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국, '미나리'는 잔잔해서 더 큰 위로를 줬다
코로나19로 인해 거의 개점폐업 상태였던 주말 극장가가 활기를 띠고 있다.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봄철이고 코로나19의 백신접종이 시작된 것도 그 원인일 수 있지만, 영화 <미나리>의 효과를 무시하기 어렵다. 주말에만 이 영화를 보기 위해 20만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물론 여기에는 해외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데다 앞으로 오스카 수상 역시 유력시된다는 <미나리>에 쏟아진 해외의 찬사가 일조했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이런 어마어마한 수상 경력을 차치하고라도 <미나리>는 그 작품 자체가 이 어려운 시국에 주는 큰 위로로 입소문이 퍼져가고 있다.
먼저 어마어마한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미나리>의 서사가 굉장히 극적이라고 생각했다간 오산이다. 오히려 정반대다. 미국 아칸소의 외딴 곳으로 이주한 제이콥(스티븐 연)과 아내 모니카(한예리) 그리고 의젓한 큰 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이 농장을 꿈꾸며 정착해가는 과정이 담겼다.
그래서 도시의 복잡한 풍경 자체는 등장하지도 않고, 미국 조용한 시골 마을이 영화 내내 채워지고 그 곳에서 농장을 시작하며 쉽지 않은 그 과정들을 이 영화는 잔잔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담아나간다. 물론 그 담담함을 지루하지 않게 채워주는 건,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는 인물들과 그들을 통해 미소 짓게 만드는 따뜻한 유머들이다.
맞벌이를 하는 이 부부를 위해 아이들을 챙겨주러 이 낯선 땅 미국으로 오게 된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는 사실상 이 영화의 제목이자 메시지를 은유하는 '미나리' 같은 존재다. 할머니지만 전혀 할머니 같지 않은 순자의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들은 미소를 짓게 만들면서도 삶의 지혜가 느껴지고 때론 가족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우리네 엄마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엿보게도 만든다.
이 잔잔하고 소박한 영화가 어째서 미국에서조차 그토록 호평과 찬사를 받았는가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잔잔함과 소박함에 있지 않을까 싶다. 감염병 하나도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글로벌 사회의 거창한 역설 속에서, 마치 미국 내 한인(을 포함한 이민자들 모두)들처럼 거대한 용광로 속에 들어가 적응해 살아가는 작디작은 로컬문화가 주는 매력과 힘이 <미나리>에는 넘쳐난다.
미국 같은 거대한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살아갈 수 있는가의 저 토양을 내려다보면 그렇게 어디선가 낯선 땅으로 넘어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타인 또한 이롭게 하며 살아온 이민자들이 보인다. "미나리는 어디에 있어도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줘." <미나리> 속 순자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이들 이민자들은 미나리 같은 존재들이었다.
물론 <미나리>에는 미국 사는 딸을 위해 고춧가루며 참기름이며 멸치까지 바리바리 싸갖고 오면서, 동시에 화투를 챙겨와 손주와 같이 치는 그 정이 많으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지극히 한국적인 엄마 순자가 등장한다. 그의 유쾌함과 강인함과 따뜻함은 실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당연하고 미국인들조차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가 됐을 게다.
또한 <미나리>는 굳이 낯선 땅에 서게 된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낯설어 고된 환경을 맞이하게 된 이들 모두를 위한 이야기다. 그래서 코로나 시국으로 1년 넘게 이 낯선 환경을 버텨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이만한 위로가 없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낼 것이고, 우리만이 아닌 주변까지도 살려낼 것이라는 걸, 저 어디서나 잘 자라고 누구나 건강하게 해준다(돈을 벌게 해준다는 그런 게 아니라)는 물가에 피어난 푸릇푸릇한 풀이 말해주고 있으니.(사진:영화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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