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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드라마

차은우도 김남주도 끝내 분노하게 만든 가해자의 ‘원더풀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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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월드’가 연쇄적인 복수극을 통해 담아낸 피해자들이 분노

원더풀 월드

“행복해지려고 하니까? 방송에서 그러더라구 잘 살아보겠다고.”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에서 권선율(차은우)은 왜 이렇게까지 했냐는 강수호(김강우)에게 그렇게 말한다. 권선율은 아버지를 차로 치어 죽인 은수현(김남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 교도소에 일부러 봉사를 다니며 은수현의 동태를 살폈고, 그의 남편 강수호가 한유리(임세미)와 불륜을 저지르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친 자매처럼 자라온 한유리와 남편 강수호의 불륜은 은수현에게는 지독한 상처가 아닐 수 없었다. 권선율이 자신이 죽인 권지웅(오만석)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다지 흔들리지 않았던 은수현이지만, 결국 밝혀진 한유리와 강수호의 불륜 사실은 그를 뒤흔들었다. 한번의 실수라고 하지만 아내 은수현이 충격을 받을 걸 걱정해 애써 그 사실을 숨기려 했던 강수호는 권선율을 찾아와 꼭 그렇게까지 해야했냐고 묻는데, 이에 대한 권선율의 답변이 의미심장하다. 

 

방송에 나와 강수호와 은수현이 “잘 살아보겠다”고 했던 그 대목에서 권선율은 분노했다는 것. 그건 피해자들의 분노가 어디서 촉발되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건 바로 가해자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 흔히 연예인의 학교폭력 같은 사례에서 자주 등장하듯이, 가해자는 쉽게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결코 잊지 못하는 과거의 상처는 그저 묻어두고 지내려 해도 어느 순간 분노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원더풀 월드’에서 굳이 강수호가 방송에서 주목받는 스타 앵커이고 은수현 역시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 작가로 설정된 건 그래서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러니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묻어두고 살고 싶어도 자꾸만 눈앞에 그 삶이 보이게 되고, 그들의 행복해지려는 모습은 피해자인 권선율에게는 더 큰 상처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건 은수현도 마찬가지로 겪었던 상처다. 그가 끝내 권선율의 아버지 권지웅을 차로 치어 죽인 건, 자신의 아들을 치어 죽이고도 그만한 처벌도 받지 않고 버젓이 살아가는 모습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억울함을 토로하며 권지웅을 찾아가 사죄하라고 요구했지만, 끝내 사죄하지 않는 뻔뻔함에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 것. 

 

이처럼 피해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원더풀 월드’라는 역설적인 제목은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아들을 잃은 은수현이나 아버지를 잃은 권선율은 모두 자신이 믿고 있던 세상이 무너지는 걸 경험했고 여전히 그 무너진 폐허 위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너무나 ‘원더풀’한 모습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절망감은 결코 겪지 않은 이들은 가늠할 수 없는 크기가 아닐까. 

 

과연 이 피해자와 가해자로 뒤얽힌 은수현과 권선율에게도 구원이라는 게 있을까. “죽음에 더 큰 죽음으로” 갚겠다는 권선율에게 은수현은 이렇게 말한다. “죽는 건 쉬워. 계속 살아내는 게 어려운 거지. 넌 내가 어떻게 버텼을 것 같니? 난 건우 엄마로서 후회하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없어. 오직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어. 누구든 날 흔들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나를 죽일 순 있어도 이 마음을 죽일 순 없어.” 같은 고통을 겪었고 버텨내는 삶을 살아간다는 그 공감이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이 될 수는 없을까. 이제는 무너져 회복될 수 없는 ‘원더풀 월드’에서 끝내 버텨내기 위해서라도.(사진: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