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 감탄하고 먹먹하다 부끄러워지는 인물 다큐
“김장하 선생님께 고맙다고 인사를 갔더니 자기한테 고마워 할 필요는 없고 자기는 이 사회에 있는 것을 너에게 주었을 뿐이니 혹시 갚아야 할...”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거기에는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의 차원을 넘어 진심에서 우러나는 존경심, 숭고함에서 느껴지는 먹먹함, 그 분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는데서 오는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갚아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사회에 갚아라. 제가 조금의 기여를 한 게 있다면 그 말씀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말문을 이은 문형배 재판관의 그 말 속에는 김장하 선생님이 자신의 길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가 담겼다. 어떻게 살라고 말하기보다는 당신이 그렇게 살아오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영향력. 김장하 선생님이 후원한 무수한 장학생들 중 한 명인 문형배 재판관이 보인 눈물에는 선생님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이 담겨 있었다.
경남 MBC가 제작한 인물 다큐 <어른 김장하>가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며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유튜브에 공개된 이 2부작 인물 다큐를 보다보면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저런 분이 실제로 있는가 싶다가, 그 행적 하나하나에 묻어난 선생님의 인간애에 먹먹해지고, ‘어른’이라는 단어가 갈수록 세속화되고 퇴색되는 시대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것은 특히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지만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회에서 선생님이 해온 일들이 마치 기적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어서다. 20세 약관의 나이에 남성당 한약방을 열어 ‘박리다매’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 돈을 대부분 가난해 학업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쓰고, 학교 재단까지 만들었지만 100억대가 훌쩍 넘는 고등학교를 국가에 흔쾌히 헌납했다.
이것이 뉴스를 통해 김장하 선생님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지만, 다큐멘터리는 그 선생님의 행적을 김주완 기자가 추적해가면서 그 이외에도 곳곳에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손길이 닿아 있다는 걸 찾아나간다. 선생님은 마치 지역 사회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늘 ‘준비되어 있는’ 1순위 기부자였다. 공간이 없어 연극을 계속 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는 공간을 얻기 위한 돈을 내줬고, 가정폭력 피해여성과 자녀들을 위해서는 그들의 상처를 회복시키기 위한 집을 세우는데 기부를 했다.
여성인권에 대해 말도 못 꺼낼 분위기였던 2000년대 초반 호주제 폐지 활동에도 참여했고, ‘새로운 차별을 없애자’는 취지로 형평운동기념사업회에 오래도록 함께 했다. 또 지역신문이 살아야 지역 토호들이 어려움을 안다는 생각에 진주신문을 도왔는데, 매달 적자 폭이 1천만 원씩 나는 걸 지원하기도 했다. 형평운동가 강상호 묘소를 찾아 다시금 재단장하는 데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일제강점기 인명록’을 만드는데 있어서도 선생님의 손길이 묻어났다.
이처럼 해온 일들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언론에 의해 알려지지 않은 건 선생님이 이런 일이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리셨기 때문이란다. 이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어로 나선 김주완 기자는 “인터뷰를 안하려는 분을 인터뷰하는” 고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장하 선생님 인터뷰가 어려운 게 뭐냐면 답변이 결과적으로 본인의 자랑일 수밖에 없는 그런 질문을 제가 던지잖아요. 그러면 그 때부터 답변을 안하고 침묵을 지켜버리거든요.”
갖가지 지역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선생님의 이런 드러내지 않으려는 모습은 당시 찍힌 사진들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늘 중심에 자리를 마련해도 항상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모습이 그것이었다. 심지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한약방을 기습적으로 찾을 정도로 외부에 잘 나서지 않는 선생님은, 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청와대에서 식사라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단칼에 사양하셨다고 한다. “나라 일 얼마나 바쁘고 많냐? 나 같은 사람 안 만나도 된다.”고 했다는 것.
그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살았다. 자가용 승용차 없이 늘 대중교통으로 다녔고, 서민들이 찾는 식당에서 소박한 음식들을 즐겼다. 하다못해 수십 년 째 똑같은 소파에 방석을 쓰고 있었고, 손님 올 때마다 차를 내려주는 다기조차 그대로였다. 한 사람이 찻잔 옛날 거를 안 바꾸고 계속 쓰는 이유가 있냐고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안 깨지데?”
다큐멘터리가 특히 큰 울림을 주는 건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어 가고 있는 현 사회에 돈이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쓰여야 비로소 그 쓰임새가 생기는 것인가를 선생님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돈이라는 게 똥하고 똑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을 하는데 밭에 골고루 뿌려 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그 말씀처럼 선생님은 돈으로 호의호식을 하는 대신, 사람농사를 지으셨다. 그렇게 선한 영향력은 대풍을 이룬 사람농사로 사회를 조금은 살만하게 만들고 있었다. 진정한 ‘어른’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만났다. (사진:MBC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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