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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질투의 화신' 공효진, 내 편에 대한 강력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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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내 편인 사람, 공표진표 로코의 핵심

 

사랑보다 더 강력한 게 내 편에 대한 판타지인가. 로맨틱 코미디가 그저 사랑만을 다루던 시대에서 이제 일과 사랑을 동시에 담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다. 이렇게 되면서 생겨난 새로운 양상은 현실에 치여 살아가는 주인공이 그 힘든 현실을 잊게 해주고 또 영원히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는 사실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서숙향 작가는 일찍이 <파스타> 같은 작품을 통해 살벌한 일터에서 피어나는 로맨틱한 사랑의 이야기를 달달하면서도 짠 내 나게 그린 바 있다. 거기서도 주목되는 건 그 힘든 일터에서 남모르게 그녀를 챙겨주고 그녀의 편이 되어주는 셰프라는 인물이 제공한 강력한 판타지다. 그저 사적인 남녀의 만남과 사랑의 과정이 아니라, 이제는 일과 얽혀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만큼 커진 현대인들의 욕망이다.

 

SBS <질투의 화신>은 그 배경을 방송국으로 옮겼다. 그리고 여주인공인 표나리(공효진)는 이 방송국의 구박덩이로 살아간다. 나름 프로이고 세세하게 준비해 내보내는 그녀의 일 기상예보는 아무도 주목해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것이 뉴스인지 아니면 쇼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어떤 일로 치부된다. 그런 그녀의 기상예보를 매일 매일 보는 남자가 등장한다. 바로 어패럴업을 하고 있는 재벌3세 고정원(고경표)이 그 사람이다.

 

모두가 주목하지 않을 때 그녀를 주목해 바라봐주고, 그녀가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의 계략에 의해 해고통보를 받을 때도 그걸 알아봐주는 인물. 아무도 챙기지 않는 그녀에게 옷을 챙겨다주고 후배와 누가 방송에 나갈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일 때 은근히 그녀를 도와주는 남자. 방송 후 쓰러져버린 그녀를 안고 병원에 바래다주고 엉망진창이 됐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도 잘 했다며 다독여주는 이가 바로 고정원이다.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는 표나리에게 완벽한 자기 편이 되어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고정원보다 더 가까이서 그녀의 진짜 편이 되어주고 있는 인물은 사실 이화신(조정석)이다. 그는 툴툴대는 성격 때문에 그녀에게 버럭 대기 일쑤지만 그러면서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녀의 기상예보 방송을 볼 정도로 그녀의 편에 서 있다. 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방송을 강행한 그녀에게 응급차를 보내려고 하지만 그 마음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고정원이 그녀를 향해 직진해온다면, 이화신은 쭈뼛쭈뼛 아닌 듯 다가와 버럭대며 슬쩍 마음을 꺼내놓는 츤데레다.

 

<질투의 화신>에 첫 눈에 반하고 확 불타오르는 그런 사랑은 없다. 또 재벌3세가 가진 현실적인 능력에 휘둘리는 신데렐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이 로맨틱 코미디에는 그녀가 하는 일을 지지해주고 편들어주며 외적인 조건, 상황과 상관없이 그녀 자신을 바라봐주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가 존재한다.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봐주고 응원해주는 고정원이 그렇고, 그 고정원의 배려에 마음이 흔들리는 표나리를 보며 질투하면서 조금씩 그녀의 편에 서게 되는 이화신이 그렇다.

 

<질투의 화신>이 코미디보다도 더 웃기고 때론 그 어떤 비극보다도 슬프면서도 그저 단순한 사랑 이야기 그 이상의 공감대를 가져가는 건 바로 이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거기에는 삶과 일의 문제가 끼어들고 그저 확 타오르는 사랑 그 이상의 현실적 공감과 위안이 들어간다. 시종일관 웃다가 조금씩 그 인물들의 마음에 빠져드는 건 어쩌면 현대인들이 가장 갈급해하는 그 욕망, ‘내 편에 대한 욕망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