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선덕여왕'에 뜬 달인, 죽방고도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선덕여왕'에 뜬 달인, 죽방고도

D.H.Jung 2009. 7. 2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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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초 연기의 대가 이문식, '선덕여왕'이 재발견한 감초, 류담

"니들 위장이란 거 해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말어."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의 대사가 아니다. '선덕여왕'에서 웃음을 책임지고 있는 죽방(이문식)과 고도(류담)가 나누는 대화 중 하나다. 덕만(이요원)이 미실에게 접근하기 위해 용화향도들까지 속인 것에 대해 마치 죽방이 그것이 위장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너스레를 떠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고도 역할의 류담이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아휴 지겨워. 맨날 말을 말래." 이것은 '개그콘서트' 달인의 패러디다. 달인 김병만이 늘 하는 말, "안 해봤으면 말을 말라"는 그 말을 '선덕여왕'의 죽방고도가 나누는 웃음의 코드로 끌어들인 것이다.

'선덕여왕'의 죽방고도 콤비만 떼놓고 보면 진짜 '개그콘서트'의 달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죽방이라는 캐릭터는 늘 "자기는 다 알고 있었다"거나,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리는 '선덕여왕'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류담이 맡은 역할이다. '개그콘서트'에서 류담은 달인의 머리를 툭 치며 "나가!"하고 면박주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선덕여왕'에서 류담은 거꾸로 죽방에게 늘 얻어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죽방고도 콤비는 긴장감 넘치는 사극 속에 늘 존재하는 감초 역할이다. 어리숙한 도둑이라는 캐릭터는 사극 이외에도 드라마 속에 늘 빛나는 감초 역할을 해왔다. 누군가의 물건을 훔쳤는데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어리숙함은 늘 드라마에 웃음과 함께 극의 긴장감을 동시에 가져올 수 있는 캐릭터다. 죽방고도가 훔쳐온 연적 에피소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연적으로 해구신을 산 그들로 인해 향도들은 일제히 신체검사(?)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주인공 덕만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반면 그 해구신을 숨기기 위해 고도의 입에 그걸 밀어 넣으면서도 아까운 듯 다 먹지는 말라는 죽방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도둑이란 캐릭터는 더 큰 도둑(이를테면 나라를 훔친) 앞에서는 용인되기 마련. 그것도 그 큰 도둑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문식은 이미 정평이 난 감초연기의 달인이다. 그의 감초연기가 여타의 배우들과 다른 점은 그 웃음 속에 서민적인 눈물까지도 묻어난다는 점이다. '일지매'에서 생니까지 뽑아가며 연기투혼을 한 이문식은 뜨거운 부정을 보여줌으로써 웃음은 물론이고 감동까지도 선사했다. '선덕여왕'에서 이문식은 좀 더 웃음의 코드에 접근하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덕만이 기댈 수도 있는 형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문식의 감초 연기야 이미 정평이 났지만, 류담의 연기는 재발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개그콘서트' 달인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심에 선 김병만의 개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그가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에서의 그의 감초 연기는 보통 개그맨들이 드라마로 진출할 때 넘기가 좀체 어려운 까메오 역할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류담이 연기하는 고도는 그만큼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녹아있다는 말이다.

그간 보지 못했던 그의 다양한 표정 연기는 이문식과 콤비를 이루면서 더욱 빛이 난다. 억울한 얼굴과 놀라서 동그랗게 뜬 눈, 가끔씩 보이는 바보 같은 웃음은 '달인'에서는 보지 못했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류담에게서 발견하게 한다. 거구의 몸 역시 '달인'에서는 주목되지 못했지만, '선덕여왕'에서는 이문식과 대비되면서 이른바 훌쭉이와 뚱뚱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사극처럼 진지하고 긴장감이 넘치는 드라마 속에서 자칫 감초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은 간과되기 쉽다. 하지만 감초는 그저 드라마에 부가되는 웃음이라는 양념만은 아니다.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에서 감초라는 캐릭터는 사건을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하는 자체로 극을 움직이는 하나의 틀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의 달인, 죽방고도가 돋보이는 것은 이 두 가지 역할, 즉 웃음을 주는 역할과 극을 움직이는 역할을 모두 잘 소화해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