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 보기 싫어서’, 결혼도 사랑도 이익 따지는 시대의 멜로
이 인물은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손해영(신민아). 어려서부터 축구하는 남자들이 운동장의 대부분을 쓰고 피구하는 여자들이 그 일부만 쓰는 게 손해라고 선생님께 따지는 그런 인물이었다. 손해 보고는 못사는 문제적 인물. tvN 월화드라마 ‘손해 보기 싫어서’는 예사롭지 않은 제목처럼 범상치 않은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런데 이 멜로의 남자 주인공인 김지욱(김영대)은 손해영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걸 못견뎌 하고, 나아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의인이지만, 때론 융통성 있게 넘어가야 잘 살 수 있는 사회생활에서는 어딘가 손해보는 인물이다. 면접장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하는 면접관에게 대놓고 그걸 문제삼는 인물이니.
‘손해 보기 싫어서’는 이처럼 상반된 두 캐릭터를 남녀 주인공으로 세워 도저히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로맨스를 그리겠다 선언한다. 그 발단은 손해영이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쓴 축의금이 너무 아까운 참에 초고속 승진이 걸린 사내공모에 미혼 여성을 뽑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결혼을 하기로 작정한다. 물론 식만 올리는 가짜 결혼식을.
대뜸 손해영은 자신의 단골 편의점에서 만년 알바를 하고 있는 김지욱에게 이 결혼 알바(?)를 제안한다. 말도 안되는 제안에 단칼에 거부하지만, 손해영이 중고마켓에 올린 신랑 구인(?)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바람둥이가 관심을 보이자 김지욱은 이를 그냥 무시하고 넘기지 못한다. 자신이 그 결혼 알바를 하겠다고 나선다. 이로써 두 사람은 가짜 결혼식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의외의 로맨스를 겪기 시작한다.
‘손해 보기 싫어서’가 도발적인 건, 이제 결혼이 필수냐 선택이냐는 차원을 넘어서 이득이냐 아니면 손해냐를 따지는 시대의 이야기를 꺼내놨다는 점이다. 그건 거꾸로 이야기하면 결혼만이 아니라 매사에 모든 걸 이익의 관점으로 결정하는 세태에 대한 이야기다. 손해 보는 일은 절대 하기 싫고 오로지 이익을 위해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시대. 그런데 그건 과연 괜찮고 행복한 일일까.
그런 점에서 김지욱이라는 캐릭터는 이 이익의 시대와는 걸맞지 않는 캐릭터로 사회에서도 도태된 인물이다. 잘 모르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의인’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타인을 돕는 일보다는 내 이익만을 보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 김지욱은 그런 시대 바깥에서 들어온 외계인 같은 존재다. 보통의 멜로 드라마가 돈이면 돈 권력이면 권력 나아가 외모면 외모까지 모든 걸 다 가진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다면 김지욱은 그 정반대에 서 있다.
늘 백마 탄 왕자님만 로맨스에서 봐왔던 시청자들이라면 이 덥수룩한 머리로 일부러 외모를 감춘 채, 편의점 만년 알바를 하며, 남 돕는 일에나 신경쓰는 이 인물이 어딘가 이질적으로 느껴졌을 게다. 하지만 이건 이 인물의 진가가 저 외형적인 조건들과는 다른데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위장술이다. 기꺼이 타인을 위해 손해보는 삶을 사는 남자 주인공이 주는 판타지라니.
알고 보면 손해영이 그토록 손해 보는 삶을 싫어하게 된 건 어려서 천사처럼 베풀던 엄마로부터 겪게 된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보육원 봉사를 하던 엄마가 가정위탁을 하며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데려와 키웠다. 손해영은 자신이 엄마에게 받을 사랑을 저들에게 빼앗겼다 생각했고 그래서 손해 보는 일에 극도로 예민해졌고 그런 엄마와도 소원해졌다.
따라서 손해영이 김지욱과의 가짜 결혼식을 통해 그의 진가를 알아가는 이 로맨스는 동시에 손해영이 천사 같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그 이타적인 마음이 그저 이익만 생각하는 삶보다 얼마나 가치있는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랄까. 결혼도 그렇지만 사랑 역시 손익의 관점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 손익계산으로 시작하지만 차츰 진짜 사랑이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는 걸 알아가는 로맨스가 흥미로워진다. 결혼도 사랑도 이익 따지는 시대와 도전하는 멜로를 보는 재미랄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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