍백화점 유족이 눈물을 꾹꾹 삼키며 피처럼 토해놓는 말처럼, 그들이 먼저 보낸 가족으로 이미 헐어버렸지만 애써 버텨내려 했던 삶의 옹벽을 또 한 번 무너뜨리는 일이다. “금전으로 목숨을 대신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는 신이다>로 사이비종교의 추악한 민낯을 적나라하게 꺼내놓음으로써 사회적 충격과 파장을 일으켰던 조성현 PD가 그 후속편으로 <나는 생존자다>를 내놨다. 총 8회로 형제복지원, JMS, 지존파 그리고 삼풍백화점을 다뤘다. 전작에 비해 유사한 사건들로 묶이지는 않지만, 대신 조성현 PD가 하나의 연결고리로서 들여다본 건 제목에 담겨있는 것처럼 ‘생존자’라는 키워드다. 그저 피해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이들이고 그 후에도 여전히 생존의 고통스런 삶을 버텨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생존자’다.   

 

당시 끔찍했던 사건들을 실제와 재연된 영상을 통해 꼼꼼히 그 진상을 담아내면서도, 생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의 절절한 인터뷰가 중심이 되어 이들의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고통의 삶을 전한다.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고 경찰에게 붙잡혀 형제복지원이라는 지옥에 끌려 갔다 몸도 정신도 망가져 버린 채 현재까지도 그 시간에 멈춰 살아가는 생존자들이나, <나는 신이다>를 통해 교주 정명석의 성범죄를 용감하게 폭로했지만 그로 인해 생명의 위협까지 받은 메이플이나 조성현 PD, 또 지존파에 의해 살인 공장에 납치되었다가 9일 간의 사투 끝에 도망쳐 살아 남았지만 그 지독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생존자, 그리고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삼풍백화점 붕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유족들... 

 

<나는 신이다>가 숨겨진 사실을 꺼내놓는 폭로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나는 생존자다>는 이들의 고통을 들여다보면서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도 빼놓지 않았다. 거의 홀로코스트에 가까운 형제복지원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그 폭력을 주도한 박인근 원장이 미미한 처벌을 받고 그 가족들이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는 건 당시 이 사건이 군부독재의 비호 아래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공개됐지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 없이 유야무야 처리된 것. 

 

그렇다면 군부독재의 시대를 지난 현재까지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사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건 무얼 뜻하는 걸까. 과거의 잘못과 선을 긋지 못하는 현 정부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일까. 어쩌면 당장의 현실과 이익에만 집중하다 그런 일들은 이미 지나간 과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생존자다>는 그것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생존자들과 유족들이 고통스런 싸움을 하고 있는 현재의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를 요구하는 생존자에게 비웃음을 던지는 가해자들이 존재하는 한 이건 결코 과거의 일이 될 수 없다고 이 다큐멘터리는 말하고 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으로만 나아가라는 한국 사회의 강령은 개발시대 이후 끝난 게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잘 사는 것, 부유해지는 것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그 풍조가 형제복지원, JMS, 지존파, 삼풍백화점 사건을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다. 사건으로 발현된 증상은 저마다 달라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원인은 강박에 가까운 돈과 성공, 성장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자다>가 삼풍백화점 참사를 다룬 마지막 회의 부제가 ‘돈으로 쌓은 탑’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보다 많은 수익을 내려는 백화점 측의 무리한 설계 변경 요구가 있었고, 이를 허가하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이 있었다. 또 들어가야 할 철근을 빼돌린 부실공사가 있었고, 붕괴될 위험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영업이 인명보다 중요하다 여긴 경영진들의 무책임이 있었다.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건 결국 ‘돈’이다.

 

형제복지원과 경찰이 공조해 무고한 아이들까지 잡아간 데는 더 많은 국가보조금과 뇌물이 있었고, JMS의 정명석이 감옥에 수감된 이후에도 이 사이비 교단이 계속 유지된 데는 2인자 정조은의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있었다. 지존파의 엇나간 폭력의 이면에도 양극화된 돈에 대한 박탈감이 존재했고, 삼풍백화점 붕괴에는 보다 많은 이윤을 남기려 무리한 설계 변경까지 하려 했던 경영진과 뇌물을 받고 이를 무마해 준 공무원들이 있었다.  

 

그러니 가족을 잃고 절망하는 유족들에게 먼저 보상 이야기를 내놓는 건 돈이면 뭐든 다 된다고 믿는 여전한 돈 지상주의적 발상이 아니고 뭘까. 그래서 그런 비극을 과거로 빨리 밀어내고 앞으로만 가려는 행태는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 같은 또 다른 삼풍백화점의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다. 사실 생존자나 유족들도 그 끔찍했던 당시 사건들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건 고통 그 자체다. 그럼에도 왜 인터뷰에 응하게 됐는가를 묻는 조성현 PD의 질문에 한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이게 이렇게 안하면 잊어요.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잊기 때문에 널리 좀 퍼지게 해주세요. 수고스러워도.” 그러니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우리 역시 이 사건들을 눈 부릅뜨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 또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아야 하므로.(사진:넷플릭스)

‘태계일주4’, 기안84가 18살 셰르파에게 감동한 까닭

태계일주4

“너네 존경스럽다. 존경스러워.” MBC 예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4(이하 태계일주4)>에서 기안84는 네팔의 젊은 셰르파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30킬로에 달하는 짐을 이마에 메고 가파란 산길을 오르내리는 일을 하는 아이들. 이제 겨우 스무살, 열여덟살인 라이와 타망은 그 길을 하루에도 서너 번 정도 왔다갔다 한다고 했다. 

 

에베레스트 시작점인 마을 루클라의 한 식당에서 소년 셰르파들을 만난 기안84는 그들과 함께 짐 나르는 걸 해도 되겠냐고 물었고, 결국 고행 길을 자청하게 됐다. 머리 끈에 의지해서 30킬로 무게의 짐을 짊어지고 오르는 산길. 기안84는 중심조차 잡기 힘든 그 일을 이 어린 소년들은 묵묵히 별 힘든 내색도 없이 하고 있었다. 

 

배달 1회에 버는 돈은 1500루피. 한화로 1만5천원 정도다. 그런데 식당에서의 한끼 식사가 500루피 정도 한단다. “밥 먹고 나면 돈이 안남잖아.” 기안84가 그렇게 말하자 소년은 “그래도 배는 불러요.”라고 말했다. 이들의 삶이 그토록 힘겨운 일을 하면서도 얼마나 소박한지를 잘 말해주는 장면이다. 돈 많이 벌면 하고 싶은 일이 “부모님 즐겁게 해드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소년들이다. 

 

<태계일주4>는 그 시작을 뭉클한 감동의 이야기로 열었다. 지금껏 <태계일주>가 기안84 특유의 날것의 웃음과 재미를 먼저 보여줬던 것과는 다른 시작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지가 ‘차마고도’라는 극한의 오지라는 점과, <태계일주>는 주마간상식의 여행이 아니라 그들 삶 깊숙이 들어가는 여행이라는 점은 왜 이런 시작을 했는가를 공감하게 한다. 먼저 그들의 진짜 삶을 보여주는 것이 일종의 예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계일주4>의 첫 회는 현지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그들과 나누는 정으로 겉으로는 기안84 특유의 유쾌함이 가득 했지만 보는 내내 먹먹함이 있었다. 순박하고 밝은 표정의 소년 셰르파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먹먹해졌다. 12살, 13살부터 시작했다는 그 일이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삶의 무게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풍경이 아름답잖아요. 히말라야 산도 그렇고. 들기 전엔 몰랐는데 막상 하니까 땅만 보고 가는 거야 내가.” 기안84는 일일 셰르파 체험을 온몸으로 한 소회를 그렇게 전했다. 짐을 잔뜩 짊어지고 오르면서 기안84는 소년들에게 이걸 하니 하늘을 못보는게 아쉽다고 말한 바 있다.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가야 되고, 걸어간 걸로 돈 벌어서 그걸로 가족들 먹고 살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느낌인데 당장 앞만 보고 가는 삶이 셰르파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데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요즘의 여행이란 즐거움과 재미로만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다. 여행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어떻게 하면 재밌을까만 고민하는 경향이지 않은가. 그러다보면 정작 현지가 소외되는 일이 생긴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저 재미를 위한 배경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기안84가 먼저 네팔의 셰르파들의 삶을 비록 하루지만 직접 경험해 전해주면서 이 여행의 문을 연 건 <태계일주4>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쩐지 그래서 <태계일주4> 첫 회의 주인공은 기안84가 아닌 저 소년 셰르파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앞으로 펼쳐질 4인방이 뭉쳐 떠나는 차마고도의 여행은 즐거움과 재미도 가득할 테지만, 이러한 진심을 잃지 않는 태도가 이 여행에 기꺼이 동승하고픈 마음을 불러 일으킨다. 기안84의 <태계일주>가 각별한 여행 예능으로 다가오는 근본적인 이유다. (사진:MBC)

‘대환장 기안장’, 기안84의 상상을 현실화한 진의 실행, 지예은의 찐공감

대환장 기안장

“나도 울릉도 구경가고 싶다.”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에서 기안84는 창밖으로 펼쳐진 울릉도의 풍광을 보며 말한다. 화창한 날씨에 더더욱 빛나는 울릉도의 풍광이다. 그러자 옆에 앉은 지예은이 신세한탄하듯이 말을 덧붙인다. “나도, 울릉도 왔는데...” 그러자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기안84의 마음이 흔들린다. “우리 한 번만 어디 갔다 오면 안될까?” 기안84의 말에 지예은은 발까지 동동거리며 “한번만 가자”고 애원한다.

 

그런데 기안84가 그렇게 말하며 눈치를 보는 건 다름 아닌 진이다. 사장이 기안84이고 진은 사원(?)이지만, 오히려 기안84가 진의 눈치를 보는 건 요령이나 타협 따위는 없이 원칙을 고집하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진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사장님 놀러왔어?” 그 말에 지예은이 “그럼 우리는 구경도 못해?”라고 묻자 진의 단호한 한 마디가 이어진다. “못하지. 우리는 일하러 온 거고 이분들이 구경하러 온 건데. 우리는 놀러온 게 아니야.”

 

결국 기안84는 꼬리를 내린다. “그래, 놀러온 게 아니지.” 그리고 반성한다. “내가 흔들릴 때마다 네가 잡아줘서 너무 고맙다. 야, 진짜 너 아니었으면 이 봉도 없어지고 1층에 문도 뚫고 지금 다 했을 텐데.. 세탁기 하나 장만하고... 근데 그건 기안장이 아니야.” 단호한 진에 굴복하며 사죄하는 기안84의 모습에 손님들은 빵 터진다. 혹여나 울릉도 구경이라도 갈 줄 알았던 지예은의 짜증 가득한 투덜거림에 또 한번 웃음이 터진다. 

 

이 장면은 <대환장 기안장>의 완벽한 케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기안84조차 자신이 웹툰처럼 상상한 기안장이 실제로는 어떨지 전혀 감이 없었다. 그래서 막상 처음 기안장에 왔을 때만 해도 자신조차 황당하고 불편한 그 곳에서 자꾸만 타협하고픈 마음을 먹게 됐다. 자신 혼자 불편하다면 상관없는데, 자신의 상상으로 손님들이 불편해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 

 

마침 목수인 손님이 오자 벽을 뚫어 2층과 1층을 봉으로 오르락 내리락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면 어떨까 기안84가 고민했지만, 그 때 진이 나서 결사반대했다. 그건 기안장의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실로 기안장에 투숙하겠다며 지원한 손님들이라면, 저마다 기안84식의 하룻밤을 기대했을 터였다. <효리네 민박> 제작진이 만들었지만 기안84가 출연하니 <효리네 민박> 지옥편이 될 거라고 지원자들이 예상했던 건 그래서였다. 

 

실제로 “너무 쉽게 집에 들어가는 게 꼴보기 싫었다”며 2층으로 난 문을 설계했던 식으로 기안장에는 기안84가 키득거리며 내놓은 상상들이 현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르내리는게 불편해서 내려올 때 쓰는 슬라이드로 올라가는 걸 손님들에게 허용할까도 고민했던 기안84였다. 그 때마다 그걸 막은 것도 진이었다. 진은 문지기를 자청해 슬라이드로 오르려는 이들에게 다시 내려가서 제대로 클라이밍을 해 문으로 들어오라고 지적하곤 했다. 

 

상상은 기안84가 했지만 그걸 원칙 그대로 굴러가게 만든 건 그래서 진의 역할이 지대했다. 기안84 스스로 인정한 것처럼, 그는 사장이 흔들릴 때마다 멘탈을 잡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치거나 일정 때문에 사장이 부재할 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든든한 역할을 했다. 매끼 손님들이 요구하는 음식을 맛나게 요리해주고, 기안84가 부재할 때 손님들과 광란의 밤(?)을 즐기는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인가를 입증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애초 기안84와 함께 그가 사는 방식을 함께 살아보고 싶다며 이 프로그램에 자원한 진은 그 선택 그대로 요령 없이 기안84의 삶 그대로를 체험한 셈이었다. 힘들고 불편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있어, 이 힘겨움과 불편은 낭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지예은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찐 공감’ 역시 세 사람의 케미에 균형을 맞춰줬다. 기안84와 진이 ‘낭만’ 운운하며 힘든 상황들을 감당하려 할 때, 지예은은 MZ대세 다운 솔직한 투덜거림으로 이 상황이 얼마나 힘든가를 공감하게 했다. 과도한 낭만으로만 기울어졌다면 감흥이 덜했을 이 체험에 현실적인 찐 공감으로 균형감을 줬다고나 할까.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의 웹툰적 상상력과, 진의 원칙을 지키는 실행력 그리고 낭만으로 붕붕 떠오르는 기안장에 지예은이 현실감을 부여하는 찐 공감이 더해져 완성됐다. 9편으로 마무리된 시즌1은 사실상 이 실험적인 도전의 적응기에 가까웠다. 적응할만 하니까 끝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시즌2로 돌아온다면 적응기에서 한 발 더 나간 기안장의 이야기를 보고싶다. 물론 기안84와 진, 지예은이 만들어낸 완벽한 앙상블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사진:넷플릭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