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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황금빛' 재벌가로 간 신혜선,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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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김혜옥의 비뚤어진 선택이 만든 신혜선의 지옥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을 듯싶다.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지안(신혜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시방석에 앉게 됐다. 재벌가의 딸이 되어 흙수저를 벗어나 새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남다른 능력을 보여줬던 그녀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것이 모두 엄마 양미정(김혜옥)의 자식 바꿔치기 때문이었고, 자신은 그 재벌가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라는 걸 알게 된 서지안은 그 집안에서 숨 쉬는 일조차 힘겨워했다. 

'황금빛 내 인생(사진출처:KBS)'

왜 그렇지 않을까. 친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그 부모가 주는 돈과 옷과 갖가지 혜택들을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게다. 그건 엄마의 범죄가 이제 그 선에서 머물지 않고 서지안에게도 고스란히 똑같은 실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엄마의 범죄는 이제 자식의 범죄가 되었다. 죄지은 사람이 그러하듯이 그 집안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 모두에 긴장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이 그려내고 있는 서지안의 지옥도는 하지만 쉽게 풀어지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 재벌가의 만만찮은 사모님 노명희(나영희)는 자신을 기만하는 이들을 결코 가만두지 않는 무서운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런 면면을 보게 된 서지안은 이 사실을 밝혔을 때 당할 부모들의 고통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마침 이런 시기에 서지안을 친딸이라 믿고 있는 노명희가 그에게 유학을 제안하는 대목은 그래서 더더욱 그의 갈등을 크게 만든다. 사실을 알면서도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자신 역시 이 범죄에 가담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유학을 떠나버리는 것이 어쩌면 당장 하루도 버티기 힘든 이 집안에서 탈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을 밝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런 제안을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 서지안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하지만 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상황 자체가 그에게는 지옥일 수밖에 없다. 친엄마에게 갖게 될 분노와 노명희와 그 집안사람들에게 갖게 될 미안함 그리고 무엇보다 그 노명희의 친 딸인 동생 서지수(서은수)에게 느껴질 죄책감. 그 속에서 제 아무리 많은 돈과 번듯한 정규직과 화려한 재벌가의 삶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황금빛 내 인생>은 그 재벌가가 막연히 그려내줬던 ‘황금빛’이 사실은 ‘내 인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서지안이 겪는 지옥 같은 삶을 담아내고 있다. 제아무리 ‘황금빛’이라고 해도 내 것이 아닌 인생이 행복할 수 없고, 차라리 ‘흙빛’이라도 내 인생이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 주인공의 일순간 변해버린 처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 깔려 있는 또 한 가지의 이야기는 부모의 선택이라는 지점이다. 현실에 지쳐 자식이 성공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는 부모의 선택은 결코 자식의 행복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 물론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네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비롯된 잘못된 선택이지만, 그렇다고 비뚤어진 선택은 오히려 더 큰 불행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황금빛 내 인생>은 다소 거친 드라마의 전개와 소재들 때문에 마치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의 디테일이나 개연성의 촘촘함에 있어서 이 드라마는 허술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그저 막장드라마로 치부하긴 아까운 건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가 남다른 면이 있어서다. 재벌가 입성이 지옥도로 변하는 이런 상황을 주말 가족드라마 시간에 보게 되다니. 그간의 주말드라마가 그리던 보수적이고 판타지적인 세계관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