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골목식당’은 득이 아닌 독이 된다
‘총체적 난국’을 예고하듯 갑자기 쏟아져 내린 폭우 때문에 주방으로 물이 줄줄 흘러내릴 때 튀김덮밥집 사장님은 “어떡해”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비를 흠뻑 맞아가며 가게 밖 환풍구를 살핀 건 사장님이 아니라 그 어머니였고, 옥상까지 올라가 문제를 해결한 것도 사장님의 남자친구였다. 이 장면은 이날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둔촌동편 튀김덮밥집에서 백종원의 분노 섞인 조언의 전조가 되었다.
폭우로 인해 물이 새던 주방의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되었지만 총체적 난국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날 점심 장사로 단체 손님이 왔는데, 갑자기 튀김기가 작동을 하지 않은 것. 주문을 잔뜩 받아놨지만 켜지지 않는 튀김기 때문에 사장님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그 문제를 해결한 건 자신이 아니라 남자친구였다. 문제는 음식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손님들에게 양해를 미리 구하지 않았다는 것. 11시 45분에 찾아온 손님들은 12시 반이 다 돼서야 겨우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늦어질 거라며 사과를 했지만, 그건 양해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그 장면을 보면서 백종원은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가장 큰 문제는 사장님이 전혀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점심 장사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었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후 거기에 대한 고민이나 죄책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남자친구와 다시금 주방에서 시시덕거리는 모습은 백종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백종원은 “혼 좀 나야 된다”고 말했다.
가게를 찾아가 백종원이 그 날의 문제들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낼 때도 사장님은 침묵하고 있었다. 대신 어머니가 나서서 애써 딸을 변명해주는 모습이었다. 사장님은 늘 뒤편으로 물러나 있는 모습이었다. 점심 때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도 자신이 아닌 남자친구였다. “오빠가 가서 얘기하고 와”라고 시켰던 것.
“뭔가 하고 싶은 거 내가 하고 뒤처리는 남이 하는 거면 뭐 하러 일을 해요? 모든 거에 대한 책임이 따라야지. 내 힘 들여가면서 즐겨야지 진정한 거지.” 백종원은 책임을 회피하는 사장님에게 일갈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장님이 자신을 도와주는 어머니나 남자친구를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였다.
적자가 나지 않냐는 질문에 사장님은 애써 적자는 아니라면서 “제 수입이 없는 거죠”라고 답했다. 그 말 속에는 사장님이 아예 어머니나 남자친구가 도와주는 일에 대한 보상이나 급여 개념은 빠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머니에게는 남는 돈에서 반씩 나눠가지기로 했다는 사장님의 말에 백종원은 일갈했다. “엄마는 죄졌나? 급여는 안주고? 아니 그럼 동업이예요? 엄마랑? 그럼?”
남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친구의 급여를 묻는 질문에 사장님은 “오빠는 줘야 되는데 이번 달은...”이라며 말을 흐렸다. 최저임금으로 잡아도 한 달에 170만 원 정도를 한 사람당 줘야 하는 게 정당한 상황. 심지어 남자친구는 전 회사에서 월급으로 370만 원을 받았다고 했다. 결국 어머니와 남자친구에 대한 급여를 170만원씩 총 340만원이 나간다고 치면 백종원 말대로 적자인 게 분명했다.
그러면서 방송은 그간 이것저것 소리치며 시키고 통제하려 했던 사장님의 모습을 편집해 보여줬다. 정작 월급은 주지 않으면서 일을 시키기만 했던 사장님의 면면이 고스란히 비춰졌다. 아마도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이라는 위치가 어떤 것인가를 잘 몰랐을 게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모든 걸 책임지는 위치가 바로 사장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 아닐까.
“가게 분위기를 위해서 으쌰 으쌰 할려구 웃어가는 거라면 내가 이 얘기를 안 해. 그게 아니니까 지금 내가 막 뭐라고 하는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있고 막 아무 준비 없이 그러는 게 보이니까.. 정말로 나와서 무릎 꿇고라도 해야지. 어떻게 온 손님인데. 그게 있어야만 마음에 있는 말이 나가고 마음에 있는 서비스가 나가고, 어떻게든 이 손님을 잡겠다는 그게 안 보이니까 지금 내가 이러는 거야.”
사장님의 책임감 부재는 고스란히 음식에도 손님들에게도 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백종원은 준비 안 된 자에게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로또가 아닌 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없는 사람한테 이런 골목식당에서 로또를 줬을 것 같아서 배 아파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줘도 못 먹을 거 같고 준 게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이건 독이 된다니까. 사장님 인생에 독이 돼요.”
지금껏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준비 안 된 식당들이 나올 때마다 어째서 저런 집을 선정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터져 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것은 열심히 일하는 다른 식당들에게는 그 자체로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종원은 그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남의 밑에서 남의 가게에서 십 몇 년 이십 몇 년 준비를 하고 정말 없는 돈을 긁어모아서 남보란 듯 좋은 가게 번듯한 가게보다도 골목 안에 들어와서 준비한 사람 많아요. 그래도 빛을 못보고 망한 사람도 많고. 그런 사람에 비해 얼마나 운이 좋은지 알아요? 준비 하나도 안하고 들어왔잖아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준비해도 지금 될까 말까인데..”
백종원이 말한 것처럼 방송에 나간다고 해도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독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사장님이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책임감 없는 상황에서 덜컥 방송 덕분에 장사가 잘 된다고 해도 그건 결코 자신의 성공이라 말하기 어려울 게다. 결국은 그 일시적인 성과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독으로 돌아올 거라는 것. 공감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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