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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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은, 그 '혼'을 살린 연기의 비결

D.H.Jung 2009. 8. 27.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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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은, 빙의연기가 끄집어낸 그녀의 스펙트럼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 같은 이미지였다. '메리대구 공방전'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되바라진 중학생 역할을 했던 임주은이었기에 그것은 더욱 그랬다. 그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는 얼굴은 임주은이라는 연기자를 그저 지나치게 만들었다. '여고괴담'류의 이제는 트렌디해 보이는 여고생 원혼의 연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귀신에 빙의되는 윤하나라는 연기를 해야 하는 임주은은, 평범한 여고생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분노로 일그러진 원혼들의 얼굴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신은 임주은이라는 평범해 보이는 연기자의 속에 꽤 많이 내재된 연기의 스펙트럼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혼'은 표현이 자극적일지는 몰라도, 완성도로 보면 명품이라고 할 만큼 짜임새가 있는 작품이다. 얼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나 그것을 전하는 방식 또한 신선하다. 보통 공포물이라고 하면 원혼을 무서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더 무섭고, 따라서 이들을 처결하는 원혼의 복수가 속 시원하게 느껴지는, 그 아이러니한 체험을 이 드라마는 주고 있다. 공포물을 표방한 사회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모두 갖고 있는 양가적인 모습이다. 신류(이서진)는 연쇄살인범을 잡는 범죄자 프로파일러지만, 처참하게 파괴된 자신의 가족의 복수를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한다. 따라서 과거의 피해자지만, 현재의 가해자가 된다. 살인범들에게 복수를 가하는 것이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 역시 하나의 치밀한 연쇄살인범으로 볼 수도 있다. 바로 이 점,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하나의 구조다. 그 핵심적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윤하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윤하나를 연기하는 임주은의 역할이 녹록치 않게 된다. 그녀는 피해자로서의 모습과 가해자로서의 모습을 동시에 품고 순간순간 오가야 한다. 그것도 한 인물의 변화가 아니다. 여러 원혼들이 그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 많은 캐릭터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적으로 평범한 얼굴은 오히려 이 연기를 더 효과적으로 만든다. 조금 크게 떠지면서 힘이 들어가는 눈빛으로의 변신은 편안한 소녀의 눈빛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보는 이들을 더 소름끼치게 만든다.

'여고괴담'이 수많은 여성 스타 연기자를 발굴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여성이 원혼으로 등장하는 공포영화는 연기자들을 연기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한 가지 모습이 아닌 여러 모습을 한 작품에서 드러나게 해준다는 이야기다. 그런 면으로 보면 여러 인격체를 그 속으로 끌어들여 복수를 하는 '혼'이 임주은에게 요구하는 연기는 그 폭이 더 넓다. 그리고 임주은은 그것을 꽤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이 변신이 '혼'이라는 작품의 핵심적인 것이라고 봤을 때, 임주은의 연기는 말 그대로 '혼'을 살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