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슬럼프’, 흔들리는 우리를 붙잡아주는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아유 니가 애면 좋겠다. 목마나 한번 태워주고 저 문방구 가 가지고 문제집이나 몇 권 사 주고 이라믄 입이 귀에 걸렸는데. 그 때야 니 기분 풀어 주는 거 쉬웠지. 아휴 지금은 우째야 니 기분 풀리는지도 모르겠고.. 이 삼촌이 해줄 게 없어 가지고 여가 애리.”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슬럼프>에서 태선(현봉식)은 울적해하는 조카 하늘(박신혜)의 울적해진 기분을 풀어주고 싶다. 하지만 뭘 해줘야 할지 또 자신이 뭘 해줄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털어 놓는다.
“니 병원 그만 두고 삼촌이 몇 번이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왜 그만뒀니, 응? 뭣이 그래 힘들었는가, 아니 뭐 우리가 도와줄 건 없는가 해가. 이 삼촌이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니한테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니가 기댈 어깨를 내 주는 거뿌이 더 있겠나. 근데 또 니가 뭣이 모자라 가지고 이 보잘 것 없는 삼촌 어깨에 기대겠노.”
해줄 게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이지만 태선의 그 말에 하늘의 울적했던 마음은 한껏 누그러진다. 태선은 일부러 옥상에 심어진 양배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늘의 엄마 월선(장혜진)이 바로 갖다 심은 거라며, “느그 엄마가 이래 양배추 갖다 심는 거 말고는 니한테 해 줄 게 뭐 있겠냐”고 그 마음을 에둘러 전한다. 마침 선 자리라는 걸 속인 엄마 때문에 그 자리에 나갔다 봉변을 당하고 돌아와 엄마에게 “내가 창피하냐”고 쏘아댔던 하늘에게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과연 우리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세상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뭘까. 그건 문제를 척척 해결해주는 그런 능력만이 아니고, 그저 힘들 때 옆에서 바라봐주고 어깨를 내주고 토닥여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닥터 슬럼프>가 태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너무나 평범해 해줄 수 있는게 없다고 말하지만, 바로 그 해주고 싶은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버텨내게 해주는 힘이 된다는 걸 태선은 보여준다.
태선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건 그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민경민(오동민) 같은 인물과의 대비 때문이다. 처음 마취과에 와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하늘을 선배로 다가와 도와주며 든든한 기댈 어깨처럼 보였던 그는 사실 거짓으로 속이고 하늘을 이용하기만 하다 버린 인물이었다. 해줄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은 힘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오히려 거짓으로 이용만 하려 하고 그래서 더 큰 배신감을 안기기도 하는 냉혹한 현실을 이 인물은 표상한다.
태선과 경민의 대비가 보여주듯이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해주고픈 마음이다. 마음 없는 능력은 이용하는 것으로 상대를 더 무너뜨릴 수 있는 반면, 능력이 없어도 진실된 마음은 그 따뜻함만으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그리고 이건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고 그래서 1등을 받은 성적에 집착하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늘 한결같은 월선 같은 부모의 마음이기도 하다. 공부하느라 아버지가 죽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졌던 하늘에게 월선은 말한다. “하늘아 괘않다. 죄책감 내리 놔라. 아빠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니 아빠여서 행복했다더라. 우리는 진짜 니 부모라서 억수로 행복했다.”
<닥터 슬럼프>는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고 그래서 성공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진 않는다고 정우와 하늘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들이 갖게 된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같은 마음의 병은 그 성공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넘어졌을 때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것 역시 그런 대단한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어도 서로를 걱정해 기댈 어깨를 내주는 그런 마음을 통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태선이나 월선 같은 늘 가까이 있어 당연한 듯 여겼던 사람들이 진짜 기댈 어깨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
정우가 성형외과 의사이고 하늘이 마취과 의사라는 설정은 그래서 이 부분에서 더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하늘이 하려고 했던 마취과 의사는 어찌 보면 수술을 하는 의사의 든든한 기댈 어깨 같은 존재였을 테니 말이다. 외상후 스테레스 장애로 수술방에서 공황을 겪는 정우 옆에 마취과 의사로 나타난 하늘의 존재가 더욱 든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거기에는 하늘의 능력만이 아닌 마음이 느껴지니 말이다.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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