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괜찮아 아빠딸', 그 깊은 공감은 어디서 올까 본문

옛글들/드라마 곱씹기

'괜찮아 아빠딸', 그 깊은 공감은 어디서 올까

D.H.Jung 2010. 12. 14.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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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아빠딸',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괜찮다"고 하는 아버지의 말만큼 슬픈 말이 있을까. 자신은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자식 앞에서는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 세상의 아버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얘기일 것이다.

'괜찮아 아빠딸'의 아버지 기환(박인환)이 그렇다. 그는 딸들의 결혼에만 목매는 아내 숙희(김혜옥)와 철없이 명품백 타령이나 하는 채령(문채원), 어른스럽지만 아직은 아버지의 그늘을 찾는 애령 그리고 만년백수로 소심한 빨대(?) 하나 들고 "2만원만"을 연발하며 허풍만 떨며 살아가는 처남 만수(유승목)까지 모두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자식의 허물조차 자신의 죄라며, "이건 내 잘못이야. 절대로 네 잘못이 아냐."하고 말하는 기환은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늘 존재하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표상 같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이 땅에 그냥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인인 아들 딸들의 가슴을 적시는 사부곡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좀 더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그저 신파적인 아버지의 애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좀 더 의미를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기환이라는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바깥으로 확장된다. 그는 자신과 오래 동고동락한 직원을 위해서 선뜻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만인의 아버지며,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해코지를 하려한 덕기(신민수)를 용서하며 "너도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해 오히려 그를 감복시키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즉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인물, 그가 바로 기환이다. 하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이 모두 기환과 같은 건 아니다. 혁기(최진혁)의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툭하면 손찌검을 하는데다가, 자식이 죽었는데도 그걸 통해 돈이나 뜯어내려는 부성애를 상실한 아버지다. 진구(강성)의 아버지는 능력 있는 병원장이지만 망나니 자식 때문에 골치를 썩는 아버지고, 종석(전태수)의 아버지는 변호사지만 심지어 자식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아버지다.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흐려지는 것은 그렇게 늘 손만 벌리면 뭐든 쥐어주는 아버지들을 당연한 듯 잊고 사는 세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스스로도 사회에서 어떤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것 같다. 즉 이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삶은 이 드라마에서는 '정의'와 연결된다. 가지고 못 가진 것이 아니라, 또 사회적인 위치가 아니라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하는 그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아버지가 바로 기환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사회의 이야기를 담는다. 기환이 어느 날 갑자기 휘말리게 되는 사건 속에서 누군가의 누명을 벗겨 주어야할 법은 누군가에게는 돈을 벌어주거나 자식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이용된다. '괜찮아 아빠딸'은 그래서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형태를 띠면서도 그 안에 사회극의 단서들을 집어넣는다. "괜찮아 아빠딸"이라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입에 달고 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그저 가족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기환이 그렇게 말할 때, 공감과 함께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의 정의를 지켜주고픈 마음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추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