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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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사' 표절 논란, 철저히 파헤쳐야 하는 까닭

D.H.Jung 2016. 4. 2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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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 작가 아이디어 도둑질, 콘텐츠 산업 최악의 걸림돌

 

tvN <피리 부는 사나이>가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그 진위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문제를 제기한 건 웹툰 작가 고동동이다. 그는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2년 전 자신이 공모전에 출품했다 떨어진 <피리부는 남자>와 유사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두 작품이 동화 속 <피리부는 남자>를 희대의 테러범으로 해석했고, 테러를 하는 이유가 동화처럼 부패한 권력에서 맞서는 것이며, 가스 살포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하고 진실을 얻어낸다는 등을 들어 두 작품의 유사성을 거론했다.

 


'피리부는 사나이(사진출처:tvN)'

물론 <피리부는 사나이>의 류용재 작가 역시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통해 두 작품이 유사하다는 고동동 작가의 발언에 반기를 제기했다. 류용재 작가의 이야기는 피리부는 사나이라는 동화의 모티브는 이미 영화 <손님>이나 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피리 부는 사나이>,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피리 부는 남자(고동동 작가와는 다른 작품)> 등에 이미 널리 활용되는 보편적인 소재라는 것이다. 또한 이 드라마가 가진 장치 중 가장 핵심적이라고할 수 있는 테러를 통한 사회적 복수이야기 역시 <더 테러 라이브><모범 시민> 등 많은 작품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티브라는 것.

 

사실 두 작품이 유사한 지 아닌지, 아니면 류용재 작가의 드라마 <피리부는 사나이>가 고동동 작가의 <피리부는 남자>를 표절한 것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방에 의혹이 깊어진 까닭은 하필이면 그 공모전에서 심사를 했던 이가 바로 류용재 작가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동동 작가는 당시 류용재 작가가 “1차 심사면접에서 제 작품을 칭찬하며 얼굴 맞대고 잘 썼다고 힘을 주셨던 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공모전 심사를 했다고 해서 당시의 작품을 표절했다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문제가 중대하게 여겨지는 것은 이런 일들이 알게 모르게 공모전이나 작가들 사이에서 비일비재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선배 작가들의 신진 작가 아이디어 도용이나 갈취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했던 사람들이라면 거의 누구나 경험했을 일들이다. 결국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나 작품들은 신진 작가들의 머리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지켜낼 만한 힘이 없다. 결국 공모전에 의지하지만 그것 역시 공평한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박탈감을 느낄 때가 더 많다. 필자가 아는 시나리오 작가들 중에도 신인 시절 엄청난 기성 작가들의 갑질에 휘둘려 중도에 펜을 꺾는 이들도 많았다.

 

이른바 입봉을 시켜준다는 빌미로 아이디어만 가져가는 경우도 많고, 공모전에서 괜찮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낙선시킨 후 그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사실 국내의 드라마와 영화 시장에서 대중들이 왜 참신한 작품들이 잘 나오지 않는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진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들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표절 논란은 그래서 그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런 신진 작가들의 숨겨졌던 문제들을 표출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작품이 표절이냐 아니냐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다시금 신진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빼먹는 관행처럼 굳어져 버린 행태들은 이번 기회가 그 깊은 뿌리가 캐내지기를 기대한다. 콘텐츠 산업의 최대 걸림돌은 바로 이런 신진작가들의 길을 원천적으로 차단시켜버리는 아이디어 도용문제 같은 권력구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