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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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란 세상

박해영 작가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려 하는가

D.H.Jung 2022. 6. 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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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과 해방을 꿈꾸는 박해영 작가의 세계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화제다. “날 추앙해요”라는 비일상적인 대사가 일종의 밈이 되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을 정도다. 예사롭지 않은 <나의 해방일지>는 무슨 이야기고, 이 작품을 쓴 박해영 작가가 일관되게 그리고 있는 세계는 무엇일까.

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와 <나의 아저씨>의 평행이론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속 인물들은 자주 길을 걷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 길은 출퇴근길이다. <나의 아저씨>에서는 주로 퇴근길 풍경이 담겨졌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스트레스에 쩔은 박동훈(이선균)은 그렇게 퇴근길에 정희네 선술집에 들러 그 곳에 모인 사람들과 술 한 잔으로 피로를 푼다. 그 곳에는 한때는 이사님 소리도 들었지만 지금은 퇴직해 아파트 경비나 청소 같은 일을 하게 된 중년의 아저씨들이 모여든다. 아저씨들은 한바탕 술자리 후 얼콰해진 얼굴로 술집을 나와 골목길을 걸어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간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그 길이 훨씬 멀어졌다. 경기도 수원 근처 산포시의 외진 곳에 사는 삼남매는 매일 시골길을 걷고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전철을 타고 서울로 간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터에서 지긋지긋한 스트레스를 버텨내고 퇴근 후 술을 마시다가도 전철 막차 시간에 맞춰 일어나 그 먼 길을 돌아온다. 하루 종일 출퇴근만으로도 피곤하지만, 주말에도 아버지를 도와 밭일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전원생활의 낭만 따위는 없다. 

 

<나의 아저씨>나 <나의 해방일지> 속 길을 걷는 인물들은 자신의 일상 속에 갇혀 흔들리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그 일상을 틈입하는 이질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범죄의 냄새를 풍긴다.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이지은)이 그렇고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손석구)가 그렇다. 이지안은 박동훈이 일하는 회사의 사무보조고, 구씨는 어쩌다 이 외진 곳까지 들어와 삼남매네 아버지가 운영하는 싱크대 공장에서 일하는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이지안은 사채 빚 때문에 시달리며 박동훈에게 들어온 뇌물을 훔치는 것으로 그의 삶 속으로 들어오고, 구씨는 매일 알코올중독자처럼 술만 마시는 그에게 삶이 답답해 미치겠던 삼남매 중 둘째 염미정(김지원)이 뜬금없이 “날 추앙해요”라고 요구하면서 그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박동훈과 이지안 그리고 염미정과 구씨는 각각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서로 얽히면서 서로의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단어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그 이상의 무엇이다. 박동훈과 이지안이 40대와 20대의 세대 차이를 뛰어넘는 ‘인간애’에 가까운 휴머니즘의 관계를 그렸다면, 염미정과 구씨는 시작부터 사랑으론 부족하다며 ‘추앙하는’ 관계로 그려진다. 이처럼 <나의 해방일지>와 <나의 아저씨>는 그 구도가 평행이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닮아 있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이 진짜 닮은 건 박해영 작가가 보여주는 태도다. 그는 마치 구도자처럼 화두를 던진다.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의 번뇌가 왜 생겨나고, 그것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탈주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편안함과 해방을 꿈꾸는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

사실 박해영 작가는 <나의 아저씨>부터 이런 구도자 같은 태도가 생겼다. 물론 직장생활의 만만찮은 현실이나, 풍자적인 코미디 같은 요소들은 <올드미스 다이어리>부터 <청담동 살아요>, <또 오해영>으로도 이어지는 일관된 면모들이었지만, 이들 작품은 시트콤이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장르적 색깔과 재미에 충실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부터 <나의 해방일지>로 이어지면서는 코미디에 페이소스가 깊어졌고, 장르적 틀에 안주하기보다는 그 바깥으로 튀어나가 말하고픈 메시지를 좀 더 과감하게 풀어내는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삶 속에서 끝없이 관계의 피곤 속에서 번뇌하는 현대인들에게 다분히 종교적인 느낌까지 묻어나는 초월적 관점이나 해법들을 던진다. 

 

<나의 아저씨>가 던진 화두는 애써 버티며 살아가는 삶으로부터 ‘편안함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질문이었다. 건물의 안전진단을 하는 건축구조기술사 박동훈은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라며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이긴다는 것. 하지만 이렇게 내력으로 외력을 버텨내는 삶은 고단하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는 버텨내는 걸 포기함으로써 편안함에 이르는 길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던 박동훈이 결국 회사를 나와 새로운 길을 찾는 모습이 그렇다. 정희네 술집에 퇴역한 아저씨들이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망가져도 더 이상 버티려는 욕망을 버림으로써 오히려 편안해질 수 있다는 다소 불교적인 화두를 던진 것. 

 

<나의 해방일지>의 화두는 모두가 ‘같은 욕망’을 꿈꾸게 함으로써 가짜 행복 속에서 살아가는 거짓 삶으로부터 ‘해방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질문이다.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돼. 추앙해요.” 미정이 구씨에게 어느 날 갑자기 ‘추앙’이라는 낯선 단어를 꺼낸 건 ‘사랑’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오염되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는가를 말해준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같은 말들이 어디서나 쉽게 튀어나오는 세상이 아닌가. 행복도 마찬가지다. 미정이 다니는 회사의 ‘행복지원센터’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동아리 모임을 지원하는 부서지만, 그런 지원이 과연 진정한 행복을 줄 것인지 미정은 믿지 못한다. 억지로 동아리를 만들라는 강권에 미정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해방클럽’에, 그 행복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 소향기(이지혜)가 들어오며 하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해방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일단은 이 표정. 무표정이 안돼요. 눈앞에 사람이 보이면 자동적으로 이런 표정이 돼요.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이렇게 웃을 정도로 좋지도 않은데 사람만 보면 자동적으로 이런 표정이 돼요. 그래서 상갓집 가는 게 너무 힘들어요. 상갓집 갈 때마다 억지로라도 무표정 해보려고 애쓰는데... 힘들어요.” 가짜 웃음, 가짜 행복, 가짜 사랑. 자본화된 사회가 제안하는 평범으로 포장된 같은 욕망들의 위선을 고발하는 이 드라마는 그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모색한다. 그 해방클럽은 그래서 세 가지 강령을 제안한다. 첫째, 행복한 척 하지 않기. 둘째, 불행한 척 하지 않기. 셋째, 정직하게 보기.

 

뻔한 틀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는 드라마 작가

작품에 담긴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박해영 작가의 이런 태도는, 그의 작품이 통상적인 작법과 뻔한 틀로 그려지는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이유가 된다. 그는 염미정의 입을 빌려 상투적으로 드라마에서 쓰이곤 하는 “심장이 뛰게 좋다”는 통상적인 표현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난 그 말을 이해 못해. 심장 뛰게 좋다는 말.... 내가 심장이 막 뛸 때는 다 안 좋을 때던데. 당황했을 때, 화났을 때, 백 미터 달리기 전. 한 번도 좋아서 심장이 뛴 적이 없어. 정말 좋다 싶을 땐 반대로 심장이 느리게 가는 거 같던데? 뭔가 풀려난 것 같고. 처음으로 심장이 긴장을 안 한다는 느낌.” 즉 그에게 너무나 좋은 기분은 ‘두근거림’이 아니고 ‘편안함’이다. 따라서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이 구씨와의 관계에서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떤 갈망 때문에 심장이 뛰는 그런 순간들이 아니고, 어느 날 무심하게 구씨가 툭 던진 문자메시지로부터 확인되는 관계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특별한 말을 애써 하지 않아도 되거나, 혹은 이 말을 할까 말까 고심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막 튀어나오는 대로 말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함의 순간. 당연히 이 드라마 속 염미정과 구씨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의 전개도 통상적인 드라마들의 틀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박해영 작가 역시 아직까지 뻔한 드라마의 공식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처럼 끝없는 구도의 관점으로 세상의 부조리를 정직하게 보려는 노력과, 오염된 일상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 문학적 서사와 은유를 동원하는 방식은 그가 사유에서나 작품을 통해서나 뻔한 틀로부터 해방을 꿈꾸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모든 게 기획되고 효과와 결과로서 평가되는 시대에, 이런 자세와 태도를 꿋꿋이 밀어붙이는 작가가 있다는 건 실로 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어쩌면 틀에 박힌 우리의 허위로 가득한 삶과 그걸 반복하는 그렇고 그런 드라마들을 해방시켜주는 선구적 역할을 할 테니.(글:시사인, 사진: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