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상사’의 도전, 시청자들은 기꺼이 미끼를 물었다
예능이 이래도 되나? <무한도전>의 ‘무한상사’가 아예 작정하고 웃음기 쪽 뺀 스릴러로 돌아왔다. 이미 예고됐던 대로다.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쓰고 장항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출연자들도 예사롭지 않다. 김혜수, 이제훈은 물론이고 김희원, 전석호, 손종학, 전미선 같은 자기 색깔이 확실한 배우들이 참여했으며 심지어 <곡성>으로 국내에도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쿠미무라 준이 함께 했다. 여기에 <무한도전>의 ‘5분대기조’가 되어가고 있는 지드래곤까지. 사실 기획만으로도 ‘무한상사’는 끝난 게임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그래서였을까. ‘무한상사’는 기존의 즉석 상황극을 통한 콩트 코미디적인 요소들을 완전히 들어내고 긴장감 100%의 스릴러를 선보였다. 어두침침한 회사 사무실에서 홀로 무언가를 보고 있던 유재석이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도망치는 몇 분 동안의 시퀀스는 <무한도전>이라면 조금 풀어놓고 웃을 준비를 하고 있던 시청자들을 잔뜩 긴장시켜 한 편의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이 첫 장면을 위해 유재석이 며칠을 뛰고 또 뛰며 재촬영을 했던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어떤 면에서 ‘무한상사’는 <무한도전> 시청자들에게는 이미 갖고 있는 잔상과 이미지가 존재한다. 물론 ‘레미제라블’을 직장 버전으로 패러디한 뮤지컬 형식도 있었고, 액션을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시청자들에게 ‘무한상사’는 코미디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코미디에서 진짜 스릴러로 넘어가는 그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앞부분에서 확실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게 필수적이다. 유재석의 추격전은 그런 심리적 장벽을 뛰어넘기에 충분했다.
그 극점은 가까스로 회사를 빠져나온 유재석이 허무하게도 달려드는 차량에 치이는 장면이다. <무한도전>, 그것도 ‘무한상사’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유재석의 이런 충격적인 사고 장면은 이야기를 되돌려 그가 왜 그런 일을 당하게 됐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어떤 일들이 뒤에서 진행되고 있고 그래서 오르골을 받은 직장 동료들이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맞는 과정이 이어지고 마치 <곡성>의 한 대목을 끌어온 듯 쿠니무라 준이 ‘무한상사’에서 사고를 겪은 이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시청자에게 확실한 미끼를 던졌다.
프로 연기자들의 연기야 명불허전이지만 그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연기는 또 하나의 도전이다. 연기가 어색하다는 걸 스스로 밝힌 박명수나 광희조차 이 작품에서는 웃음기 뺀 진지함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는 건 역시 연기 경험이 있는 정준하와 하하다. 특히 정준하는 특유의 바보스럽고 어눌한 모습으로 어딘지 짠하면서도 웃음을 주는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이 ‘무한상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그걸 추적해 나가는 것으로 사실상 극의 중심에 서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무한상사’에서 의외의 발견은 유재석의 연기다. 그저 웃음 주는 콩트 코미디만 능한 줄 알았지 이처럼 정극에서도 의외의 단단한 연기를 보여줄지는 몰랐다. 앞부분의 긴장감을 확실히 만들어놓은 장본인이고, ‘무한상사’ 특유의 상황극적인 웃음 속에서 한 순간에 팀원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유부장 역할로서 그는 괜찮은 몰입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본격 스릴러 영화나 드라마만큼의 짜임새나 기상천외한 반전의 이야기를 ‘무한상사’가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는 건 너무 과한 일이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이처럼 웃음기 쪽 뺀 스릴러에 도전하고, 거기에 실제 현업에 있는 작가, 감독, 배우들이 기꺼이 호응해줬다는 사실은 충분히 의미 있고 박수 받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무한도전>은 예능에 또 하나의 영역을 확장해냈다. 그 도전만으로도 시청자들은 기꺼이 ‘무한상사’가 던지는 미끼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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