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닥터 챔프', 이 건강한 드라마의 정체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닥터 챔프', 이 건강한 드라마의 정체

D.H.Jung 2010. 10. 1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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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현실 속 명쾌한 건강함을 선사하는 '닥터 챔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것이 의사나 운동선수처럼 그나마 나아보이는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료과실을 덮기 위해 그것을 목격한 의사를 오히려 파면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내부고발자라는 멍에를 씌워 다른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못하게 하는 상황. 가까스로 국가대표 유도선수로 뽑혔지만 잦은 부상에 고인이 된 형의 가족까지 부양해야 되는 상황. 한때 촉망받는 선수였으나 사고로 하지마비 판정을 받아 다리를 절게 되고 의사가 되어 돌아와 한때 사랑했던 여자의 주위를 서성대는 상황. 혹자는 절망할 수 있는 이 상황을 버티게 해주는 공간은 다름 아닌 태릉선수촌이다. 연우(김소연)와 지헌(정겨운), 그리고 도욱(엄태웅)은 이 곳에서 만난다.

물론 태릉선수촌 역시 매일 같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경기 전날 잘못 놓은 수액 처방으로 도핑검사 때문에 아예 경기조차 치르지 못하게 하고, 매독에 걸린 선수의 애원으로 페니실린 처방을 했다가 쇼크로 쓰러진 선수를 가까스로 살려내는 등, 연우의 하루하루는 살얼음판이다. 한편 지헌은 5년 전 태릉선수촌에 들어왔으니 무단이탈한 사례 때문에 계속 믿음을 주지 못하고, 한때 친구였던 상봉(정석원)과 갈등을 겪는다. 생활고 때문에 형수가 노래방 도우미로 나가자 그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 그의 일상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럴 때마다 태릉선수촌은 이들을 바깥으로 내쫓으려 한다. 연우는 간신히 들어온 태릉선수촌 의무실에서 매번 쫓겨날 위기에 서게 되고, 지헌 역시 후보를 벗어나기 위한 경쟁에 늘 놓여지게 된다. 주변상황은 복잡하고 늘 힘겨운 상황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이들은 태릉선수촌의 끝자락을 잡고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세상은 어딘지 이 청춘들에게 '심판 없이' 불공정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도욱 같은 냉철하지만 그래도 공정한 심판은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닥터 챔프'는 결국 이 세 사람이 엮어가는 사랑이야기가 메인 테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한갓 멜로의 하나의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이들 주변에 배치된 상황들이 이 풋풋한 사랑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작은 안식처처럼 보인다. 별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저 만나서 맨발로 잔디를 함께 걷고, 한밤중 우연히 함께 택시를 타고, 뒤늦은 저녁을 라면으로 때우면서도 그들이 사랑하는 모습이 흐뭇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스포츠가 가진 정직함과, 의학이 가진 인간애,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랑이 엮어진 이 드라마는 그래서 전체적으로 건강함을 선사한다. 부상 좀 입어도 열심히 달리는 지헌과 실수와 사고를 겪으면서도 당당함과 명랑함을 잃지 않는 연우 그리고 비뚤어진 현실 앞에 굴복하지 않고 싸워나가는 도욱의 모습은 그래서 이 차가운 세상에 어떤 희망을 전한다. 현실이 차가울수록 그들의 삶과 사랑에 더 간절함을 느끼게 되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건강하다. 복잡한 가족관계와 뒤틀린 욕망으로 점철된 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이 드라마는 어떤 섬 같은 안식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