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아름다운 세상'의 날카로운 질문, 누가 아이들을 괴물 만드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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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의 날카로운 질문, 누가 아이들을 괴물 만드나

D.H.Jung 2019. 4. 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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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어른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망치고 있나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그 어디에서도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학교 옥상에서 추락해 의식불명이 된 선호(남다름). 학교는 서둘러 자살시도라 단정 짓고 사안을 덮으려 한다. 심지어 선호가 친구들에게 이른바 ‘어벤져스 게임’이라며 집단 구타를 당하는 영상이 발견되지만 가해학생들은 ‘장난’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장난 수준이 아니다. 거기에는 항상 교실에서는 착한 우등생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학교 재단 이사장 아들 오준석(서동현)의 보이지 않는 ‘조종’이 존재한다.

 

준석은 이 드라마에서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오가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공부도 잘하고 집도 부자인데다 권력까지 갖고 있는 이사장 아들이라는 사실은 그가 아이들을 지능적으로 조종하고 괴롭히며 군림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는 겉으론 친절한 척, 착한 척 하지만 한동희(이재인)처럼 이미 왕따 경험을 하고 전학 온 약한 아이를 또 다시 왕따시키고, 친한 친구로 지냈던 선호가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며 그에게 반기를 들자 그조차 집단 괴롭힘을 조장한다.

 

심지어 자신이 뒤에서 어벤져스 게임의 배역을 정해주고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이 학폭위에 의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조영철(금준현)에게 선물을 주며 자기 편으로 만들고 진실을 말한 이기찬(양한열)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 아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가장된 눈물 그리고 뒤돌아서 보이는 미소는 시청자들을 끔찍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름다운 세상>이 하려는 이야기는 학교 폭력을 저지른 아이의 잘못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 아이가 어떻게 해서 이런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준석은 어쩌다 친구까지도 왕따시키고 집단 폭력을 당하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의 아버지인 세아교육재단 이사장 오진표(오만석)의 엇나간 자식 교육에서부터 비롯된다.

 

오진표는 세상을 움직이는 건 단 몇 프로의 상위그룹이라고 생각한다. 준석이 100년이 넘은 세아교육재단을 이어받을 후계자로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준석은 이러한 ‘위계’가 심지어 친구 사이에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선호를 집단 린치하게 만들고는 친구 사이에도 서열이 있다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결국 그래서 사건이 벌어진다. 학교 옥상에서 준석은 선호와 다퉜고, 그 와중에 선호는 추락했다. 그건 사고일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 사고가 ‘사건’이 되게 만든 준석의 엄마 서은주(조여정)다. 그 날 옥상에서 준석을 발견한 서은주는 선호의 추락을 자살기도로 위장하기 위해 현장을 조작한다. 훗날 준석은 엄마에게 말한다. 그 날 자신이 모든 걸 다 봤다고. 일을 이렇게 만든 건 그래서 엄마 때문이라고.

 

<아름다운 세상>이 날카롭게 들이대고 있는 시선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른들은 서둘러 진실을 덮으려 하거나 조작하려 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는 인물로 몰아세운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그 명목은 모든 걸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그런데 결과는 어떨까. 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그 일련의 행동들은 오히려 아이들을 망가뜨린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보며 그것이 세상이라고 배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질러도 힘이 있으면 벌을 받지 않을 수 있고, 죄에 가담했어도 무조건 우기면 죄가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힘 있는 사람에게 붙어야 살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거짓도 불사하며 친구도 버려야 한다는 걸 배운다.

 

반면 아이가 옥상에서 추락하는 그 사건을 통해 그 부모는 자신들이 얼마나 어른으로서 잘못해왔는가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선호의 아버지 박무진(박희순)은 학교선생님으로서 입바른 소리를 해왔지만 실제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의 사정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자신을 ‘후진 어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이나 후회, 자책감을 보이는 인물조차 없는 이 비정한 세상에서 그는 결코 ‘후진 어른’이 아니다. 그야말로 이제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를 알게 된 진정한 어른이다.

 

동생 동희가 왕따를 당해왔고 심지어 너무 괴로워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동수는 동생을 괴롭힌 아이들을 죽도록 때려주겠다며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박무진은 그것이 아무 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동수가 그러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외치자 박무진이 말한다. “들어줄 수 있잖아. 동희 이야기 들어줄 수 있잖아. 난 우리 아들 이야기 듣고 싶은데 들어줄 수가 없어. 들어줄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어. 그게 얼마나 후회되고 괴로운 줄 알아?”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매일 같이 치열하게 뛰어다니고 누군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삶은 과연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박찬홍 감독과 김지우 작가는 전작이었던 <기억>에서부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의 근원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충격이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기억>이 기억을 지워내려는 시스템 속에서 결코 지워내선 안 되는 기억의 문제가 있다는 걸 드러냈던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일과, 그런 정의가 존재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진정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