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김과장' 남궁민의 조소, 왜 그리도 통쾌한가 했더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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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 남궁민의 조소, 왜 그리도 통쾌한가 했더니

D.H.Jung 2017. 2. 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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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 입소문이 갈수록 커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나? 김과장!”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에서 김성룡(남궁민)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사실 과장이라는 직급이 회사 내에서 그리 높은 건 아닐 게다. 이 드라마 속 TQ그룹에서는 회장에 사장, 상무, 이사들은 물론이고 회장 아들까지 그 갑질이 일상이니 말이다. 그런데 김과장은 뭐가 그리 폼이 나는지 당당하게 자신을 그렇게 내세우곤 한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김과장이 일하는 경리부서는 TQ그룹에서도 을 중의 을인 부서다. 연말정산 시기가 되면 별의 별 문의가 다 이 부서로 들어와 전화기에 불이 난다. 게다가 TQ그룹 박현도 회장(박영규) 아들인 박명석(동하) 본부장은 사적으로 쓴 비용까지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고 경리부에서 행패를 부리기 일쑤다. 심지어 김과장이 들어오게 된 경리과장 자리는 억울하게 모든 문제를 떠안은 채 자살한 이과장의 자리다. 

그래서 경리부서로 온 김과장에게 경리부장인 추남호(김원해)가 제일 먼저 알려주는 건 일이 아니라 회사 조직도다. 누구에게는 경비 처리하는데 있어서 토를 달지 말아야 하고 누구에게는 적당히 쪼아도 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결국 이 회사는 정상적으로 경영되는 회사가 아니다. 제 멋대로 경비가 처리되고 있고 그것은 직급이나 회장 아들 같은 관계의 권력이 좌우한다. 그런 부조리와 비리를 못 참겠다면? 경리부장은 “힘들면 관둬야지 뭐”라는 한 마디로 이 상황을 정리해준다. 

부조리하게 운영되는 회사. 갑질이 횡행하는 곳. 하지만 거기에 반기를 들면 돌아오는 건 반성문을 쓰거나 대기발령이 나거나 심지어 회사에서 잘리는 일이다. 모두 이 시스템 속에서 힘들어도 참아가며 버텨낸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자료가 잘못 넘어왔어도 그걸 창의적으로(?) 메워 넣지 못하면 회사의 갑들에게 한 바탕 지청구를 듣는다. 

물론 그 속에도 부조리에 나름 저항하는 윤하경(남상미) 같은 인물이 있지만 그녀 역시 대놓고 뭐라 하지는 못한다. 괜스레 전화통화로 외부업체에게 화를 내는 척하는 정도가 그녀의 저항이다. 그래서 이 회사에 다니는 이들은 대부분 즐거운 표정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사는 것이니 즐거울 일이 없다. 

그런데 김과장은 다르다. 그는 “나 김과장”이라고 당당히 자신을 얘기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뭐가 좋은지 늘 빙긋빙긋 웃고 있고 다들 바쁘게 출근하는 그 길에서도 여유만만인 모습이다. 그가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건 그의 회사를 다니는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이 TQ그룹이라는 회사에 목매고 있지 않다. 애초 목적은 ‘삥땅’이었고, 그 목적이 새로운 재무이사 서율(준호)에게 들키게 되자 선선히 회사를 떠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리고 싶어 그는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다. 회장 아들이라고 툭하면 내려와 부장의 조인트를 까는 박명석 본부장을 대놓고 혼내준다.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게 잘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김과장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건 그가 진정으로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모두가 굴종하는 그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자유로움 때문이다. 그는 시스템 밖에서 시스템을 조롱한다. 

김과장이 보여주는 이러한 통쾌한 면면들은 그저 한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 설정으로 치부하기엔 그 함의하는 면들이 예사롭지 않다. TQ그룹은 어찌 보면 최근 들어 탄핵 정국과 함께 불거져 나온 기업들의 면면들을 표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필요하면 청와대와도 줄을 대고 불법을 저지르지만 권력의 힘은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기업에서 일하는 선량한 샐러리맨들은 어떨까.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서도 힘들면 본인이 관둬야 한다는 패배의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밖에 없다. 더러워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을 수밖에 없는 삶.

이것은 좀 더 확장해서 보면 우리 사회의 면면 그대로이기도 하다. 심지어 ‘헬조선’이라 불리는 부조리함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되는 사회지만 어쩌랴 살기 위해 버텨낼 수밖에 없으니. 김과장의 돌출은 이처럼 수직 계열화되어 있는 부조리한 시스템 바깥에 서있기 때문에 “자른다”는 엄포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조소를 날리는 모습을 통해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사회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행보를 보이는 것. 

그런데 그 행보는 김과장의 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TQ그룹 같은 회사가 자신을 챙겨줄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없다. 그의 아버지가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았지만 돌아온 건 해고였다는 걸 어린 시절부터 목격하며 자라온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김과장은 회사는 포기했어도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쁜 놈들에게 때때로 피가 끓는다. 시스템 바깥에서 조소를 날리던 그가 어쩌다 보니 ‘의인’이 되고 또 어쩌다 보니 그 시스템과 맞서게 되는 그 과정을 그리게 되는 건 바로 그가 모든 걸 포기했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김과장>의 입소문이 갈수록 커지고 그 반응 역시 폭발적인 건 그저 우연이 아니다. 그저 가볍게만 보였던 이 코미디는 의외로 현재의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건드리고 있고, 그 부조리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아가며 버텨내는 샐러리맨들의 답답한 속을 잠시나마 시원하게 만들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