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리즈너’, 어느새 우린 장르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장르물들은 퓨전을 거듭 시도해왔다. 의학드라마 같은 경우는 특히 그렇다. <허준>이나 <대장금>은 이미 고전이 된 의학 사극이지만, 그 후에도 사극과 퓨전된 <제중원>이나 <마의> 같은 드라마가 있었고 타임리프가 더해진 <닥터진>이나 <명불허전> 같은 드라마도 있었다. 또 <카인과 아벨> 같은 드라마는 응급의학을 소재로 야전에서 수술을 시전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골든타임>이나 <낭만닥터 김사부> 역시 응급의학과의 전쟁 같은 상황을 소재로 다뤘다. 도서 지방 같은 의료 소외지대를 다룬 <병원선>이나 생명을 다루는 곳이자 사업체로서의 병원이라는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대립을 다룬 <라이프>도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네 의학드라마는 일정한 계보와 장르적 틀마저 갖추고 있다고 봐도 될 만하다. 그 계보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라는 소재는 시대와 공간과 각 과가 갖는 특징들을 변주하고 퓨전하며 진화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닥터 프리즈너>는 여기에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우리가 미드 등을 통해 익숙히 알고 있는 감옥 장르물들의 특성과 의학이 만나는 지점이 특이하다. 교도소 재소자들 중 이른바 VIP들을 담당하며 그들에게 갖가지 질병 진단을 덧붙여 ‘형 집행 정지’를 내리는 비리 의사들이 바로 그 접점이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은 재소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재소자들을 병들게 만든다. 시작과 함께 나이제(남궁민)가 여대생 살인교사 혐의로 수감된 재벌사모님 오정희(김정난)를 ‘형 집행 정지’로 만들기 위해 몸을 망가뜨리는 장면은 이 독특한 의학드라마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흔히 의학드라마에서 의사의 칼은 ‘살인검(殺人劍)’이 될 수도 있고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가 들고 있는 칼은 활인검이라기보다는 살인검에 가깝다.
그것은 태강병원에서 잘 나가던 응급의학센터 에이스 나이제가 하루아침에 그 병원의 주인인 태강그룹 회장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박은석)에 의해 추락하게 되면서 생겨난 반전이다. 자신이 치료하던 장애인 부부가 이재환 때문에 사망하게 됐지만 오히려 그 의료사고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된 나이제는 자신의 엄마 또한 수술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면서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그것은 사적 복수지만 또한 가진 자들이 누군가를 살해해 검거돼도 버젓이 형 집행 정지로 교도소를 빠져나가는 그 공적인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을 담아낸다.
<닥터 프리즈너>는 그래서 가진 자들이 그 돈의 힘으로 주무르는 병원과 감옥 두 공간에서 이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이제의 안간힘을 다루고 있다. 여러모로 그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그는 여전히 미약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인물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건 순진하게 선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거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에도 피를 묻혀야 한다는 걸 알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복수과정은 그래서 흥미로워진다. 선민식(김병철)이라는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과 각을 세우며 그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신의 비리를 정의식 검사(장현성)가 추적하는 것조차 이용하려 한다. 마치 이 거악을 줄줄이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 또한 그 악의 한 줄기가 되어 그들과 함께 기꺼이 무너지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의학드라마는 그래서 감옥을 소재로 덧붙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회극적인 면모를 갖게 된다.
이제 장르물에 멜로나 가족드라마적 요소를 끼워 넣지 않으면 어딘지 성공하기 어렵다는 드라마업계의 편견을 사라진 듯하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중 주목받고 있는 <닥터 프리즈너>나 <열혈사제> 그리고 <자백> 같은 일련의 장르물들에서는 이런 요소들 없이도 시청자들이 충분히 몰입한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멜로의 틈입 같은 것이 이제는 장르물에 있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까지 치부되고 있다.
이미 넷플릭스 등을 통해 미드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현실 속에서 이제 우리네 장르물들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됐다. 지금껏 오랫동안 만들어져 왔던 의학드라마의 진화과정을 보면 지금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제 장르 자체가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여러 장르들이 퓨전되는 걸 오히려 즐기고, 그 장르적 문법들이 새롭게 해석될 때 더 열광한다.
그런 관점에서 <닥터 프리즈너>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르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시청자들은 다소 복잡하고 시시각각 상황이 반전하면서 감옥과 병원을 넘나들고 때로는 사회극의 면모를 드러내는 이 작품에 열광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마치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심지어 KBS 드라마에서 이런 본격 장르물을 넘어서는 퓨전 장르물의 묘미를 느낄 줄이야. 우리네 드라마에 장르물 트렌드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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