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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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 뿔난 엄마, 이상한 엄마

D.H.Jung 2008. 5. 2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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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뿔났다’, 진화하는 엄마들

김수현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는 물론 김한자(김혜자)가 주인공이지만, 뿔난 엄마만 있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며느리 괴롭히는 전형적인 시어머니처럼 보이지만 한편에서 보면 나름 귀엽기도 한 이상한 엄마, 고은아(장미희)가 있는 반면, 오히려 자식의 허물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고 긍정해주는 좋은 시어머니, 이종원(류진)의 엄마도 있다.

전형적이지만 무언가 다른, 뿔난 엄마
김한자는 우리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엄마이자 시어머니다. 평범한 집에서 평범한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살아왔다. 이제 자식들을 결혼시켜야 하는 입장에 선 엄마들이란 사실 뭐 하나 제 맘에 쏙 드는 게 없기 마련이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며느리와 손주를 동시에 안겨다준 당혹스런 아들과,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상대와 결혼한 막내딸, 그리고 이혼한 것도 모자라 아이까지 딸린 상대와 결혼을 앞두고 있는 맏딸을 가진 김한자의 상황은 보통 엄마들의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전형적인 상황 속에 있는 뿔난 엄마가 과거의 엄마, 혹은 시어머니와 다르게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일단 김한자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변화가 그 첫 번째가 될 것이다. 과거라면 아무리 뿔이 나도 혼자 삭이고 넘어갔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가족들은 모두 이 뿔난 엄마 주변에서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그 뿔을 삭일 궁리를 해준다. 늘 제일 먼저 며느리를 살펴주는 시아버지와, 아내를 웃기기 위해 파자마 바람에 춤까지 춰주는 남편과, 친구보다 더 살갑게 대해주는 시누이는 뿔난 엄마 주변을 방패처럼 둘러싸고 있다.

게다가 이 엄마는 계속 해서 독백을 한다. 그 독백 속에는 기존 엄마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는 알 수 없었던 엄마의 속내가 담겨있다. 이로써 이 드라마는 세상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시청자들은 그 마음을 경청하는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엄마라는 입장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드라마를 실제 상황과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바로 이런 구도와 설정의 엄마는 그것이 공감을 얻는 지금의 세태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뿔난 엄마의 독백과 그걸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는 실상,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의 엄마들 그 속의 뿔을 끄집어내 토로하게 하고, 가족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듬어야 하는가를 정답처럼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움과 측은함이 교차하는, 이상한 엄마
뿔난 엄마가 뿔이 나는 이유는 첫째 자식들이 자기 맘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 행동을 자신이 꺾지 못하고 용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응어리의 바탕에는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영미(이유리)의 시어머니 고은아도 뿔난 엄마이긴 마찬가지다. 자신의 말이라면 절대로 복종하던 아들이 격에도 맞지 않는 영미와 결혼하기 위해 단식까지 하니 뿔이 나도 보통 뿔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도 역시 엄마는 엄마인 바, 결국 자식에게 두 손을 들고 만다. 바로 이 대목이 고은아를 나쁜 엄마로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사실 세상에 나쁜 엄마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녀는 조금 이상한 엄마다. 그렇게 결혼까지 시킨 마당에 그녀는 자신의 생활과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며느리 앞에서 “그건 예의에 맞지 않는 일이다”라거나, “무식하다”는 직설적인 표현은 실은 상대방에게 진짜 예의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거기에 대해 악의가 없다. 그저 자기 입장에서 위한답시고 하는 일이다. 그녀는 며느리의 문화적인 소양을 높이고 격을 높이고자 하는 것뿐이라고 자신을 강변한다.

이 이상한 엄마를 완전히 욕하기도 뭐한 것은 바로 그녀의 완전히 굳어져버린 캐릭터 때문이다. 입만 열면 나오는 품위와 지성 같은 단어들은 실제로 그녀의 높은 품격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류층의 허위의식을 드러내주는데, 어찌 보면 그것이 딱하게 보일 때가 더 많다. 그녀는 접시를 사 모으는 것이 문화라 생각하지만, 사실 문화란 접시보다는 거기에 무엇이 담기는가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의도라기보다는 생활에서 굳어진 것이다. 그것을 잘못이라 말할 수는 있지만, 한 여자의 인생 전체를 허위라 말하기는 어딘지 고은아라는 캐릭터가 측은해 보인다. 바로 이 미움과 측은함이 교차하는 부분, 거기에 이상한 엄마가 서 있다.

입보다는 귀가 큰, 좋은 엄마
맏딸 영수(신은경)의 선택(아이 딸린 이혼남과의 결혼 결정)에 뿔난 엄마, 김한자는 조금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신의 막내딸이 결혼할 때, 기우는 자신의 집안 처지 때문에 사위의 시어머니인 고은아에게 충분히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자기 딸 걱정에 상대편인 종원을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뿔난 엄마는 그 뿔을 드디어 밖으로 끄집어내 종원을 공격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엄마의 모성본능이다. 아예 부모 자식간의 의를 끊자고까지 말하는 그녀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엄마들 간에는 그 엄마라는 이름으로 서로 통하고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뿔난 엄마가 종원의 엄마를 만나고 나서 마음의 뿔이 얼음 녹듯 사라진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시어머니 캐릭터로서의 착한 엄마 종원모의, 주장을 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고 진정으로 공감해주는 진실된 태도가 한 몫을 하게 된다. 종원모는 입보다는 귀가 큰 엄마다. 그녀는 심지어 행패를 부리는 전 며느리 소라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진정으로 이해한다며 심지어 자기 자식을 “나쁜 놈”이라고 얘기할 정도이다. 이 자기 자식보다 남의 자식을 더 귀히 여기는 시어머니는 이 시대의 며느리들과 모든 엄마들이 희구하는 착한 엄마가 아닐까.

‘엄마가 뿔났다’의 뿔난 엄마, 착한 엄마, 이상한 엄마는 각자 자신의 캐릭터가 뚜렷하며 그 캐릭터들은 자식들간의 결혼 속에서 서로 부딪치게 되지만 결국에는 어떤 합의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들의 서로 부딪쳤던 이유가 바로 엄마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성격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며 계층도 다르지만, 그들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서로 소통한다. 과거 한 여자에게 엄마라는 이름과 시어머니라는 이름이 각각 존재하던 시대에 딸과 며느리에 대해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던 엄마들은 이제 그것이 결국 하나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시어머니들, 아니 엄마들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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