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스페셜> ‘앎’, 죽음이 삶에 건네는 이야기
망자는 오히려 남은 자들의 등을 두드린다. 그래서일까. 남은 자들도 망자가 가는 그 길에 하는 이야기들은 “걱정하지 말라”, “사랑한다”, “다시 만나자”, “영원히 잊지 않을께” “잘못했어” 같은 말들로 채워진다. 물론 그 가는 길이 쉬울 리 없고 보내주는 마음 역시 선선할 수 없다. 화장되어 나온 고인의 마지막 한 자락을 끝까지 껴안으며 “아직도 이렇게 따뜻한데...”라고 믿기지 않는 마음을 털어 놓는다.
'KBS스페셜(사진출처:KBS)'
도대체 <KBS스페셜> ‘앎’이 굳이 죽음을 물어본 건 무슨 의도였을까. 이 특집 다큐멘터리는 PD가 누나의 말기 암 소식을 접한 뒤 절망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시작됐다. PD는 우리나라 최초의 호스피스 병동인 갈바리 의원을 찾아 그 곳의 수녀님들에게 죽음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늘 죽음 옆에서 임종자를 돌보는 그들이라면 어떤 해답을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갈바리 의원에는 마지막 임종을 맞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곧 다가올 마지막을 알면서도 밝게 웃었고 자신을 걱정하기보다는 남은 가족들을 더 걱정했다. 보내는 이들은 그 망자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가를 새삼 확인했다. 그들은 유일하게 자신을 걱정해준 사람이었고, 이 짧은 여행을 함께 해온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태어나게 해준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발을 재게도 놀려 일하고 또 일을 해 우리를 먹고 살게 해준 분이었다.
“육남매를 낳아 농사지으며 두부 만들고 콩나물 키워 팔고 오징어, 명태, 배 따서 품삯으로 받아온 곡물과 어물로 저희 배를 채워주시느라...” 망자 앞에서 자식은 말문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것인가. 자식들에게 떠난 부모는 천사였다. 고생만 하다 가신 천사. 그래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밖에는 해줄 수 없었다.
갈바리 의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임종자를 편안하게 인도해주신 에디냐 수녀는 죽음을 묻는 PD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부정한다고 해서 죽음이 안오는 거 아니거든요. 물질이나 명예나 이런 걸 좇기보다는 본인이 살고 싶은,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것을 좀 더 깊이 생각한다면 좀 더 보람 있는 삶을 살고 나중에 돌아가실 때 후회가 적은 삶이 되지 않을까...”
또 스텔라 수녀는 말했다. “삶은 개떡같이 살다가 잘 죽을 수는 없거든요. 왜냐하면 삶하고 죽음은 같이 붙어 있어서 그래서 삶을 잘 살아야 죽음도 잘 사는 것 같아요.” 늘 옆에서 사멸해가는 생명의 불씨를 봐온 박희원 갈바리 의원 진료원장은 죽음이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죽음 앞에 한번 서 보면 내 삶이 어떻구나가 보이잖아요. 그래서 죽음에 비춰봤을 때 내 인생에 이게 중요하겠구나, 중요하지 않겠구나.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좋겠구나, 안 하는 게 좋겠구나. 이건 나중에 후회 하겠구나, 이런 것들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살면서 종종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춰보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로사 수녀는 죽음 앞에 겸허해지는 삶을 이야기했다. “결국 우리가 아무것도 지니고 갈 수 없다는 진실을 우리는 외면하고 많이 살았던 것 같고 하나하나 버리는 습관, 자세로 살아갈 때 즐거운 마음,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누리면서 우리의 인생도 이제는 내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했구나 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자세로...”
정말 마지막을 보내는 분들은 의외로 담담하고 평안해 보였다. 그들은 그 끝에서 우리네 삶에 진정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끝이 있어 삶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긍정하고 있었다. 결국 절망 속에서 PD는 죽음에 대해 물었지만 그 답은 ‘삶의 길’로 돌아왔다.
<KBS 스페셜> ‘앎’은 왜 죽음의 의미를 물었고 그것을 ‘알고자’ 했을까. 특히 이 다큐멘터리가 지금의 대중들의 마음을 파고든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것은 죽음을 알아야 진정한 삶을 알 수 있다는 취지에서였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힘겨움과 답답함과 또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누군가에 의해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받는 이 많은 일들이 결국 이 질문 자체를 던져보지 못한 삶의 부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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