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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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청강이 보여준 '복면가왕'의 진가

D.H.Jung 2015. 6. 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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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면가왕>, 복면은 가수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백청강에 대한 편견은 꽤 깊다. MBC <위대한 탄생>의 우승자지만 노래 실력보다는 당시 그를 천거한 멘토 김태원의 아우라가 작용했다는 시선이 있었고, 무엇보다 연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절하도 백청강에 대한 편견을 만든 이유 중 하나다. 어찌 보면 이 실패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잘못된 멘토-멘티 시스템으로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참가자의 멘토가 동시에 심사를 한다는 건 공정하기가 쉽지 않다.

 

'복면가왕(사진출처:mbc)'

백청강이 과거 지인의 미니홈피에 한국비하 글을 작성했다는 루머는 그에 대한 편견이 어떤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주기도 했다. 거기에는 조선족을 바라보는 일부의 비뚤어진 시선이 담겨져 있었다. 심지어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압도적인 문자 투표를 받는 것이 조선족들의 몰표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가창력에 있어서도 백청강은 <위대한 탄생>의 심사위원들에게 늘 비음과 모창을 지적받았다. 비음이 과하고 자신의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태원 멘토만큼은 달랐다. 그는 당시 영화 <왕의 남자>의 주제곡인 인연을 부르는 백청강에게 이제 비음을 살려도 된다너무 억누르는 모습은 듣는 이에게도 불편함을 준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그에 대한 편견들 때문일까. 직장암으로 2년여 간의 투병생활을 거친 그가 <복면가왕>을 통해 무대에 선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어 보인다. 복면 하나로 이 모든 편견들을 가려버리고 무대에 서자 그의 비음은 마치 카스트라토 같은 섬세한 여성성까지를 표현해내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래서 아무도 남자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그가 복면을 벗었을 때 우리 모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별의 편견까지 깨버리는 무대라니!

 

백청강의 무대는 여러모로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독특한 지점들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얼굴을 가리니 사라져버리는 편견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 그 주인공이 누구일까를 상상하며 자유롭게 노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패널로 앉아 있던 이윤석은 백청강의 무대에 대해 이해인 수녀님을 운운할 정도로 여성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웃음을 주지만, 그런 자기 마음대로 상상하며 듣는 일이 그리 잘못된 일도 아닐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만큼 듣는 사람에게도 필요한 것이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다. 얼굴이 주는 편견, 이름이 주는 편견, 성별이 주는 편견, 출신이 주는 편견 그리고 그 가수의 정체성이 주는 편견... 노래 한 곡을 들어도 우리는 너무 많은 편견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얼굴을 가려주는 건 가수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듣는 청자들이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는 측면에서도 복면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복면가왕>은 편견과 선입견에서 가수들을 벗어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지만 동시에 노래를 듣는 관객과 시청자들에게도 보다 자유와 상상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오랜만에 여장으로 자신을 가린 채 무대에 올라 자신의 장기인 비음을 마음껏 써가며 카스트라토처럼 노래 부른 백청강의 무대는 그 진가를 잘 보여주었다. 너무 많은 경연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노래 듣는 것이 식상해졌다면 그건 어쩌면 그 오디션들이 만들어낸 많은 선입견과 편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그걸 가릴 복면이 필요해진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