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그들은 왜 다시 무대에 올랐나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그들은 왜 다시 무대에 올랐나

D.H.Jung 2010. 9. 1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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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로운 집, 고급 세단, 화려한 파티, 명품백과 우아한 드레스, 게다가 누구나 부러워하는 명망가의 변호사로 잘 나가는 남편. 돈 걱정 없는 삶... 누구든 이런 삶을 꿈꾸지 않는 이가 있을까. 하지만 '나는 전설이다'의 전설희(김정은)는 이런 삶이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숨기며 살 순 없다"며 이혼을 결심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진짜 삶은 무엇일까. 젊은 시절, 가난했어도 피를 끓게 했던 무대 위, 그 곳에 그녀가 꿈꾸는 진짜 삶이 있다. 기타 하나 들고 노래를 부르면 답답한 가슴의 체증을 전부 날려버릴 수 있었던 그 시간의 기억들. '밴드'에 숨겨진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 여성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버리려고까지 하는 것일까.

'밴드'라는 키워드를 두고 보면 '나는 전설이다'라는 드라마가 상기시키는 영화가 있다. 바로 2007년에 개봉되었던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다. 이 영화에서 지질한 인생을 살아가던 남자들은 '밴드'로 묶이면서 그 갑갑하고 출구 없는 일상을 음악으로 훌훌 털어버린다. 자꾸만 설 자리가 없어지는 남성들이 이 영화를 보며 열광했던 것은 매일 매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오면서 잊고 있었던 즐거운 청춘에 대한 기억과 꿈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일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그래서 놀이로 여겨지는) '밴드'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즐거움'을 찾아낸다.

직장인 밴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것은 바로 이 '일과 놀이'를 구분하며 일을 우위에 두던 삶에서 이제 그 동등함, 혹은 나아가 그것이 역전된 삶으로의 이행을 우리가 경험하는 시대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놀지 않고 일해 성공하던 시대에서 이제 제대로 놀아야 성공하는 시대로의 이행. '일밤'에 생겼다 사라져버린 '오빠 밴드'라는 코너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들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다시 악기를 쥐고 전국의 무대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물론 그 구성원들이 탁재훈이나 유영석처럼 프로들로 짜여져 아마추어밴드라는 성격이 무색해지는 단점을 드러내면서 사라져버렸지만 그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욕망은 해마다 무슨 무슨 가요제라는 이름으로, 혹은 기념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무한도전'이 밴드에 도전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최근 밴드를 조직해 아마추어 밴드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을 담은 '남자의 자격'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로써 '밴드'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의 하나로 취급되었다.

물론 이들 밴드 이야기에 있어서, '나는 전설이다'의 전설희라는 여성이 밴드로 복귀하는 이야기와 '즐거운 인생'에서 지질한 남성들이 밴드로 복귀하는 이야기에는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남성들은 인생의 끝단에 몰려서 밴드라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는 반면, 전설희라는 여성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밴드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좀 더 능동적이다. 남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절망을 밴드를 통해 풀어낸다면, 여성들은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적인 결혼생활이 갉아먹는 자존감을 밴드를 통해 확인하려 한다. 성별에 따른 삶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밴드를 선택하는 동기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밴드를 중심으로 보면 삶의 억압과 그 탈출구로서의 음악이라는 점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밴드에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의 단초는 "왜 다른 것도 아니고 하필 '밴드'인가"라는 질문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밴드'만이 가지는 자유, 저항정신, 마이너리티 정서 같은 감성에 대한 향수가 숨겨져 있다. 밴드하면 연관되어 떠오르는 록의 정신, 사회적인 억압이나 관습적인 틀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그 저항정신의 뜨거움,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젊음(생각의 젊음이다) 하나로 하나가 되는 사람들.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메이저들의 세상을 뒤집는 위치에 있기에 마이너리티일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뭐 하나 거칠 것이 없는 생각의 자유. 이것들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밴드'라는 존재가 던지는 매혹이다.

이들 '밴드 콘텐츠(?)' 속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게 모든 걸 던지고 밴드로 회귀하는 인물들의 연령대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 경험을 통해 그 깊은 억압을 겪어본 중년들이다. 따라서 작금의 중년들이 그 청춘의 시절에 만끽했던 '밴드'의 경험(여기에는 밴드에 열광했던 기억까지 포함된다)은 이들 콘텐츠 속에서 향수가 되어 이들을 자극한다. 이 중년들은 '밴드'를 통해 이제는 희미해진 이 청춘의 기억을 더듬으며 그 때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도대체 나이가 장애가 될 건 뭔가. 왜 지금 하면 안 되는가.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되던 시대에서 이제는 마흔의 청춘을 얘기하는 시대로 바뀌면서 이 중년들이 찾는 것은 잃어버린 자신들의 문화다. 일만큼 중요해진 것이 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오히려 놀이가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 때론 그 자체가 경쟁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중년들은 자신의 삶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놀이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미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들을 위한 것들이기 일쑤고, 그러니 그들의 문화를 기웃거리며 그 청춘의 향기를 멀리서 맡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다반사가 아닌가.

좀 더 기획적인 자본이 투여되면서 대중문화의 시대가 도래하자 밴드 음악은 사라져버렸다. 록에 심취하고 무대에 익숙했던 중년들은 그네들의 문화 한 자락을 잃어버린 셈이다. 프로의 시대에 직장인 밴드들이 아마추어리즘을 오히려 내세우며 클럽에 등장하는 것은 이 잃어버린 문화의 복원을 꿈꾸는 것이면서, 또한 지나치게 상업화되면서 사라져버린 그 아마추어리즘의 도전과 실험정신을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전설이다'라는 드라마 속에서 밴드 음악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동시에, 아이돌로 대변되는 상업화된 현재의 음악계가 등장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니 그들이 돌아간 무대는 단지 향수어린 추억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밴드'라는 존재가 그려내듯이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과거 그 때'가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어떤 삶을 누려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들어있다.

'밴드'를 다룬 콘텐츠들 어떤 것들이 있나
윤도현이 출연했던 '정글스토리'는 당대 록월드라는 실제 라이브 록카페를 공간으로 사라져가는 밴드 음악의 끝단을 잡아냈다. 새벽 영업이 금지되던 시절, 홍대 앞 록월드는 툭하면 영업정지를 먹곤 했는데, 영화 속에 그 주인이 등장해 "영업정지를 먹었습니다"하고 말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음악을 영화로 끌어들이길 즐겨하는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 스타'에서 한물 간 가수의 삶을 그려내고는, '즐거운 인생'으로 직장인밴드를 통해 당대 고개 숙인 남자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의 음악 취향(?)은 '님은 먼 곳에'라는 영화에까지 이어져 월남으로 가는 순이(수애)에게 마이크를 쥐게 했다. TV는 주로 예능 프로그램이 밴드를 다뤄왔는데, '오빠밴드'처럼 아예 밴드를 특화해 하나의 코너로 만든 것도 있고, '무한도전'이나 '남자의 자격'처럼 하나의 아이템으로 밴드를 활용한 것도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가 밴드를 소재로 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전설이다'가 대표적이고 주말극으로서 '글로리아'도 역시 밤무대 가수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이들 드라마들이 무대 위에 여성들을 올린 것은 다분히 사회적 억압으로부터의 탈피와 동시에 개인적 성장의 공간으로서 무대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시사저널'에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