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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두분토론', 이 개그에 남녀 모두가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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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토론', 희화화된 캐릭터가 가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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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두분토론'(사진출처:KBS)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여자가 당당해야 나라가 산다는 여당당의 김영희는 개그콘서트 '두분토론'에서 매번 이 멘트로 말문을 연다. 남자는 하늘이라고 주장하는 남하당 대표 박영진의 전 근대적인 남성우월주의 발언들 때문이다. 박영진은 "여자들이-", "건방지게-" 같은 남녀 차별적 발언을 거침없이 던져댄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도 모자라서 뭐?"하고 되물으면서 여성들의 행동을 비아냥거린다.

사실 이런 박영진식의 말투는 여성들 입장에서는 듣기조차 싫은 기분 나쁜 얘기들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박영진이 이런 여성 비하 발언을 쏟아낼 때마다 관객에서는 남녀 할 것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마치 자신들에게 욕을 하는데 그걸 보며 웃는 격이다. 도대체 왜 이런 반응이 나올까. 박영진이 보여주는 캐릭터가 여성들을 비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실의 남성 우월적 태도를 가진 남자들을 비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같으면 이런 얘기가 심지어 개그의 소재로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여성단체들의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 때는 박영진의 이런 얘기들이 농담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박영진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이제는 사라진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그 과거에 묶여 지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그런 남성들은 가족에서건 사회에서건 비난받기 십상이다. 이 개그가 공개적으로 보여지고 김영진식의 발언에 심지어 웃음을 던질 수 있는 건 전적으로 달라진 남녀 관계에서 비롯된다.

반면 매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여당당의 김영희는 이런 전 근대적인 남성에게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자기가 발언할 시간이 돌아오면 거침없는 공격을 해댄다. 남자들이 뭔가 했다는 식으로 하는 행동에 대해 여성적인 입장에서 "대단한 ○○○ 나셨다 그죠?"하며 반문한다. 그 때마다 역시 남녀 관객 모두가 웃음을 터트린다.

김영희의 발언에 터지는 웃음은 박영진의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박영진이 주는 웃음은 희화화된 자기 캐릭터에서 나오지만, 김영희가 주는 웃음은 그런 구시대적 캐릭터에 맘껏 비난을 쏟아 붇는 그 속 시원함에서 나온다. 그 속 시원함은 여성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젊은 남성들이라면 권위적인 나이든 세대가 보이는 행동에 똑같은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김영희의 촌철살인은 그 권위를 순식간에 해체시키며 어떤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두분토론'은 남녀가 싸우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둘 다 권위를 해체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기조 위에 서 있다. 여기에 남녀 간의 다른 심리가 바탕에 깔리고, 각종 토론이 가진 공허함에 대한 풍자가 곁들여지니 금상첨화다. 물론 어떤 면에서 보면 박영진이 스스로를 희화하며 마구 쏟아내는 남성우월적 발언들 속에는 위축된 남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기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화화된 캐릭터 위에 서있을 뿐이다.

남녀의 심리를 소재로 하는 개그는 늘 있어왔다. 하지만 '두분토론'은 좀 더 직설적인 발언대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훨씬 강하다. 하지만 심지어 위험하다싶은 발언조차 과감하게 풀어내질 수 있는 희화화된 분위기는 이 코너가 가진 최대의 미덕이다. 그 바탕 위에서 남녀는 서로 싸우는 것 같지만 때론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