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객주', 보부상과 육의전의 대결이 의미하는 것

728x90

물화길 막는 육의전, 그 길을 뚫는 보부상

 

도대체 영세한 상인들은 뭘 먹고 살란 말인가. 시대가 흘렀어도 달라진 건 별로 없는 것만 같다. KBS 수목드라마 <객주>에서 나오는 보부상들의 희망 천봉삼(장혁)의 이 토로는 어찌 보면 지금도 여전히 영세 상인들에게서 나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장사의 신 객주(사진출처:KBS)'

보부상의 대표격인 천봉삼이 싸우고 있는 건 육의전의 대행수인 신석주(이덕화). 신석주는 물화 독점에 의한 매점매석을 통해 거대한 자본을 모은다. 그는 풍등령 고개에 자신의 친척을 화적으로 세워 장삿길을 막고는 대신 물길을 독점해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돈을 끌어 모은다. 그러자 천봉삼은 그 풍등령 길을 뚫어 20만 보부상들의 장삿길을 열어놓는다.

 

천봉삼에게 장삿길은 마치 우리 몸의 혈관과 같은 것이다. 그 길이 막히면 한쪽으로만 피가 몰리고 다른 한쪽은 피가 미치지 못한다. 물화길이 뻥뻥 뚫려 있어야 보부상들이 구석구석 다니며 지역 곳곳을 살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신석주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천봉삼이 풍등령 장삿길을 뚫자 신석주는 길소개(유오성)를 시켜 이제 물화길을 끊어버린다. 원산포의 지주들에게 보부상에게는 물화를 내주지 말라고 한 것.

 

하지만 흐르는 강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천봉삼은 신석주의 독점 체제로 인해 원산포 지주에게 헐값에 명주실을 울며 겨자 먹기로 팔아온 상촌마을과 거래를 틈으로써 보부상들의 물화길까지 열어 놓는다. 이것은 <객주>가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이다. 신석주는 막으려하고 천봉삼은 뚫으려 한다. 신석주는 육의전과 보부청 뒷거래를 이용해 돈을 모으려 하지만 천봉삼은 이 뒷거래를 끊기 위해 도접장 선거에 나가 20만 보부상들의 지지로 당선된다. 이번에는 신석주가 당선된 천봉삼을 우피밀매와 소밀도살 누명으로 죽이려하지만 결국 살아난 천봉삼은 이제 말뚝이(말린 명태) 덕장을 독자적으로 운영해 신석주의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

 

독점으로 몇몇 일부만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나머지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길. 그 독점을 뚫어서 모두가 아주 풍족하진 않아도 조금씩이나마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여는 길. <객주>가 육의전 신석주와 보부상 천봉삼이라는 두 인물의 대결을 통해 그리고 있는 이야기다. 아마도 신석주의 독점 체계 안에서는 빈익빈부익부가 당연한 결과로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나라 경제의 파탄을 불러오는 일이다.

 

이 이야기는 <객주>라는 사극이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이유다. 19세기말에 있었던 보부상들의 활약을 다룬 드라마지만 이 독점자본과 영세 상인들의 문제는 여전히 지금 우리네 현실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적은 돈으로 장사를 하거나 가게나마 차려 한 가족 생계를 만들려는 소시민들 앞에 대기업들의 자본 앞에 장삿길을 잃고 물화길을 잃는 일이 어디 19세기말에나 있었던 일인가.

 

한 세기가 훌쩍 지나간 지금은 어쩌면 더 체계적이고 공고해진 시스템으로 독점자본들의 매점매석이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신석주에 대적하는 천봉삼의 고군분투에 마음이 닿는 건 우리네 현실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한 육의전들이 세상의 장사길을 독점하는 사이 가난한 이 땅의 보부상들은 가슴을 치며 <객주>의 천봉삼 같은 인물을 기다리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