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진심 사이의 거리, '신데렐라 언니'
진심과 진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신데렐라 언니'의 인물들은 대부분 가까운 가족관계지만, 그 마음과 마음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혹독한 삶을 살아온 송강숙(이미숙)은 진심을 믿지 않는다. 그녀에게 사람이란 '뜯어먹을 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일 뿐이다. 그녀는 피붙이를 위해서 진심 따위는 사치라 여기게 되었다. 그런 그녀가 오열한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린 남편 구대성(김갑수)의 진심을 드디어 보게 됐기 때문이다. 다이어리에 적혀진 "내 인생이 그 사람 없이 계속 되는 것,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는 글귀는 꼭꼭 닫아뒀던 송강숙의 마음을 열었다.
이 닫혀진 마음을 여는 진심의 힘은 '신데렐라 언니'가 그토록 호소력이 있는 이유다. 이 드라마는 진심을 믿지 않는 송강숙, 그리고 그런 엄마 때문에 마음을 닫아버린 은조(문근영)가 대성도가에 들어오면서 차츰 진심을 받아들이는 그 과정에 주목한다. 은조는 처음 기훈(천정명)을 통해 마음이 설레었고, 그가 사라지자 그 흔들리는 마음을 새아버지 대성이 잡아주었다. '뜯어먹을 게 있어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사랑하면 됐다"고 말하는 대성은 진심을 믿지 않고 외면하던 두 모녀의 단단한 껍질을 깨버린다.
대성은 이미 죽었지만, 그가 남긴 무조건적인 사랑은 남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열어놓는다. 대성과 똑같은 사랑의 방식으로 살아온 효선(서우)은 자신을 미워하고 밀어내는 송강숙과 은조를 자꾸 등 뒤에서 껴안는다. 그러면서 그 밀어내는 '서운한 감정' 또한 "자신이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성의 말에서 유전된 그녀의 "내가 사랑하면 그걸로 됐다"는 말, "아파도 괜찮다"는 진심의 말은 은조의 딱딱한 마음을 아프게 찌른다.
이 과정, 진심을 믿지 않고 외면하는 이들이 마음을 여는 과정은 각박한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굳건히 마음의 빗장을 채워둔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울린다. 아내 송강숙(이미숙)이 다른 남자를 만나도, 또 "뜯어먹을 게 있어" 자신을 좋아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믿었던 기훈(천정명)이 자신의 술도가를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는 사실로 쓰러져 죽기 직전에도 그저 "괜찮다"고 말하는 대성. 그는 진심이 버려진 세상에서 가면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무장해제 시킨다. 은조와 송강숙의 뒤늦은 참회와 눈물은 그걸 바라보는 우리의 눈물과 그렇게 맞닿아 있다.
'신데렐라 언니'는 진심의 드라마다. 우리가 흔히 알던 신데렐라 이야기를 그 언니의 입장에서 다시 보게 만든 것은, 본래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던 그네들의 진심을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드라마는 사건 전개에 급급하기 보다는 사건 사이에서 겪게 되는 인물들의 진심에 천착한다. 대사 속에서 혹은 내레이션을 통해서 전해지는 진심의 강도는 의외로 세다. 그토록 독한 계집애 은조가 그토록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지게 된 것은 그 껍질 이면의 진심을 우리가 바라봤기 때문이다. "봐도 괴롭고 안봐도 괴롭지만 그래도 보면서 괴로운 것이 낫겠다"는 사랑을 하는 그녀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제는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가깝게 보여도 그 사람들 속의 진심 사이의 거리는 의외로 멀다. '신데렐라 언니'는 그 먼 거리에 놓여진 진심을 조우하게 되는 감동을 선사한다. 각박하게 살아가며 없는 것처럼 치부했던 그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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