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우리 가요계, 사이버 가수가 너무 많다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우리 가요계, 사이버 가수가 너무 많다

D.H.Jung 2006. 4. 5. 14:13
728x90

얼굴 없는 가수와 얼굴만 있는 가수

1997년 12월 저녁. 논현동의 한 스튜디오. 스텝들은 모두 녹음실 안쪽에서 열창하고 있는 한 가수에 집중되어 있었다. 반쯤은 넋이 빠진 듯한 그들은 가수의 노래가 끝나자 마치 멈춰졌던 시간이 다시 흐른 것처럼 멋쩍어했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그 정도였으니 아마추어였던 내가 오죽했을까. 온몸에 감전을 당한 듯 소름이 돋은 나는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건 무조건 됩니다!” 이것이 내가 우연찮게 ‘사이버 가수 아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던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사이버 가수 아담은 탄생했다.

사이버 가수 아담의 멀티 플레이어 전략
사이버 가수 아담은 예상대로 잘 나갔다. 일본에 사이버 가수 1호 교코 다테가 있었지만 그것 역시 한일전 대결양상을 이루면서 오히려 아담에게 득이 되었다. 아담의 노래는 라디오를 타고 전국에 메아리쳤다. ‘세상엔 없는 사랑’은 가요톱텐에 올라갔고, 음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당시 아담의 캐릭터와 스토리 제작 및 홍보를 전담했던 나로서는, 홍보마케팅에 있어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방송 3사의 연예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드라마(베스트 극장 등), 뉴스에서는 연일 아담을 소개했다. CF가 들어왔고 라디오 인터뷰는 물론이며 잡지 인터뷰가 쇄도했다. 아담은 가수이자, 연기자이자, 게임 캐릭터이자, CF 및 캐릭터 비즈니스의 모델이었다. 아담은 만들어진 존재였기 때문에 멀티 플레이(One source multi use)에 강했다. 그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이론이 현실의 장벽에 부딪힌 것은 아담의 입을 몇 번 놀리기 위해서는 무려 몇 일이나 걸리는 CG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만큼의 비용도 들어갔다. 방송출연 제의가 봇물을 이뤘지만 아담은 점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아담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아담의 얼굴 없는 가수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잘 생긴 외모를 가진 얼굴만 있는 가수였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과 동작은 부자연스러웠다. 어설픈 아담의 동작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를 든든히 받쳐준 것은 얼굴 없는 가수의 노래였다. 호소력 짙은 가사에, 뛰어난 가창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녹음실에서 처음 가졌던 그 전율은 이제 라디오를 타고 전국의 청취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도대체 가수가 누구냐”는 추측이 난무했고, 한 유명한 음악평론가는 “신승훈에 버금가는 가창력”이라고 아담의 얼굴 없는 가수를 추켜세웠다. 이제야 밝힐 수 있지만 아담의 목소리를 대신했던 친구는, 박성철이라는 이름의 학생이었다.

아담의 성공이 박성철에게도 성공적이었을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후에 그는 가요계에 데뷔하겠다고 했지만 아담의 매니저(당시 아담은 전담 매니저도 있었다)는 단칼에 그의 의욕을 꺾었다. 네가 나오면 너도 죽고 아담도 죽는다는 것이었다. 딱히 둘러댈 것이 없어서였는지 그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얼굴 때문이라고 했다(사실 내가 보기에 그는 아주 괜찮은 미소년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박성철은 얼굴 없는 가수로 살아야 했다.

반면 얼굴만 있는 가수, 아담의 목적은 음악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 돈을 번 회사는 더 이상 투자하는 것을 포기했다. 그것은 경제법칙, 투자대비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아담의 프로젝트가 해체되면서 박성철과 만나 마지막으로 소주를 나누던 날, 그가 해준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아예 노래를 못하는 가수들도 많아요. 몇 번 코러스로 불러준 적이 있는데 나중에 녹음돼서 나온 걸 들어보니까, 그 가수 목소리는 없더라구요.” 그것이 현실이었다.

기획된 가수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에 음반 기획사들은 시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그것도 몇 백만 장씩 소비되는)을 보았다. 가창력이나, 좋은 노래를 가진 가수들이 중심이 되어 흘러가던 가요계에 기획사들의 바람이 일었다. 기획사들은 모든 것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시장을 분석하고 거기에 맞는 상품을 고르듯, 가수를 골라내고(어떨 때는 조합을 하기도 한다), 노래를 붙이고, 댄스를 붙여서 음반을 찍어냈다.

사이버 가수 아담이 나왔던 시점은 바로 음반 기획사들이 태동하던 그 시기로 가수로는 HOT가 활동하던 시기였다. 기획사들은 그만큼 리스크를 줄이고 판매유인을 더 많이 끌어냄으로써 승승장구했다. 이미 소비자들은 영상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가수의 노래도 중요했지만 거기에 곁들여진 댄스와 무엇보다도 잘 생긴 외모가 더 중요했다. 그러자 기획사들은 얼굴과 춤을 먼저 보았다. 노래는 점점 그 다음 문제가 되었다. 노래는 몇 달간의 합숙과 연습, 그것도 안되면 녹음 과정에서 코러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됐다.

가수로서의 어떤 포부라든가, 꿈이 있다기보다는 성공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감수한다는 이 얼굴만 있는 가수들 뒤에는 역시 얼굴 없는 가수들이 있었다. 그게 많아지자 얼굴 없는 가수도 기획사에서 끌어안고 하나의 전략처럼 사용되었다. 이른바 신비주의 전략이었다. 진짜 얼굴 없는 가수들은 이제 조용히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만을 묵묵히 해나가야 했다. 아티스트들은 더러운 세상 뒤로하고 청산으로 들었고(사실은 등 떠밀린 것 같지만), 경박한 얼굴과 몸짓들만 세상을 가득 메웠다. 요는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과연 돈이 되었을까
물론 기획사들은 돈을 챙겼을지 모른다. 또 그 한 때를 함께 풍미했던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국내에 잘 나간다는 연예기획사들을 차린 이들은 대부분이 가수 출신이라는 것이다. 음악성으로 당당히 ‘넘버1이 되었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연예경험을 살려 ‘넘버1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도 가수이니 가수들이 돈을 벌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가수로서 벌어들인 수익이 아니다. 그 수익은 연예기획사의 사장으로서 벌어들인 것이다. 가수들은? 끊임없이 시류에 맞게 재생산되었다. 아마도 그들 본인이 실감했을 것이다. 돈을 버는 것과 음악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생각하게된 일이지만 기획사에서 기획되어진 많은 가수들은, 사이버 가수와 다를 게 별로 없었다. 합성하지 않아도 성형을 통해 얼굴은 완벽해졌다. 노래는? 여기저기 시류에 맞게 다른 곡에서 샘플링된 상품으로 짜진 노래들을 죽어라 연습해 소화해내면 되는 것이었다. 춤은? 완벽하게 짜진 안무대로 움직이면 됐다. 춤추며 노래하기? 립싱크가 있으니까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노래 못하는 가수는 용서해도, 얼굴 못생긴 가수는 용서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양적인 팽창이 일어났다. 너도나도 가수 명함을 내밀었다. 기획사는 더 많은 재원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재료들이 많으니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고, 전보다 더 좋은 상품들을 시장에 내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포화된 시장은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었다. 많다보니 특별한 상품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졌고, 좋은 상품을 가려내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업친 데 덥친 격으로 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MP3 열풍은 음반 판매고에 치명타를 먹였다.

얼굴만 있는 가수들
음반판매는 되지 않았다. 가수는 음반이 팔리지 않으면 다른 노래를 부르던가, 아니면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면 된다. 그러나 기획사들은 다르다. 회사는 당연히 이윤추구가 제 1의 목표이다. 그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고, 적어도 본전을 챙겨야 했다. 가수들은 쇼프로가 아닌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장식했다. 토요일, 일요일 저녁만 되면 수많은 이름 모를 가수들이 시청자들을 웃기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장기자랑 하듯이 노래와 춤을 홍보한다. 가끔씩 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수인지, 개그맨인지, 탤런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지경이니 노래는 더더욱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얼굴만 있는 가수들이 TV를 채우는 것이 요즘의 일이다. 기획사들은 멀티 플레이어 전략을 제대로 썼다. 음반 판매가 어려운 가수들은 일찌감치 각종 프로그램과 드라마 속으로 투입되었다. 음반 기획사로 출발했던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이제 드라마나 영화 제작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이유는 그 자체로도 돈이 되지만, 자신들이 양산한 가수들을 한류의 흐름에 계속 태우기 위함이다. 그들은 드라마가 가진 한류의 힘을 톡톡히 느낄 수 있었다. 드라마에 삽입된 곡들은 한류를 타고 잘 팔려나갔다.

그 한류의 언저리에서 박성철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제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담에서 제로라니 그의 가수생활이 그다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이름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재야에 있던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최지우, 이병헌, 류시원이 출연한 드라마 <아름다운 날들>에서였다. 이 드라마는 일본에서 붐을 일으켰고, 이것이 박성철씨가 제로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얼굴 없는 가수가 얼굴을 드러낸 곳은 그가 노래했던 이 땅이 아닌 이국땅이라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국내에서는 얼굴 없는 가수였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최근 들어 립싱크니 표절이니, 퍼포먼스니 하는 단어들이 부쩍 많이 늘었다. 여기에 우리네 음악계의 거장이라는 전영혁, 신중현씨의 쓴 소리가 떨어졌다. 전영혁씨는 “가수는 노래하고, 댄서는 춤추고, DJ는 음반을 틀면 된다”고 했고, 신중현씨는 “무대에 노래하러 나온 거냐 뛰어다니러 나온거냐”고 했다. 이걸 성철 스님식으로 표현하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가수는 가수고 댄서는 댄서고 DJ는 DJ다.

얼굴 없는 가수와 얼굴만 있는 가수는 어찌 보면 지금의 가요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병적인 현상이다. 기획상품으로 만들어진 가수는 한 때 반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금세 잊혀진다. 기획이란 시류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들 빨리 모이고 빨리 은퇴하는 가보다. 그들은 사이버 가수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양산되는 이 사이버 가수들은 노래는 뒷전이면서도, 가수는 노래만 잘 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스런 이미지를 만들어놓았다.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가수는 더 이상 가수가 아닌 탤런트가 된다. 탤런트가 낸 음반이 잘 팔리라는 기대는 아예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기획상품이 아닌 신중현, 조용필, 서태지 등의 계보를 잇는 가요계의 진정한 아티스트들이 나오길 바란다. 그들의 열정이 음반을 사는 이들의 마음 한 켠을 온전히 설레임으로 채우길 바란다. 얼굴 없는 가수, 제로 아니 박성철씨를 비롯해 많은 재야에 묻혀있는 진정한 실력자들이 가요계에서 활동하는 날들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