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시간여행자 양준일 신드롬을 만들었나
“나의 과거를 보면 꼭 그게 나의 미래로 그냥 이어간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자꾸 버려야지, 버려야지. 그래서 예를 들어 행복하기 전에 불행함을 버려야 되는 것처럼 해서 제 머리에서 가득 차 있는 나의 나 자신에 대한 편견이라 그럴까요. 그것을 버리느라고 노력을 거의 뭐 생활처럼 했었었어요.”
JTBC <뉴스룸>에 나온 양준일은 그간 삶이 어땠냐는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그는 과거의 일들, 화려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또한 불행했던 그 과거를 ‘버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버리고 남은 공간을 과거로 채우지 않으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자꾸 그 공간을 다시 채우는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걸 들이려 했지만 어려웠다는 것이다.
<뉴스룸>에서 양준일이 한 이 짧은 답변에는 그가 그간 얼마나 힘겨워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무너지기보다는 그로부터 벗어나려 애썼는가가 담겨 있다.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 그래서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재미교포라는 편견까지 더해져 혐오 섞인 차별까지 받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온라인 탑골공원을 통해 젊은 세대들의 열광을 불러일으키며 이른바 ‘탑골GD’라고 불렸고, JTBC <슈가맨>에 등장함으로써 진정한 ‘슈가맨’의 서사를 현실로 재현해냈다.
이제는 ‘탑골GD’라는 표현이 더 이상 불필요할 정도로 양준일의 존재감이 훨씬 더 큰 아티스트로서 압도하고 있는 상황. 그는 팬들의 부름을 받아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손석희 앵커에게 택시 기사가 자신을 알아보고 <슈가맨> 영상을 보여줬다는 일화를 얘기하며 행복해하는 양준일의 모습은 이 정도로 신드롬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실감을 못하는 티가 역력했다. 택시에서 내려 기사분과 사진까지 찍었다며 행복해하는 양준일에게서는 저 멀리 손에 닿지 않는 스타가 아닌 소탈하면서도 이제 원숙해진 아티스트로서의 면모가 보인다.
이른바 양준일 신드롬이라 불리는 현상에는 우리네 대중들이 가진 다양한 갈증들이 느껴진다. 그 첫 번째는 다양성에 대한 갈증이다. 양준일이라는 가수와 그 독특한 음악적 장르가 다르다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고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며 지금 다시 그를 소환하는 건 그만큼 다양성을 끌어안고픈 대중들의 요구가 담겨있다.
지금의 이른바 K팝으로 불리며 마치 우리네 가요가 모두 그 장르 하나인 것처럼 오도되는 획일적인 가요계의 엇나간 흐름 속에서 대중들이 1990년대 가수들을 소환하는 건 그 반작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당대가 지금보다 훨씬 다양성이 존재하던 시대였다는 것. 물론 양준일은 그 시대에서도 배척받을 정도로 앞서간 다양성을 보여줬지만, 그래도 그런 음악들이 시도되던 시대였지 않은가. 그래서 양준일 신드롬은 거꾸로 우리네 가요계의 여전히 부족한 다양성에 대중들의 갈증이 느껴진다.
양준일 신드롬에서 느껴지는 두 번째 대중들의 갈증은 나이로 구분되는 ‘세대론’에 대한 피로감이다. 그 많은 세대론들이 구세대와 신세대를 나눠 대결하고 갈등하게 만들었다면, 양준일 신드롬에는 세대적 구분을 무화시키는 어떤 지점이 존재한다. 중년들은 저 나이에도 여전히 아티스트로서 열정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양준일이 주는 위로가 클 것이다. 청춘들에게는 지금 당장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만의 개성과 지향점이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안도감을 줄 것이다. 양준일이라는 시간여행자는 그렇게 세대로 불려 나눠진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단절된 게 아니라 이어지고 있다는 걸 증거하는 존재가 되었다.
세 번째로 느껴지는 대중들의 갈증은 소박한 삶에 대한 가치 조명이다. 양준일은 여전히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생업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으로 돌아가 하던 서빙 아르바이트를 계속 할 거라 했던 이야기가 그렇고, “겸손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라 했던 소박한 이야기가 그렇다. 그 소박한 삶에 대해 양준일이 한 말은 그것이 스타로서의 삶만큼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준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이만한 위로가 있을까.
다양성이 받아들여지는 사회, 단절된 세대의 갈등이 아니라 같은 시간의 흐름 위에 서 있을 뿐이라는 세대 공감이 있는 사회, 대단한 삶의 허황된 욕망이 아니라 소박해도 소중한 삶이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 양준일 신드롬에는 대중들이 원하는 이런 사회에 대한 갈증들이 녹아들어 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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