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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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일깨운 프로레슬링의 묘미

D.H.Jung 2010. 9. 12.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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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과 프로레슬링은 뭐가 닮았을까

왜 프로레슬링을 볼 때보다, '무한도전'이 보여준 레슬링 특집을 보면서 우리는 더 열광했을까. 그것이 '무한도전'이라서?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무한도전'의 인기 때문에 그들이 보여준 레슬링이 더 긴박하게 보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물론 시뮬레이션된 동작들이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는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쇼'를 넘어서는 '실제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레슬러들은 링 위에서 보여주는 경기 모습 이외에 그 이면에 놓여진 그들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시뮬레이션된 '쇼'를 하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경기가 실제인 것처럼 보여주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니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은 (실제로 그 경기들이 쇼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치 실제인 듯 보이려는 프로레슬러들의 동작에서 어떤 실감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거기에는 실제상황은 안보이고 실제인 척 하는 '쇼'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꾸로 접근했다. 일단 프로레슬링이 쇼라는 것을 그대로 다 드러낸 후, 그것을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쇼 이상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 그러자 프로레슬링이라는 경기는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 시뮬레이션된 정해진 동작들을 감당해야할 육체적 고통은 진실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프로레슬링은 과거와 달리 프로레슬링이 쇼라는 것을 인정한다. 과거 1965년 튀어나왔던 '레슬링은 쇼'라는 말에 민감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실감을 느낄 수 없었던 건, 이미 각인된 '쇼'라는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는데다, 프로레슬링의 기술 자체가 가진 고통스러움과 위험성은 대중들이 잘 몰랐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링 바깥으로 카메라를 가져와서 보여준 것은 이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 아닌가. 그러니 그 몸이 겪을 고통의 느낌은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절대로 프로레슬링 같은 힘겨운 경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이 몸을 날리고 링 바닥에 부딪칠 때마다 마치 우리가 겪는 듯 느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 경기를 통해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점이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승패를 바라본 게 아니라 그 경기에서 기술을 던지고 합을 맞추는 '무한도전' 멤버들 전원을 응원했다. 정형돈, 정준하와 유재석, 손스타가 더블 매치를 할 때, 때론 정형돈의 이름을 외치고, 때론 유재석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은 프로레슬링의 진짜 즐거움이 승패가 아니라 그 퍼포먼스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나고 상대편이었던 정형돈을 안은 유재석의 마음이 그토록 절절히 느껴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흔히 한일전의 양상을 보였던 과거 프로레슬링의 승패에 대한 집착은, 어찌 보면 진정한 프로레슬링의 묘미와는 다른 이상과열 상태가 아니었을까.

프로레슬링은 쇼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다. '무한도전'은 엔터테인먼트 그 자체로서의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마도 '무한도전'의 레슬링 특집이 우리의 프로레슬링에 어떤 영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프로레슬링이 좀 더 한국적이면서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스토리를 경기에 부여해야 한다는 것일 게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프로레슬링은 모두 쇼지만 그렇다고 거짓이 아닌 '리얼'이라는 점에서 분명 공통점이 있다. 프로레슬링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접목은 그래서 그만큼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