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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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진>, 그는 왜 조선으로 간 것일까

D.H.Jung 2012. 6. 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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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진>, 특별한 퓨전극의 탄생

 

갑자기 조선시대로 떨어진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 진혁(송승헌)의 눈앞에는 끊임없이 긴급한 환자들이 등장한다. 그는 떡을 먹다 갑자기 목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하는 저잣거리 왈자패 두목 주팔이(김원종)의 목에 구멍을 내서 살려내고, 칼에 머리를 맞아 내상을 입은 홍영휘(진이한)와 뇌에 생긴 혈종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은 최고 실세 좌의정 김병희(김응수)를 뇌수술로 살려낸다. 또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춘홍(이소연)을 인공호흡으로 숨 쉬게 하고, 말에 머리를 다치는 사고로 죽어가는 여인을 구한다.

 

 

'닥터진'(사진출처:MBC)

아마도 <닥터진>이라는 이 특별한 드라마를 상징하는 장면은 조선시대로 간 진혁이 환자의 뇌수술을 하기 위해, 끌과 정 같은 살벌한 도구로 머리에 구멍을 내는 장면일 것이다. 그에게는 조선시대로 떨어질 때 갖고 있던 작은 가방과 그 안에 들어있는 몇몇 의료도구들(이를 테면 메스나 마취약 같은)이 있을 뿐, 수술에 필요한 현대적인 장비는 전혀 없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수술 장면은 잔혹극을 보는 것 같은 섬뜩함을 주기도 한다.

 

진혁이 환자들을 살려내는 것은 그래서 현대의 의술 때문만은 아니다. 의술이 장비를 전제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의술 그 자체보다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그 마음이 진혁으로 하여금 두 손에 끌과 정을 들게 만든 것이다. 진혁이 환자를 살려내는 것이 전적으로 현대의술에 의한 것이 아니듯, 진혁이라는 천재 외과의가 조선에 있으면서도 환자들이 여전히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 역시 의술 때문만은 아니다.

 

병과 몸에 대한 당대의 사고방식은 어쩌면 의술의 한계보다 더 무서운 장벽이 된다. 구한말 이제 막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는 시기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선의 몸에 대한 관념은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에 머물러 있다. '조선무원록' 같은 당대의 법의학 책이 보여주듯, 당시에는 시체에조차 칼을 대지 않는(그래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인을 찾는다) 시대가 아닌가. 하물며 산 사람의 머리에 구멍을 뚫고 수술을 한다는 것은 제 아무리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하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 수밖에 없다.

 

몸에 대한 조선의 사고방식과 현대의 사고방식, 즉 현대적인 외과의술과 당대 조선의 양생법 중심의 의술의 부딪침은 <닥터진>의 핵심적인 재미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 두 의술에 대한 부딪침은 동양의학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화타와 편작은 이 서로 다른 두 의술을 대표하는 의사들이다. <삼국지>에서 관우의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은 것으로 유명한 화타는 외과수술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반면 편작은 몸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손바닥 하나, 발바닥 하나에도 몸 전체의 기관이 연결되어 있다는 작금의 한의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닥터진>은 이 두 의술의 부딪침, 혹은 화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즉 진혁은 조선으로 떨어지기 전 현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외과의사였지만 그것은 기술적인 것일 뿐이었다. 조선을 겪으면서 그가 현대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한 환자들에 대한 후회를 하는 것은 의술이라는 것이 기술이 아니라 환자를 바라보는 자세라는 것을 말해준다. 몸을 기계적으로 바라보는 서양의 외과의술을 체득한 진혁은 이제 동양의 양생술이 보여주는 유기체로서의 몸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현대나 과거나 환자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의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어떤 이에게는 삶이 죽음보다 더 힘겹다. 또 돈이 없어 살릴 수 있는 삶조차 스스로 포기하려 한다. 이 조선의 상황은 어쩌면 에둘러 현대의 상황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생명과는 상관없이 미적인 것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펑펑 써댈 때, 누군가는 단 돈 몇 푼이 없어 죽음의 경각에 몰리는 삶을 살아간다. 의사들은 언젠가부터 환자를 살리는 본분보다 하나의 사업으로서의 병원을 운영한다. 의술은 있지만 인술은 없다. <닥터진>이 굳이 조선까지 날아간 이유는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