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치맘의 무엇이 우리의 버튼을 누르는가(‘라이딩 인생’)이주의 드라마 2025. 3. 9. 11:19728x90
‘라이딩 인생’, 이건 교육인가 학대인가 혹은 육아인가 전쟁인가
라이딩 인생 “자 엄마표 롤러코스터 출발한다! 꽉 잡아 홍서윤.” 운동화로 갈아신은 정은(전혜진)은 딸 서윤이(김사랑)를 안고 달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라이딩을 해주던 시터가 일이 있어 아이를 학원까지 보내주지 못하게 됐다고 하자 점심도 못먹고 달려온 정은이다. 반 승급이 달린 스피치대회를 앞두고 있어 딸을 영어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는 달린다. 평상시라면 혼자서도 못달렸을 거리를 그것도 경사진 계단까지 쉬지 않고 달려 겨우 학원에 도착한다. 그렇게 딸을 데려다주고 차로 돌아가는 정은은 그 경사진 계단 위에서 말한다. “아깐 여길 어떻게 뛴거야?”
ENA 월화드라마 <라이딩 인생>은 이른바 ‘대치맘’들의 치열한 자식교육 경쟁, 아니 전쟁을 다룬다. 물론 정은은 대치맘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치맘이 되고 싶은 워킹맘일 뿐.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안다. 일하면서 육아를 하는 것으로 대치맘, 아니 그같이 자식교육에 열성인 엄마들이 되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워킹맘들은 사실 학부모 모임에 가서도 자식교육에만 전담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겉돌기 마련이다. 정은은 현실적으로 돈을 벌어야 서윤이 학원도 보내고 시터도 고용할 수 있어 일을 해야만 하는 워킹맘이지만 마음은 육아에서도 대치맘처럼 완벽하고 싶어한다.
일도 육아도 다 해야하는 워킹맘이니, 남편이 육아에 동참안하는 건 아닌가 싶지만 정은의 남편 재만(전석호)은 그런 인물이 아니다. 돈을 잘 못벌어도 서윤을 위해 뛰고 또 뛰는 정은을 어떻게든 도와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제사 상차림도 자신이 먼저 나서서 다 챙기고 뒤늦게 온 아내를 두둔하는 그런 인물. 또 서윤도 이런 엄마의 교육열에 그다지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 착한 아이다. 학원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하는데 그건 엄마가 기뻐할 것 같아서라고 말하는 아이. 하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 고민한다.
진짜 대치맘은 송호경(박보경)과 그 주변에 모여드는 엄마들이다. 토미로 불리는 아들이 늘 학원성적 1등이라 예비초 맘들은 모두 그녀 주변에 모여든다. 하지만 이들 대치맘의 아이들은 이제 겨우 7세로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나이에 이런 생활이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불안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정은의 엄마 지아(조민수)에게 그림 수업을 받는 수찬이는 그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과호흡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호경의 아들 토미도 불안증세로 손톱을 물어뜯는다.
라이딩을 대신 해줄 시터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전전긍긍하는 정은 같은 워킹맘도 불안과 스트레스에 쩔어 살아간다. 갑자기 시터가 사라지자 어쩔 수 없이 엄마 지아에게 부탁을 하는데, 학원이 늦을까 걱정되어(그러면 엄마가 실망할 걸 알기에) 혼자 택시를 타고 학원에 가다가 길을 잃은 지아는 다행히 경찰의 도움으로 정은의 품에 안긴다. 아이를 잃어버릴 수도 있었을 사건 속에서 정은의 절실함은 이 학원 경쟁이 경쟁의 차원을 넘은 전쟁이라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가 순식간에 스릴러 같은 긴박감을 줄 정도니 말이다.
이 정도면 이 요지경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그래서 이 모두가 앞뒤 보지 않고 아이들을 학원 경쟁에 몰아넣고 이 학원 저 학원 ‘라이딩’을 하는 인생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라이딩 인생>의 지아는 이 상식적인 시선으로 대치맘들의 요지경에 일침을 가하는 인물이다. 수찬이가 과호흡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학원가자”고 아이의 등을 떠미는 엄마에게 그녀는 말한다. “자꾸 이러시면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밖에 없어요.”
이건 교육인가 학대인가. 아니 육아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이건 사실상 전쟁이 아닐까. <라이딩 인생>은 정은의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저 아이들의 교육에 전쟁하듯 뛰고 있는 엄마들의 삶을 통해 이런 교육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걸 꼬집는다. 이른바 대치맘이라 불리는 특정 엄마들의 치맛바람을 비판한다기보다는 왜 이들이 이렇게 극한까지 ‘라이딩’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우리 사회의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상식을 뛰어넘는 절벽 끝으로 몰아세우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학대에 가까운 일들을 교육이라며 당하고 있는 걸까.
최근 대치맘이 화제다. 개그우먼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서 ‘휴먼페이크다큐 자식이 좋다’라는 코너에 이수지가 제이미맘으로 나와 보여주는 패러디는 예상 외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엉뚱하게 ‘한가인 저격’으로 불똥이 튀기도 했고, 대치맘들의 교복이라 불리는 패딩을 입고 나와 풍자의 대상이 되면서 중고거래 플랫폼에 매물이 쏟아지는 기현상이 생겨나기도 했다. 대치맘들이 이 화제로 인해 패딩 대신 밍크코트를 입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미맘은 바로 그 다음편에 밍크코트를 입고 나와 빵터지는 웃음을 주기도 했다.
아이를 수학학원에 보내고 온다는 제이미맘에게 피디가 이제 겨우 네 살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아이에게 까까를 줬더니 그 수를 세고 왜 이렇게 적게 주냐고 했다며 그건 “영재적인 모먼트”라고 말한다. 또 <오징어 게임>이 인기라 제기차기 선생님을 구하러 간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건 빵 터지는 패러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실에서 엇나간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 엄마들은 아이가 뭘 해도 ‘영재 아닐까’ 하는 착각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고 모두가 인기있는 놀이에도 아이가 겉돌지 않기 위해 학원을 보내는 게 일상적인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치맘을 넘어 이제는 ‘대치파파’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 이슈는 우리 안의 어떤 버튼을 누른다. 그건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더한 일도 하게 되는 대치맘에 대해 그저 비판적 관점만이 아닌 선망의 시선을 같이 갖는 양가감정 속에 우리가 빠져 있어서다. 우스우면서도 눈물나고 미친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그런 게 있냐고 관심이 쏠리는 이 감정은, 저 아이들이 손톱을 물어 뜯을 정도로 겪고 있는 혼란과 정서적 불안만큼 부모들도 똑같은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요는 대치맘이 누굴 저격했는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거야 말로 이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사태를 직시하기보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내세움으로써 간단히 외면하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웃음 뒤에 존재하는 기괴함을 애써 봐야하고, 저 엄마들을 전전긍긍하게 하는 이면의 너무나 폭력적이면서도 방치되어 있는 교육 정책들을 봐야한다. 그게 아니면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는 ‘라이딩 인생’이라는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될 테니 말이다. (사진:ENA)
'이주의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싹 속았수다', 그 때는 몰랐던 엄마, 아빠의 마음이 된다는 건 (0) 2025.03.17 모진 세월 버텨낸 위대한 삶에 대한 헌사(‘폭싹 속았수다’) (0) 2025.03.11 ‘멜로무비’, 어둠 속에서 더 빛나고 따뜻한 한 편의 멜로영화 같은 (1) 2025.03.03 매운맛 ‘보물섬’, 이 작품의 보물은 단연 박형식과 허준호 (0) 2025.02.25 ‘멜로무비’, 이런 시간이 없다면 사는 건 얼마나 고통일까 (0) 2025.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