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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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씹어먹은 조윤수, 이 배우가 ‘사랑의 이해’의 그 배우라고?

D.H.Jung 2024. 8. 1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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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조윤수, ‘마녀’의 김다미를 보는 듯한 폭발적인 존재감

폭군

박훈정 감독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디즈니+ 드라마 ‘폭군’의 서사는 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는 않다. ‘폭군’ 프로그램이라는 초인 유전자 약물을 은밀히 개발하려는 국정원 소속 최국장(김선호)과 그걸 폐기하려는 미국 정보기관 소속 폴(김강우)이 대결하는 이야기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 약물 샘플을 가져오는 일을 의뢰받아 투입된 기술자 채자경(조윤수)과 최국장측에 서서 이 프로그램을 가로막는 이들을 제거하는 일을 의뢰받은 청소부 임상(차승원)이 끼어들면서 사건은 다소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이 폭군 프로그램이라는 엄청난 군사력을 키워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은유하는 건 우리에게는 익숙하다. 핵무기와 그리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갖고 있고 러시아도 또 북한도 갖고 있는 핵무기를 왜 우리는 가질 수 없는가에 대해 최국장은 말한다. “근데 왜 왜 우리는 맨날 안되냐? 왜 우리는 핵도 안되고 대륙간 탄도도 안되고 이것도 안돼냐? 야 니들도 하잖아. 중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하다못해 저 위에 북한 애들도 다 하는데 왜 맨날 우리만 안된다는 거야?”

 

이것이 최국장이 미국의 압력과 그 압력에 의해 국정원 내부에서도 프로그램을 탈취해 제거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지만 끝까지 이를 멈추지 않으려는 이유다. 그래서 폴로 대변되는 미국 정보기관의 무시무시한 협박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의연한 최국장의 면면은 그 자체로 카타르시스를 주는 면이 있다. 폭군 프로그램이 위험하기 이를 데 없고, 잔인한 실험 끝에 탄생한 것이지만 그걸 저들에게 빼앗기는 건 저들의 위협에 날개를 달아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폭군’은 이처럼 박훈정 감독의 ‘마녀’와 어딘가 계보를 같이 하는 작품이다. 시작은 국정원이 등장하고 조폭과 킬러들이 나오는 누아르와 스파이물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문을 열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폭군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는 SF 판타지의 경향을 더해 넣는다. 심지어 크리처물의 특징까지 보이는 작품은 후반부에 가서는 마치 ‘무빙’의 VFX를 보는 듯한 초능력자들의 액션 양상으로 치닫는다. 

 

보기에 따라 ‘폭군’은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론 장르를 훌쩍 넘어서는 지점에서 액션이 너무 과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어두운 박훈정 감독 특유의 누아르적 분위기와 한계 따위는 필요 없다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액션의 파괴력은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몰입감을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이 과해 보이는 자극적인 폭력 수위와 장르를 뛰어넘는 과한 액션을 꾹꾹 눌러 무게감을 주는 건 배우들이다. 김선호는 역시 박훈정 감독의 페르소나답게 선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한기를 제공하고, 그와 대결하는 김강우 역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 섬뜩한 인물의 면모들을 연기로 끄집어낸다. 여기에 차승원의 농담 같은 유머가 더해져 더욱 살벌한 청소부 역할이 빛을 발한다. 

 

하지만 작품 전체를 꿰뚫고 있는 힘은 역시 주인공 채자경 역할의 조윤수에서 나온다. 마치 ‘마녀’에서의 김다미를 보는 듯한 서늘함이 그 무표정에서 느껴지고 그 차분함이 주는 긴장감은 작품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다. 놀라운 건 이 배우가 ‘사랑의 이해’에서 정가람을 두고 문가영과 삼각멜로 구도를 만들었던 그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 작품 속 해맑던 모습의 배우가 이 작품 속 괴물처럼 보이는 다크한 인물과 동일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4부작으로 마무리된 작품이지만 ‘폭군’은 보다 긴 서사가 예고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첫 번째 4부작은 채자경을 통해 제3의 종족이 등장하게 되는 일종의 밑그림 정도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 그 세계가 다음 시즌으로 이어져 나간다면 채자경 역할의 조윤수는 물론이고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임상 역할의 차승원도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충분히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지만 겨우 맛보기를 보여준 ‘폭군’이 시즌2로 돌아와 이제 제대로된 요리를 선사할 수 있기를.(사진:디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