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중원'은 어떻게 백정-중인-사대부를 엮었나
"살을 째고 꿰매고 하는 일이 우리 하는 일하고 도찐 개찐이지." SBS 월화드라마 '제중원'에서 백정인 황정(박용우)의 동료는 양의의 시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나가듯 던져지는 대사지만 이 대사는 이 드라마의 절묘한 봉합술을 잘 드러내준다. 백정이 하는 일이나 의원이 하는 일이나 비슷하다는 것.
물론 그것이 어떻게 비슷할 수 있을까마는, 어쨌든 칼질에도 능하고, 바느질에도 능한 황정은 의원으로서의 자질(?)을 어느 정도 갖춘 셈이다. 여기에 칼질을 하는 대상에 대한 긍휼한 마음까지 갖추었으니, 소를 대하는 마음이 그럴 진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오죽할까. 후에 의원으로 성장할 황정이 백정이었다는 설정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즉 이 드라마는 소 잡는 칼이 사람 살리는 칼로 변신하는 그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밀도살을 살인이라고 여기는' 백정이라는 업 속에서 소 잡는 자들의 그 마음이 그들에게 소를 잡게 하는 자들의 마음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소를 잡는다고 인간 취급하지 않는 세상에서, 인간을 살리는 의술을 통해 인간임을 증명 받고자 하는 것. 이것이 백정 황정이 이 드라마를 통해 걸어갈 길이다.
하지만 이 밑에서부터 정점으로 올라가는 백정의 신분 상승 이야기로만 달려갔다면 '제중원'은 조금은 단순한 그저 그런 성장 드라마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제중원'에는 의원이 되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기꺼이 내려오는 도양(연정훈)이 있다. 그는 성균관 유생이지만 사람을 살리는 서양의학에 심취하고 결국 의술의 길로 들어선다. 황정이 오르지 못하는 신분의 벽을 넘어서려 애쓰듯, 도양 역시 내려서지 못하는 신분의 벽을 넘어서려 한다.
그리고 그 중간 지점에 서 있는 인물이 중인 출신인 역관의 딸인 석란(한혜진)이다. 그녀는 역관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서양문물은 물론이고 서구적 사고방식에도 큰 저항감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 앞에는 여성이라는 차별의 벽이 놓여져 있다. 그녀에게도 의술은 그 벽을 넘어서게 하는 힘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인물이 백정-중인-사대부로 다양한 계급을 포괄한다는 점이며, 그것이 멜로로 엮어진다는 점이다. 석란을 중심에 두고 그려질 황정과 도양의 멜로는 이 구한말이라는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보면 실로 의미심장하게 보인다. 황정과 도양이 가진 극과 극의 신분에서 동등한 위치로의 이동의 중심에 석란이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멜로는 황정과 도양 두 사람의 의술 대결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처럼 각각의 세 인물이 저마다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으면서도 의술과 멜로로 엮어지는 것은 '제중원'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그들은 각각의 한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고, 그것은 모두 사람을 살리는 의술을 통한 것이 된다. '제중원'이라는 메디컬 사극(?)의 재미는 바로 이 정교한 봉합에서 나온다. '제중원'은 구한말이라는 모든 것이 해체되는 혼돈의 시기로 들어가 백정과 중인과 사대부의 변화를 의술이라는 한 축으로 묶어낸다.
백정인 황정과 중인인 석란, 그리고 사대부인 도양의 만남을 파티를 통해 엮어내는 것이나, 육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백정의 삶과 서양의술(육손의 수술)을 보여주고 거기에 친구의 몸을 해체해야 하는 황정의 극적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는 능력은 이 드라마가 그동안 얼마나 흉터 없는 봉합술을 연구하고 고민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순히 의학드라마와 사극의 접목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정교한 봉합술이 돋보이는 메디컬 사극, 바로 '제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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