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다
‘환상의 커플’은 웃음이 드라마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리얼리티 같은 걸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드라마 내내 웃음을 터트리다가 어느새 종영을 맞았다. 어찌 보면 조금은 허탈할 수 있는 이 웃음폭탄은 그러나 마지막에 와서 1%의 눈물을 보여주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공감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한예슬이라는 연기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나상실 혹은 조안나라는 캐릭터이다.
환상적인 커플, 환상 속의 커플
드라마 종영의 시점에 와서 ‘환상의 커플’이란 드라마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그것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거리면서도 차츰 마음을 열게되는 나상실과 장철수(오지호 분), 이 안 어울리는 듯 잘 어울리는 커플을 ‘환상적인 커플’이라는 의미로 지칭하는 ‘환상의 커플’이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이 ‘환상의 커플’은 현실이 아닌 ‘환상 속의 커플’이란 의미가 하나 더 덧붙여졌다.
조안나로 돌아온 나상실에게 빌리박은 말한다. “모든 걸 환상이라고 생각해.”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꾸한다. “환상이라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어.” 빌리박은 또 묻는다. “당신은 나상실이야? 조안나야?”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그 둘 다가 나야.” 이 일련의 대사들은 그녀 안에서 조안나와 나상실이 서로 공존하며 부딪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녀에게는 두 개의 현실이 있는 셈이고 빌리박은 조안나가 현실이며 나상실은 환상이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이 두 인물의 공존이 웃음도 만들고 눈물도 만들었다는 점이다.
99%웃음의 주역, 조안나인 나상실
‘환상의 커플’이 그 특유의 톡톡 튀는 웃음을 시종일관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상실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에 있다. 어마어마한 부자에 싸가지녀였던 조안나가 기억상실과 함께 나상실이 되는 그 지점은 그 자체로 웃음의 진원지가 된다. 과거의 우아했던 영광은 사라지고 몸빼 바지에, 자장면, 막걸리를 먹으며, 소파에서 자야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조안나적인 도도함의 습성은 시청자들을 웃게 만들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다.
자칫 동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던 캐릭터가 도도함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꼬라지하고는”하고 툭툭 내뱉는 대사에 어찌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녀 자신의 꼬라지 역시 그다지 우아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이다. 드라마의 만화적인 과장된 연출과 패러디, 그리고 교차편집은 이런 나상실의 캐릭터를 극대화시켜주었다. 막걸리에 취해 춤을 추는 장면과 연회 장면의 교차편집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서 점점 서민들의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나상실에게서 우리는 이 도도녀의 내면 속에 숨겨진 따뜻한 정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나상실이라는 이름과 캐릭터는 장철수에 의해 지어진 환상이었으나 점차 그녀는 자신 속에 숨겨진 나상실을 찾아내게 된 것이다.
1%눈물의 주역, 나상실인 조안나
그런데 점점 그녀가 나상실이 되면서부터 1%의 눈물이 시작된다. 나상실이란 이름을 지어준 장철수에게 그녀가 마음을 열게 되자, 문제는 복잡해진다. 사실 나상실은 환상이고 조안나라는 현실의 인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기 때문이다. 조안나로 돌아온 그녀는 그렇지만 과거의 조안나가 아니다. 그녀 속에 또 한 명의 인물, 나상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안나로 돌아오고 나서도 그녀는 여전히 막걸리를 찾고 소파에서 잠이 들며 나상실이란 캐릭터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장철수를 만나게 된 나상실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려 하자 장철수가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은 그가 그녀를 영원히 나상실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장철수는 내민 그녀의 손을 잡지 않고 떠나며 “그 손을 잡으면 다시는 놓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고, 그런 장철수를 뒤에서 꼭 껴안은 그녀는 “내 이름은 조안나”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뚝 떨어지는 장철수와 조안나의 눈물에 시청자들 역시 똑같은 공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 이름은 장철수와의 이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뒤집어진 환상으로 공감을 만들어낸 ‘환상의 커플’
우리는 누구나 현실에서 벗어나 무언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환상을 꿈꾼다. 그것은 대체로 ‘신데렐라 콤플렉스’같은 형태의 환상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없고, 지위도 상승되는 그런 변신 말이다. 하지만 이 ‘환상의 커플’은 그 환상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어 놓는다. 완벽하고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 인물 조안나가, 온통 부족한 것 투성이의 꼬라지인 나상실로 변하는 것이다.
상향되는 변신이 어떤 로맨틱한 행복감을 예감케 하는 반면, 추락된 변신은 무언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정반대의 유쾌한 캐릭터를 창출했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 코믹으로 드라마를 전개했다는 것, 만화적인 설정들을 잘 활용했다는 점은 자칫 복잡해질 수 있는 이 나상실-조안나 캐릭터에 단순한 힘을 부여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런 하향적 변신에서도 유쾌한 캐릭터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 조안나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해도 속으로는 부족함 투성이었다는 것이며, 그 부족함을 역시 부족해 보이기만 한 장철수와 그 주변사람들이 채워주었다는데 있다.
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다
그 주변사람들 중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은 강자이다. 대부분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바보들이 늘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무거울 수 있는 나상실 주변을 맴돌며 그 무게를 가볍게 해주었다. 나상실로서 “사랑할 수도 없고” 조안나로서 “사랑 받을 수도 없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얼음’ 상태를 ‘땡’해주는 인물이 강자이다. 강자의 ‘땡’은 남해에 눈이 오는 기적(?)을 만들고, 떠나려는 조안나를 붙잡으며, 그녀 앞에 장철수를 데려다놓는다. 장철수는 이제 그녀를 조안나로도 나상실로도 받아들인다.
그녀가 조안나든 나상실이든 그 행복했고 행복한 만큼 아프기도 했던 것들은 모두 그녀에게 현실이다. 드라마를 보며 현실 속에서 환상을 꿈꾸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행복감과 아픔이 모두 현실인 것처럼 말이다. ‘환상 속의 커플’이 ‘환상적인 커플’이 되는 이 어쩔 수 없는 유쾌함 앞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환상에 젖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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