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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구르미', 박보검도 놀랍지만 김유정은 더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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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 김유정, 남장여자 캐릭터의 진수

 

박보검 매직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KBS <구르미 그린 달빛>의 시청률이 19.3%(닐슨 코리아)로 치솟았다. 8.3%로 다소 저조하게 시작했던 시청률은 16%로 뛰어오른 후 이제 20%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경쟁작으로 등장했던 SBS <달의 연인>7.4%로 시작해 5.7%까지 떨어진 것과는 상반된 흐름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 중심에 박보검이 있다. 사실 <구르미 그린 달빛><달의 연인>은 장르적으로도 또 스타일 상으로도 유사한 점이 많은 작품이다. 사극이지만 청춘 멜로를 바탕에 깔고 있고 현대극에 가까운 시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유사한 성격의 두 작품이 이렇게 극적으로 희비쌍곡선을 그리게 된 건 아무래도 연기자들의 몫이 크다.

 

박보검은 아직 사극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어리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의외로 이영이라는 왕세자의 다양한 면면들을 잘도 끄집어내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릴 때면 한없이 아이처럼 슬퍼하다가, 어딘지 무기력한 아버지인 왕(김승수) 앞에서는 반항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아버지를 이해하고 도우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권력의 실세로 조정을 농단하는 김헌(천호진)과는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홍라온(김유정)에게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끌림을 천연덕스럽게도 연기한다.

 

혹자는 <구르미 그린 달빛>이 정통사극이 아니고 현대적인 감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사극이 주는 진중함을 가져가면서도 그것을 살짝 무너뜨리며 현대적인 유머와 시각을 집어넣는다는 건 어쩌면 온전한 정통사극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두고 보면 박보검의 진지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그 균형감각은 연기자로서 탁월하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박보검만큼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다름 아닌 상대역인 홍라온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유정이다. 아직 만 16세로 우리에게는 아역으로 더 많이 기억됐던 그녀가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지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그 아역의 껍질을 깨고 어엿한 여인으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아역 시절부터 이게 과연 아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연기를 잘 해냈던 김유정이다. 그녀가 해온 연기의 필모그라피를 보면 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많은 연기공력을 쌓아왔는가가 한 눈에 드러난다. 현대극들은 차치하고라도 사극만, <일지매>, <바람의 화원>, <탐나는도다>, <동이>, <계백>, <해를 품은 달>, <비밀의 문>, <구미호 여우누이뎐>까지 무려 8편에 달한다. 이미 아역 시절부터 사극이 제 옷처럼 잘 맞을 정도로 연기 경험을 해온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도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은 각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남장여자 콘셉트의 사극은 여성 연기자들에게는 연기 변신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인 경우가 많다. <성균관스캔들>의 박민영이 그랬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이 그랬다. 기존의 이미지를 남장여자 캐릭터로 가리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가와 멜로 연기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래서 이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의 김유정에게도 똑같은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아이 같던 이미지는 내시 역할을 하며 슬쩍 친구처럼 다가왔고 그러면서 이영의 마음을 조금씩 흔들며 시청자들에게도 그 매력을 드러낸다. 그녀가 연희를 위해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해 춤을 추는 장면은 김유정이 어엿한 여인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한없이 귀엽다가도 어느 순간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드는 그녀가 아닌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데는 분명 박보검과 김유정이라는 두 배우의 집중력있는 연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진중함과 가벼움을 넘나드는 박보검도 놀랍지만, 아이 같은 귀여움과 여인의 설렘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김유정은 더 대단하다. 구름 사이로 교교히 비추는 달빛처럼, 이들이 매력은 어느덧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 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