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탱이형 없는 '1박2일', 그 허전함의 정체는

<1박2일>의 구탱이를 자처하던 김주혁의 존재감

 

“토사구탱!” <1박2일>에서 토사구팽을 잘못 알고 그렇게 외치는 순간 김주혁은 ‘구탱이형’이 되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김주혁의 <1박2일> 적응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느 시골마을에서 즉석에 벌어진 인기투표에서 꼴찌를 당한 그 굴욕 앞에 김주혁은 진심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때는 연기자로서의 자존심이 예능이라는 판에서 망가지는 자신을 아직까지는 용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어느 음식점에서 얼굴에 영구 분장을 하고 영구 흉내를 자처하는 김주혁은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그 영구 흉내도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생들은 그런 김주혁의 노력에 활짝 웃으며 리액션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과한 설정을 통한 웃음도 김주혁의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차츰 <1박2일>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맏형이라는 그 위치가 바로 자신이 서야할 곳이었다.

 

<1박2일>은 출연자들의 마치 형제 같은 모습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웃음은 물론이고 때로는 짠한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여행이 소재일 수밖에 없고 그 여행 위에서 복불복 게임을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자극제지만 그 바탕에 깔린 가족적인 형제애가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의 색깔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시청자들도 저들과 같이 여행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해주는 그들만의 끈끈함이 있어야 여행이든 게임이든 <1박2일> 특유의 훈훈함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김주혁이 맡은 맏형이라는 역할은 그래서 튀지는 않지만 중요하다. 항상 맏형이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동생들은 찧고 까불고 하는 것이 편안해진다. 본인이 드러내진 않아도 동생들이 놀 자리를 든든하게 마련해주는 일 그게 맏형이 가진 존재감이다. 그래서 적절히 위치를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적당히 자신을 망가뜨려 동생들이 놀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김주혁은 복불복 게임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아마도 설정이 아닌 진짜였을 몸 개그를 보여주기도 했고, ‘토사구탱’ 처럼 퀴즈 대결에서도 한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또한 슬기작가와 러브라인을 형성함으로써 시커먼 남자들의 예능 <1박2일>에서는 좀체 없었던 달달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응답하라1988>에서 김주혁은 훗날의 덕선 남편으로 깜짝 등장해 연기를 선보였다. 연기가 본업인 그에게 연기에 대한 갈증은 그 누구보다 깊었으리라. 이제 <1박2일>을 하차하지만 대중들은 이로써 더 많은 드라마, 영화에서 그를 보기를 원할 것이다. <1박2일>을 통해 대중들이 그에게 갖게 된 친근한 이미지는 연기에 있어서도 자양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안한 이미지는 물론이고 그 정반대의 변신도 그만한 반전효과를 줄 테니.

 

김주혁은 <1박2일>을 떠나지만 ‘구탱이형’의 그 존재감은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 그 빈 자리에 남아있을 것 같다. 늘 그가 선 자리는 구탱이였지만 <1박2일>의 훈훈한 공기를 만들어주던 장본인이 바로 그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