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결>이 한 수 배워야 할 <무도>의 가상극
지난 주 <무한도전>의 ‘IF 만약에’ 특집은 여러 모로 <우리 결혼했어요(이하 우결)>와의 비교점을 만들었다. 노홍철과 장윤주의 가상 결혼 설정은 마치 <우결>의 패러디를 보는 것 같았고,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우결>의 가상결혼을 풍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도무지 손발이 오그라들어 참을 수 없는 상황이나, 아니면 가상을 뚫고 들어오는 장윤주의 도발(?)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노홍철의 모습은 <우결>의 가상결혼에서 가끔 진심이라 주장되는 행위들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의구심을 던졌다.
<우결>은 태생적으로 그것이 진짜인가 아니면 가짜인가 하는 그 애매모호한 지점에 서서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 때 그 힘이 발휘되는 프로그램이다. 즉 진짜라고 말하면 스캔들이 될 것이고, 가짜라고 말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받는 그 아슬아슬한 지점에서야 비로소 정체성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번 <무한도전>에서 마치 패러디처럼 보여진 노홍철과 장윤주의 가상결혼이 <우결>의 그것보다 훨씬 더 리얼하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섣불리 그들이 실제로도 잘 어울린다며 진심으로 잘 되길 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수 있었다. 왜 그럴까. 스스로 가짜임을 주장하고 때로는 그 상황을 못견뎌하는 모습조차 드러내고 있는 노홍철과 장윤주의 어떤 점이 오히려 더 현실성을 주는 것일까.
이것은 아마도 ‘진짜 같은 가짜’와 ‘가짜 같은 진짜’가 주는 효과일 게다. 즉 <우결>은 프로그램의 특성상 가상결혼을 ‘진짜 상황’이라고 강변한다. 물론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뛰게 만드는 알콩달콩한 아이돌들의 사랑 상황극이 진짜 같은 판타지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가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터지는 실제 스캔들은 가상부부의 허상을 드러내기도 했다.
즉 <우결>은 진짜라고 강변할수록 더 가짜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가상극은 늘 그러했듯이 가짜로부터 시작한다. ‘이건 사실이 아니야’라고 부정하고 인정하는 순간 시청자들이 발견하는 것은 가짜 속에 숨겨진 진짜다. 즉 누가 봐도 노홍철과 장윤주는 가짜 부부지만 그들이 가짜 부부 행세를 하면서 하게 되는 스킨십과 거기에 대한 반응은 진짜라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스킨십은 <우결>에서도 똑같이 등장한다. 하지만 <우결>의 태도와 <무한도전>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반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리얼과 진정성을 추구하는 작금의 방송 환경 속에서 ‘진짜’냐 ‘가짜’냐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 반대 방향으로의 검증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생겨난다. 진짜라 주장하면 대중들은 그 속에 담긴 가짜를 찾아내려 하고, 거꾸로 가짜라 주장하면 진짜를 찾아내려 안간힘을 쓴다.
<우결>이 지금처럼 패턴화 혹은 양식화되지 않고 마치 가상 상황의 실험처럼 참신했던 시절에 대중들은 그 아리송한 가상부부 관계에 극도의 관심을 표명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하나의 패턴이 대중들에게 인지된 <우결>에서 그 상황을 진짜라고 강변하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게 여겨진다. 우리는 이미 무수한 가상부부들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후 각각의 삶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무도> 특집의 노홍철, 장윤주 가상부부의 관계 설정은 <우결>에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어차피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 이상, 굳이 진짜라고 강변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차라리 가짜라고 주장함으로써 그 속에서 발견되는 진짜를 기대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무도>가 지금껏 해왔던 그 많은 가상극들이 바로 이 바탕 위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봅슬레이나 프로레슬링 같은 도전이 하나의 가상일 것이라는 전제로 접근했다가 점점 장난이 아닌 진짜를 만나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모든 장면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를 첨예하게 검증하는 리얼 시대에 <무도>의 접근법은 그래서 진짜임을 강변하는 <우결> 같은 프로그램들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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