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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대물'의 고현정, 미실과 어떻게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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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카리스마에서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로

'대물'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자 대통령을 연기할 고현정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 이유는 전작이었던 '선덕여왕'에서 그녀가 미실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지도자적인 카리스마가 이번 작품에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뚜렷한 변화로 보이는 건 '대물'의 고현정이 연기하는 서혜림이라는 캐릭터의 표정이 확실히 많아졌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실은 정치지도자로서 마음의 변화를 상대방에서 노출시키지 않았다. 따라서 표정변화 없이 늘 꼿꼿한 그녀의 모습은 그 속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 무표정함에서 잠깐씩 보이는 입술 꼬리의 미세한 움직임이 그 마음의 동요를 언뜻 비춰주었을 뿐이다.

미실이 무표정으로 일관한 것은 '선덕여왕'의 추동력이 그 변화 없는 미실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위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선덕여왕'은 무표정했던 미실이 차츰 무너지면서 고통스런 속내를 드러내는 과정을 보여준 사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이미 신비화될 정도로 정점에 선 그녀가 서서히 권력을 내려놓고 인간으로 내려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반면 '대물'의 서혜림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 올라간다. 보통의 평범한 주부이자 한 방송사의 아나운서였던 인물이 남편의 죽음을 겪고는 차츰 정계에 들어서게 되고 결국에는 그 정점인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성장의 과정을 그린다.

따라서 서혜림의 표정은 다채롭다고 할 만큼 끝없이 변화한다. '대물'에서 고현정의 연기가 남다른 것은 한 표정에서 다른 표정으로 순식간에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강렬한 고통을 극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장례식장에 화환을 보내온 대통령의 비서를 맞는 장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말에 그녀는 평범한 얼굴에서 시작해 화환을 모두 부숴버리며 오열하는 얼굴로 돌변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갑자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토로하는 방송을 하는 그녀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 급작스런 변화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에 여전히 깊은 상처로 남아있는 남편의 죽음을 한 평범한 여자의 입장에서 강렬하게 표현해낸다.

"놀아 달라"는 아이 앞에서 억지로 웃으며 장난을 치는 그녀의 모습이 눈물겨운 것은 이 깊은 상처를 그녀의 웃는 얼굴에서조차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돕는 하도야(권상우) 검사 앞에서 마치 남 얘기하듯 짐짓 밝게 남편의 얘기를 하며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하고 말하다가 결국 오열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그녀의 절절한 연기는 위로하는 하도야마저 더더욱 따뜻한 존재로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고현정이 '대물'에서 보여준 연기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그녀는 차츰 정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그 성장과정과 함께 속내를 숨기는 방법을 터득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 정치 지도자를 그리고 있지만, 냉철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미실은 이제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카리스마의 '대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