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왜 이은미는 이승철이 되지 못했을까 본문

옛글들/명랑TV

왜 이은미는 이승철이 되지 못했을까

D.H.Jung 2011. 5. 9. 09:34
728x90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을 위한 멘토링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위대한 탄생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를 사랑하는 분들이 유독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음악을 통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은미가 백청강을 심사한 후 한 발언이다. 짧은 발언이지만 이 속에는 이은미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잘 담겨져 있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이은미는 이 발언을 통해 '위대한 탄생'이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을 평가하는 오디션임을 강조했다.

사실 '위대한 탄생'이 그저 기획사 같은 곳에서 가수지망생들을 뽑는 오디션이라면 이 말은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그런 오디션이 아니라, 이 과정이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즉 일반적인 오디션에서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는 심사위원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 형식상 후보자를 뽑는 당사자가 심사위원이 아닌 투표에 참여하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은미의 이 발언은 (드라마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의 선택을 꼬집은 것이고, 자신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는 '음악을 통한 오디션' 심사가 정당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소신을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은미의 생각과 그 소신 있는 발언이 대중들과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서 그녀의 심사와 평가가 대중들의 투표에 영향을 주기 어렵고, 때론 정반대의 결과로만 흘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오디션에서 심사위원은 말 그대로 심사하는 사람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라는 존재는 대중들의 인식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은 평가자이면서도 대중들의 가이드 역할을 하며 나아가서는 대중들의 감정이입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즉 심사위원의 독설은 대중들의 반감을 갖게 만들기도 하지만 공감 가는 독설은 대중들을 속 시원하게 한다. 이때 심사위원은 대리충족을 시켜주는 대변자 역할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역할이 늘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 놓이기 때문에, 여기서 심사위원은 사실상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흘러가는 방향(어쩌면 스토리)을 읽어야 한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간파해야 한다. 이것은 대중들의 생각에 휘둘린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 거기에 맞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으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비교점으로 생각해야할 인물이 '슈퍼스타K'에서 독설가였지만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심사위원 이승철이다. 그는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은미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든 걸까. 이승철은 우선 '슈퍼스타K'의 흐름 전체와 거기서 심사위원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즉 초반 경쟁자들의 수가 많을 때는 이를 걸러내기 위해 거침없는 독설을 내뿜었다. 지적도 발성문제에서부터 음정문제까지 구체적이었다. 때론 지나치다 싶은 독설 때문에 그걸 바라보는 대중들과의 대립적인 관계가 형성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10여 명으로 경쟁자들이 좁혀졌을 때 이승철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인 지적은 피했고(사실 이 단계에 올라온 경쟁자들에게 이런 지적은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그토록 까칠하던 그가 칭찬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무대에 선 경쟁자들에게 권위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변화 지점에서 대중들은 심지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대중들을 의식한 인기발언이 아니다. 이승철은 이 지점부터 심사위원의 역할은 심사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거기 무대 위에 선 경쟁자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보통 기획사에서 치러지는 오디션과 TV로 방영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른 점 중에 또 한 가지는 그 심사위원 역시 재평가된다는 점이다. 즉 이승철은 '슈퍼스타K'를 통해 가수로서의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웠고 대중들은 이를 수긍했다. 하지만 이은미의 경우는 어떤가. 사실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으로 서기 전까지 이은미는 우리들에게 '맨발의 디바'였다. 가창력 하면 떠오르는 인물. 오로지 노래 그 자체로 대중들을 쥐고 흔드는 카리스마. 그런 것이 이은미의 아우라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대한 탄생'을 거치면서 그녀는 어딘지 대중들과는 동떨어져 혼자 달려가는 독선적인 이미지를 덧씌우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이은미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이은미는 지금 그 악역이 되어가고 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치고는 가혹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