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세젤예’,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불편하게 하나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임우일이 카페에 들어와 “시원한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라고 하자 주인인 유민상이 “시럽 넣어드릴까요?”하고 되묻는다. 카페에 가면 통상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지만 시골 사람으로 무시받는 것에 특히 예민한 임우일이 한 마디 쏘아붙인다. “왜 시골 사람들은 쓴 커피 못 마실 것 같아서요?”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KBS <개그콘서트>에서 지난주부터 새로 시작한 ‘세젤예’라는 코너의 한 장면. ‘세젤예’는 인터넷에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를 지칭하는 신조어지만, 이 <개콘>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들’을 뜻한다. 카페를 찾은 이 예민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특히 예민한 구석을 갖고 툭하면 ‘불편함’을 토로하며 주인인 유민상을 복장 터지게 만든다.
예쁜 개그우먼 김승혜는 늘 자신에게 들이대는 남자들이 불편하고, 지금껏 모태솔로로 살아온 이수지는 연애 이야기만 하면 발끈한다. 얼굴이 완전 노안인 송준근은 자신이 사실은 고등학생이라며 나이 이야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혼자 오셨냐”고 유민상이 묻자 김승혜는 마치 작업을 거는 사람에게 쏘아붙이듯 “혼잔데요 왜?” “그쪽 제 스타일 아니거든요!”하며 오버하고, 답답한 유민상이 “누구 연애 못해서 환장한 사람 있나”하고 혼잣말을 하자 옆에서 이수지가 그걸 듣고는 “지금 제 얘기하시는 거 맞죠? 저 모태솔로라고 놀리는 거잖아요!”라고 반응한다.
유민상이 “저도 서른여덟 살인데 모태솔로라구요. 같은 처지라구요.”라고 답답함을 토로하자 이수지는 한 술 더 떠 “같은 처지? 전 서른 세 살이에요. 뭐가 같은 처지예요. 어 너도 5년 동안 쭉 남자 없을 거다?” 하고 배배 꼬인 심사를 드러낸다. 한편 누가 봐도 나이 들어 보이는 송준근에게 “시원한 맥주도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저 고등학생이에요!”하고 발끈한다. 송준근은 지난 회에서는 외국인처럼 생긴 외모로 “저 외국인 아니에요!”하고 계속 외쳐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사실 어찌 보면 말장난 개그처럼 보이는 ‘세젤예’는 그러나 작은 일에도 민감해하고 발끈하는 지금의 세태를 담아내고 있다. 아마도 개그를 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민감한 세태’가 특히 공감가는 대목일 것이다. 그저 웃기려고 한 말이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하게 해석되면서 의외로 큰 ‘불편함’으로 돌아오는 걸 여러 차례 느꼈을 테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입장은 저 유민상처럼 고구마 백 개를 입에 넣은 듯 답답했을 게다.
그런데 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이토록 예민해진 걸까. 그저 웃고 넘어가면 될 일들을 웃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자신을 공격하는 걸로 알아들으며 화를 내는 건 아무래도 그만큼 여유가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담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프로 불편러’들의 세상은 작은 일에도 예민해져버릴 정도로 각박해진 우리네 현실을 드러낸다.
‘세젤예’는 저 마다의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구석들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웃음이 터진다. 누군가에게는 ‘우리 가게’라는 표현이 왜 당신과 제가 ‘우리’냐는 불편함으로 돌아오고, 또 누군가에게는 ‘남의 가게’라는 표현이 “왜 저쪽하고는 우리고 나는 남의 가게에요”라는 대거리로 돌아온다. 한쪽의 이야기는 다른 쪽의 불편함을 유발하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래서 ‘세젤예’의 웃음은 쉴 틈 없이 터져 나온다.
‘세젤예’는 실로 오랜만에 <개그콘서트>에서 보는 현실 풍자가 가미된 웃음이면서 동시에 다른 코너들과 비교해 그 밀도도 높은 웃음을 선사한다. 한참 웃고 나면 그 밑에 깔린 세태에 대한 풍자가 묘한 페이소스까지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웃음. 이런 참신한 코너들이 좀 더 많아져야 최근 들어 위기라고까지 불리는 <개그콘서트>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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