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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키스', 감우성·김선아에게 스킨십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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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먼저’, 김선아는 잊어버린 걸 감우성이 기억한다는 건

‘그는 기억하고 그녀는 잊어버린 것.’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매회 에필로그 형식으로 이런 제목의 짧은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그 이야기에는 손무한(감우성)과 안순진(김선아)의 이미 과거에 얽혔던 사연들이 소개된다. 둘 다 이혼을 하고난 후 흔들리는 기내에서 처음 마주하던 때와, 그 날 아무도 없는 한겨울 동물원을 찾은 순진을 무작정 따라갔던 무한과, 거기서 자살 시도를 했던 순진을 구해냈던 무한의 이야기 등이 그 에필로그에 담긴다.

그 에필로그가 보여주는 짧은 이야기 속에는 무한과 순진이 왜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유들이 제시된다. 무한은 이혼 후 세상과 거의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채 이제 병들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고, 순진은 집안 가득 과거의 물건들을 방치한 채 오랜 법정싸움으로 지게 된 사채 빚 독촉을 받으며 자포자기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그 에필로그에는 순진이 본래 아이가 있었고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사망하게 된 사연이 더해진다. 공원묘지에서 무한은 아버지의 묘소를 방문했다가 아이의 장례를 치르며 오열하는 순진을 보게 된다. 순진이 집안 가득 과거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방치해놓고 있는 건 바로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 남편인 은경수(오지호)가 집을 나가자 순진을 찾아왔을 거라 의심한 백지민(박시연)이 그 집안에 들이닥쳐 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다 문득 발견한 아이를 담은 비디오테이프 앞에 멈춰서게 된 건 그 역시 순진이 미우면서도 부채감 같은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경수는 스스로 말했듯 자신은 그 아픈 기억으로부터 지민을 만나 빠져나왔지만, 아직 순진은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경수가 지민과 재혼하고도 순진을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건 그래서다.

너무 아파서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순진은 아이의 죽음이 주는 그 거대한 상처만을 기억하지만, 그렇게 아파하는 자신을 바라보던 무한의 눈길은 기억하지 못한다. 눈 내리던 동물원 어느 한 켠에서 눈을 맞으며 오열하고 있을 때 그 뒤에서 우산을 받쳐주던 무한이 있었고, 버리고 간 캐리어를 대신 끌며 따라왔던 무한이 있었다. 그리고 무한은 어느 벤치에서 순진이 손목을 그었을 때 달려와 그를 응급실까지 데려갔다. 무한은 선명히 그것을 기억하지만 순진은 잊어버렸다. 너무 아픈 기억들이 무한 같은 새로운 사람과의 기억을 담을 여지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위층 남자 아래층 여자로 만나게 되고, 점점 가깝게 되어 이제는 “자러 올래요?”라는 말에 야릇한 감정보다는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지만 순진은 여전히 무한을 완전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런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채 이제 직장에서도 잘리고 집에서도 쫓겨나게 된 처지의 순진을 지금도 무한은 뒤에서 바라본다. 순진은 그 모든 아픔 앞에 혼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를 바라봐주고 다가와주며 손을 내밀어주는 무한이 있었다.

아마도 이 구도는 <키스 먼저 할까요?>가 가진 사랑에 대한 시각이다. 이제 나이 들어 딱히 설렐 일이 있을까 싶은 마음들이지만, 이들은 육체적인 욕망보다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그 시선에 마음이 움직인다. 그래서 아마도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이 붙었을 게다. 이들에게는 스킨십이나 함께 자는 것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 마음을 들여다봐주는 것이니. 순진은 잊어버렸지만 기억해주는 무한이 보여주는 그 마음.(사진: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